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글로벌 AI 시장은 GPU 판매가 곧 수익으로 직결되는 엔비디아의 생태계 지배구조 속에 있다. 국내 기업들이 AI 팩토리나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해 이 생태계에 진입하는 것은 시장 확장 측면에서 현실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존 구조가 고착화될 경우 독점적 통제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 AI 산업의 지향점이 단순한 하드웨어 수급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인프라 수출을 넘어 AI 서비스 중심의 제품을 로컬 산업과 일체화시키고, 독자적인 가치사슬을 주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미토스 사태’의 경고…외산 의존 탈피할 가속기 전면 도입 시급
이 같은 기술 종속에 대한 우려는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일어난 AI 무기화 경향과도 궤를 같이한다. 최근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앤스로픽의 최신 AI 모델인 ‘미토스5’와 ‘페이블5’에 대한 외국인 접근을 제한한 조치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글로벌 빅테크와 AI 안전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협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우방국이더라도 자국의 안보 판단에 따라 핵심 기술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는 현실이 확인됐다.
G7 정상회의 등에서 우방국 중심의 접근성 확대가 논의되더라도 최종 통제권은 결국 기술을 쥔 국가에 있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해 해외 생태계에 진입하더라도, 독자적인 원천 기술이 없다면 외부 변수와 통제에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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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돌파구로 엔비디아 GPU(그래픽처리장치)에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AI 가속기 다양화가 시급하다. 국내외 시장에서 GPU 외에 NPU(신경망처리장치)나 구글 TPU(텐서처리장치) 등의 다양한 AI 가속기를 전면적으로 도입해야만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상력을 높이고 독자적인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 추론’ 시대의 족쇄…CPO·CXL 국산 로드맵으로 병목 뚫어야
엔비디아가 장악한 기술적 방어막은 하드웨어 칩 자체보다 강력한 소프트웨어 생태계인 ‘쿠다(CUDA)’와 GPU 간 병목을 해결하는 ‘엔비디아링크(NVLink)’에서 나온다. 특히 최근 AI 시장이 일회성 학습에서 지속적인 서비스(추론) 단계로 변모하면서 엔비디아의 지배력은 한층 더 강력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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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자본 지출(CapEx)에서 운영 지출(OpEx)로의 전환을 도모하려는 엔비디아의 전략과 맞닿아 있다. AI 팩토리를 통해 일회성 인프라 구축에 멈추지 않고, AI 스스로 ‘다단계 장기 추론’을 수행해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서비스 플랫폼 구조로 시장을 리드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방대한 연산이 발생하며, 개발자들의 쿠다에 대한 종속성은 더욱 견고해진다.
이 장벽을 깨기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면에서의 파괴적 혁신이 요구된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쿠다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가속기를 최적화할 수 있는 오픈소스 생태계에 과감히 투자하는 것이다. 아울러 하드웨어 병목 현상에 대해서는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패키지 자체에 광학 소자를집적해 전기 신호 대신 빛으로 데이터를 교환하는 CPO(공패키징 광학) 기술 연구에서 성과를 창출해야 하며, 단기적으로는 장치 간 메모리를 묶어 데이터 이동 병목을 해결하는 차세대 인터페이스인 CXL(컴퓨트 익스프레스 링크) 응용에 집중해야 한다.
◇제조 현장의 노하우 사수…‘오징어게임’ 참여자 아닌 규칙 설계자로
기술 주권과 데이터 주권이 요구되는 시대에 한국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세계적인 수준의 검색·메신저·금융 등 플랫폼 서비스 역량과 강력한 제조업 기반 데이터다. 특히 가상 공간을 넘어 실물 세계와 융합하는 ‘피지컬 AI’ 분야는 외산 거인과 맞설 수 있는 최적의 격전지다. 국방·금융·국가행정망 등 핵심 공공 영역의 안보를 지키고 기술 종속을 막으려면 우리 제조 현장의 고유한 데이터와 노하우를 선점해야만 한다.
글로벌 빅테크가 제공하는 AI 인프라는 우리가 비용을 지불하고 도입해야 하는 구매 목록일 뿐이다. 반면 진정한 경쟁력은 국내 제조 현장의 숙련된 공정 노하우와 데이터를 집약한 ‘K-월드모델’에서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드모델(World Model)은 AI가 현실 세계의 물리적 환경과 산업 현장을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도록 학습한 디지털 세계 모델을 뜻한다. 제조 설비와 공정, 작업자의 경험, 생산 과정에서 축적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반영할수록 성능이 높아지는 만큼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자산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플랫폼이 범용 AI 생태계 확장에 집중하고 있다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기술과 현장 데이터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K-월드모델 구축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외산 플랫폼 의존도를 낮추고 AI 시대의 주도권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술적 방어벽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AI 생태계의 핵심 가치를 만들어내는 ‘알맹이’를 확보하는 일이다. 나아가 사람의 개입 없이 AI 에이전트들이 스스로 거래하고 협력하며 경제 활동을 수행하는 차세대 에이전트 경제의 설계 역량을 갖춰야 한다. 엔비디아 중심 생태계의 장벽을 낮출 오픈소스 투자와 제조 현장 데이터를 담은 K-월드모델의 결합은 외산 인프라 종속을 줄이고 기술 주권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 해법으로 꼽힌다.
전통적인 기술 DNA를 바탕으로 글로벌 빅테크가 설계해 놓은 시장의 단순 참여자에 머물지 않고, 게임의 규칙 자체를 주도하는 설계자로 진화해야만 냉혹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글로벌 빅테크의 ‘오징어게임’ 참여자 아닌, 규칙 설계자가 돼야 생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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