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우루과이와 연속 무승부에 섬나라 전체가 들썩
시멘트 운동장서 공 차며 축구선수 꿈 키우는 아이들
현지 한인 "기적과도 같은 선전에 눈물이…" 선전 기원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우승 후보인 스페인과 첫 경기에서 비긴 뒤에는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그날 온 나라가 들썩였고 SNS는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현지인들은 슬슬 욕심을 내는 것 같아요. 토너먼트에서 한국과 만났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프리카 서쪽 해안(세네갈 인근)에서 약 500km 떨어진 대서양의 섬나라 카보 베르데에 14년째 거주 중인 선교사 조남홍(70) 씨는 이 나라 축구대표팀의 북중미 월드컵 축구대회 선전을 지켜본 현지의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카보베르데는 조별리그 H조 예선에서 '무적함대' 스페인, 월드컵 초대 우승팀 우루과이를 상대로 무승부를 기록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도 승점을 따내면 32강전까지 노릴 수 있게 됐다.
조씨는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카보베르데가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을 때도 엄청났지만, 우승 후보인 스페인을 이겼을 때는 온 나라가 들썩였다. SNS도 아주 난리가 났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카보베르데는 15세기부터 500년 이상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1975년 독립했다.
포르투갈 제국주의 시대 대서양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물게 정치적 안정과 경제 성장을 이뤄내 2007년 유엔(UN)이 지정하는 '최빈개도국'(LDC)에서 '중하위 소득국'(MIC)으로 지위가 격상됐다.
그러나 경제적 지위 격상은 선진국으로부터의 무상 원조 감소로 이어졌다.
산업을 일으킬만한 자본도 천연자원도 없는 이 나라는 지금 약 100만명으로 추산되는 해외 이주민의 송금, 관광 수익, 국제기구의 공적개발원조(ODA) 등으로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조씨는 "열악한 섬나라지만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이 많다. 이곳은 돌밭이 지천인 화산섬이라 맘 놓고 축구를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월드컵 예선과 같은 국제 경기를 치를 수 있는 경기장도 2013년에야 중국 자본으로 지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시멘트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서 꿈을 키우고 있다고 조씨는 부연했다.
그는 "아이들의 꿈은 축구선수로 성장해 포르투갈 등 프로리그 선수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여기 프로축구 리그에 포르투갈의 스카우트가 상주하며 인재를 발굴한다"며 "이번에 국가대표팀 선수 가운데 절반가량은 현지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로 안다"고 덧붙였다.
조씨는 "카보베르데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한다. 프리미어리그 등 유럽 프로 경기가 열릴 때면 경기를 볼 수 있는 술집 등이 사람들로 미어터진다"며 "그러면서 이들은 자국 선수들이 이런 빅리그에서 뛰는 걸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도 경기를 꼼꼼히 챙겨 보고 있다. 스페인을 상대로 비겼을 때는 눈물이 났다"며 "이제 여기 사람들도 슬슬 욕심을 내는 것 같다. 16강전 등 토너먼트 경기에서 카보베르데와 한국이 맞붙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있다"며 웃었다.
카보베르데에서 2년째 태권도 선교활동을 하는 김영기(47) 사범도 월드컵으로 후끈 달아오른 현지의 축구 열기를 전했다.
그는 "온 나라가 흥분 상태다. 강팀을 상대로 비겼던 두 번의 경기가 끝난 뒤엔 사람들이 어김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도로는 경적을 울리는 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2002년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김 사범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지 50년이 된 지난해 카보베르데 스포츠계에서는 의미 있는 일들이 많았다. 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땄고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또 이곳에서 처음으로 국기원 태권도 심사가 시작돼 개인적으로 기쁘게 생각했는데, 올해 월드컵 본선에서 엄청난 일을 해내니 현지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놀랍고 반갑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아프리카에서도 변방인 나라가 정치나 경제, 외교가 아닌 축구를 통해 전 세계의 이목을 끄는 데 대해 현지인들은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며 "앞으로도 모든 면에서 이 나라가 부흥하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현지에서 발전소 운영을 하는 한인 김기태(42) 씨는 "스페인, 우루과이와 경기에서 카보베르데가 비긴 날 섬 전체가 들썩들썩했다. 현지인들의 열광이 어마어마했다"며 "마치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나라가 축구 강국들을 상대로 대단한 것을 이뤘다. 스페인을 상대로는 다들 질 거라고 생각했고, 우루과이전 때는 스페인전의 무승부가 우연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씨는 "그런데 말도 안 되는 기적 같은 경기 결과를 보고 모두가 열광하고 놀랐다"며 "외국인으로서 지켜보는 나도 깜짝 놀랄 만큼 신기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지인들은 축구 강국인 스페인, 우루과이와 비겼으니 조별리그 다음 상대인 사우디는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응원하는 입장에서도 카보베르데가 적어도 32강까지는 가면 좋겠다. 그래서 열악한 이 나라에 관광객도 많이 찾아오고 선진국 지원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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