공을 다투기 전에 숨부터 가빠진다. 해가 져도 땅은 식지 않고 뜨거운 수증기를 품은 공기가 경기장을 뒤덮는다.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체력이 깎여 나갈 정도로 경기 환경이 극악하다.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최종전이 열리는 멕시코 몬테레이의 풍경이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23일(현지시각) 멕시코 몬테레이 유니버시티 스타디움에서 남아공과 조별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훈련에 앞서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뉴스1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5일 오전 10시(한국시각)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32강 진출을 놓고 맞붙는다. 한국은 비기기만 해도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한다. 반면 남아공은 승리가 필요하다. 경기를 앞두고 현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전술도 스타 플레이어도 아니다. 바로 '폭염'이다.
몬테레이는 원래도 멕시코에서 무더운 도시로 꼽힌다. 이번 대회 기간에는 예년보다 더 강한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경기 당일 낮 최고기온은 36도 안팎으로 예보됐다. 다행히 경기는 해가 진 오후 7시에 시작하지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경기 시작 시점에도 기온이 28도 안팎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습도까지 더해지면서 체감온도는 34도에서 최대 40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평소보다 훨씬 가혹한 환경에서 경기가 치러지는 만큼 양 팀 모두 체력 안배와 교체 카드 활용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남아공 축구 국가대표팀 라일 포스터를 비롯한 선수들이 23일(현지시각) 멕시코 몬테레이 유니버시티 스타디움에서 대한민국과 조별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훈련하고 있다. / 뉴스1
현지 취재진 사이에서는 "가만히 서 있어도 셔츠가 젖는다"는 말이 흔하게 나온다. 실제로 몬테레이는 밤에도 기온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경기 종료가 예상되는 오후 9시 무렵에도 26도 안팎을 유지할 전망이다. 사실상 열대야 속에서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셈이다.
해외 언론들도 이번 경기를 '기후와의 싸움'으로 규정하고 있다. ESPN 등 주요 매체들은 몬테레이의 기후를 A조 최종전 최대 변수로 지목했다. 일부 매체는 "선수들이 상대보다 더위와 먼저 싸워야 하는 경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고온다습한 환경은 경기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기온과 습도가 동시에 높아지면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심박수가 평소보다 빠르게 상승한다. 선수들은 같은 거리를 뛰더라도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후반으로 갈수록 스프린트 횟수와 압박 강도가 감소한다.
이번 대회 개최 도시 가운데서도 몬테레이는 특히 위험성이 높은 곳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기후 연구단체 클라이밋 센트럴은 몬테레이에서 열리는 월드컵 경기들이 선수 경기력 저하를 유발할 정도의 고온 환경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여러 기후 연구에서도 몬테레이는 미국의 댈러스, 휴스턴, 마이애미와 함께 가장 혹독한 개최지 중 하나로 분류됐다.
폭염이 월드컵의 문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에도 선수들은 더위와 사투를 벌였다. 당시 멕시코 일부 경기장의 기온은 38도까지 치솟았다. 훗날 월드컵 우승을 이끈 디에고 마라도나는 경기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사례도 있다. 북미 지역에서 열린 각종 국제대회에서는 선수 탈진과 열사병 증세가 잇따랐다. 지난해 열린 클럽 월드컵과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고온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이번 월드컵에서 FIFA가 모든 경기 전·후반에 의무 쿨링 브레이크를 도입한 것도 같은 이유다.
전문가들은 쿨링 브레이크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실제로 여러 스포츠의학 전문가들은 FIFA에 공개서한을 보내 고온 경기 기준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 몇 분의 휴식만으로는 체온 상승을 충분히 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 팀 감독의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 홍명보 감독은 비교적 담담하다. 그는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몬테레이의 날씨를 미리 알고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은 해발 1460m의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보름 이상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고지대 적응뿐 아니라 열 적응 프로그램도 병행했다. 훈련 후 냉욕과 온욕을 반복하며 체온 조절 능력을 끌어올리는 훈련도 실시했다.
홍 감독은 "덥다는 것은 느끼겠지만 경기하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선수들 역시 K리그와 동아시아 특유의 무더운 여름 환경에 익숙한 만큼 완전히 낯선 조건은 아니라는 평가다.
반면 휴고 브로스 남아공 감독은 공개적으로 우려를 나타냈다. 올해 74세인 브로스 감독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예고한 베테랑 지도자다. 벨기에와 아프리카 무대를 두루 경험한 그조차 몬테레이의 더위에는 혀를 내둘렀다.
브로스 감독은 "이 정도 기온은 하루 이틀 만에 적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며 "최소 2~3주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아프리카 팀이라 더위에 강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겠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남아공은 전력 누수도 안고 있다. 중원의 핵심 자원인 테보호 모코에나가 경고 누적으로 한국전에 출전하지 못한다. 체력 소모가 큰 환경에서 핵심 미드필더의 공백은 더욱 크게 느껴질 수 있다.
결국 이번 경기는 단순한 축구 경기를 넘어 체력전의 성격을 띨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비기기만 해도 32강에 오른다는 점에서 경기 운영에 여유가 있다. 반면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남아공은 공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공격적인 축구가 더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경기 양상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초반부터 강한 압박을 시도한 팀이 먼저 지칠 수 있고, 벤치 자원의 활용 능력이 승부를 가를 수도 있다. 교체 카드의 가치가 평소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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