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채 금리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채권시장 안팎에서는 '전 구간 4% 시대' 진입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물가 상승 우려와 한국은행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전망,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매파적 기조가 맞물리며 국채금리 상방 압력이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2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시장에서 4%를 밑도는 구간은 2년물과 3년물뿐이다. 5년물 이상 장기채 금리는 이미 4%를 넘어섰고, 30년물은 4.3%대까지 상승했다.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이후 외국인 자금이 대거 유입됐음에도 국채금리가 오름세를 이어가면서 시장에서는 국고채 전 구간이 4%대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최근 국채금리 상승 배경으로 물가 상승 압력과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전망, 미국 연준의 매파적 기조를 꼽고 있다. 특히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로 국제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물가 상방 압력이 확대된 점도 채권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한은은 최근 물가가 예상보다 오랜 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고 진단하며 물가 안정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지난 5월 수정경제전망에서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모두 상향 조정했다. 시장에서는 오는 7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가 25bp(1bp=0.01%포인트) 인상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으며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 점 역시 채권시장에는 부담이다. 지난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기준금리가 동결됐지만 금통위원 2명이 금리 인상 소수의견을 제시했다.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도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문구가 새롭게 포함되면서 시장은 이를 사실상 긴축 재개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기와 물가 전망이 동시에 상향 조정된 점도 금리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미 연준이 예상보다 강한 매파적 기조를 내비친 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준은 최근 공개한 금리 점도표에서 향후 정책금리 경로를 기존보다 높게 제시했다. 2026년 정책금리 중간값은 기존 3.4%에서 3.8%로, 2027년은 3.1%에서 3.6%로 각각 상향 조정됐다. 미국이 긴축 기조를 강화하면 미 국채 금리 상승과 함께 국내 금리 역시 하락 압력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에는 통화정책과 물가 외에도 인공지능(AI) 투자 확대가 장기금리의 구조적 상승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 인프라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하면서 대규모 자금 수요가 발생하고 있어서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투자 수요가 채권시장 수급 부담을 키우며 장기금리 하락을 제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AI 확산이 생산성 향상과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촉진하면서 글로벌 경제 성장률을 높이는 동시에 장기금리 상승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AI 관련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는 자금 수요 증가와 채권 공급 확대를 유발해 채권시장에 구조적인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와 같은 금리 상승세가 장기간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되고 국제 유가가 안정세를 되찾으면 물가 부담 역시 점차 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 연구원은 "국내 채권시장은 반도체 산업 성장세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며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에 따른 유가 안정과 AI 투자 과열 진정이 확인되면 미국과 국내 국고채 금리는 하반기 중 고점을 확인한 뒤 안정화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시장에서는 국고채 3년물이 4%를 돌파하면 '전 구간 4% 시대'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단순한 금리 상승을 넘어 한국 경제의 중장기 금리 수준 자체가 한 단계 높아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국고채 2~3년물이 4% 수준에 안착한다는 것은 단순한 채권 수급 불균형이나 일시적인 통화 긴축의 결과가 아니다"며 "시장 참가자들이 성장률과 물가, 기준금리의 새로운 균형 수준을 재평가하면서 과거보다 높은 금리 환경을 새로운 기준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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