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이 끝난 지 73년.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한 역사의 현장을 온몸으로 겪어낸 전쟁 영웅들은 어느덧 90대. 전우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남은 이들은 병마와 가난, 고독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전쟁의 기억 또한 이들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경기일보는 인천의 6·25 참전 세대를 만나 국가를 위해 헌신한 그들의 현재 삶과 기억을 살펴보며, 우리가 이들 영웅을 기억하기 위한 아카이브 구축과 미래세대에 전승하기 위한 방안 등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그날의 기억은 한순간의 꿈 같습니다. 지금은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죠.”
인천 부평구의 한 노인정 앞 벤치에서 만난 한 올해 97세인 허영철씨. 그는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연희고지 전투 등을 직접 겪은 해병대 2기 참전용사다. 허씨는 아내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홀로 살고 있다.
그는 “먹고 살게 없어 군대나 가자 싶어 19살에 해병대 2기로 입대했고, 1년만에 전쟁이 터졌다”며 “험준한 산악지대 전쟁터에서 겨우 목숨을 건져 살아왔는데, 곧바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다”고 말했다. 이어 “1950년 9월15일 오후 인천 만석동 인근에 상륙했는데, 인천이 온통 불바다여서 마음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쉴틈도 없이 그는 서울 탈환 작전에 투입, 김포비행장을 점령하고 한강을 건넌 뒤 서울 연희고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아직도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다”며 “같은 동족인데도 서로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니 정말 끔찍하다”고 말했다.
허씨는 1960년대 상사로 전역했지만, 사회는 또 다른 전쟁터였다. 전쟁 영웅이었지만 사회에서는 초년병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부평의 한 백화점에서 경비원으로 약 12년 동안 근무하다 50대에 퇴직한 그는 이후 양로원을 찾아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한국을 지킨 허씨에게 남은 것은 오래된 훈장과 매월 받는 40만원의 보훈수당이 전부다.
허씨는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해 조국을 수호할 것”이라며 “그저 남은 기간 나를 비롯해 얼마 없는 동지들을 조금 더 생각해줬으면 할 뿐”이라고 말했다.
6·25 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인천의 참전 유공자들이 정작 노년에는 가난과 외로움, 불안한 삶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22일 국가보훈부가 인천 참전유공자 7천435명을 비롯해 전국 11만2천540명의 생활 실태를 분석한 결과, 43.7%가 저소득층(기준중위소득 50% 미만)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보훈대상자 평균(27.9%)보다 15.8%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참전 유공자 대부분은 80대 이상 고령층이라 79.2%가 일을 하지 않는다. 일을 해도 임시·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비율이 7.1%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경제적 여건도 넉넉하지 않다. 평균 연소득은 2천974만원으로, 전체 보훈대상자 평균 연소득(4천245만원)의 약 70% 수준에 머문다.
이들은 매월 받는 보훈급여 등 사실상 국가 지원에 의존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주 소득원은 보훈급여가 59.9%로 가장 높고,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20.1%) 등이다. 노후 수단 없음이 11.9%에 이른다.
특히 참전유공자 중 61.8%는 2인 가구이다. 배우자와 사별 및 이혼 등으로 홀로 생활하는 1인 가구 비율도 22.7%에 이른다.
가족과 친인척 간 교류도 활발하지 않다. 따로 사는 형제·자매를 포함한 친·인척과의 연락 빈도는 ‘1개월에 1~2회’가 28.4%로 가장 많았다. 이어 ‘3개월에 1~2회’ 24.7%, ‘1년에 1~2회’ 22.2% 순이다. ‘전혀 연락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6.7%이다. 이처럼 사회적 관계망이 약화하면서 정서적 고립 문제도 심각하다. ‘몸이 아파 집안일을 부탁해야 할 때 도움을 줄 사람이 없다’는 응답은 19%였으며, ‘갑자기 돈을 빌려야 할 경우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다’는 응답은 48.2%에 이른다.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다’는 응답도 26.6%이다.
또 참전유공자의 건강도 취약하다. 78.9%는 6개월 이상 투병하거나 약을 복용하고 있는 만성질환자이다. 자신의 건강 상태를 ‘나쁘다’고 평가한 비율은 49.8%로, 전체 평균(38.7%)보다 11.1%포인트 높다. ‘옷 입기나 목욕 등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응답은 37.9%이며, ‘통증이나 불편감을 느끼고 있다’는 응답도 36%로 나타났다. 또 ‘걷는 데 지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7.6%에 이른다.
이 같은 건강 악화는 의료비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보훈의료지원 대상자가 이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보훈병원과 위탁병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가까운 병원으로 자주 다녀야 하는 고령 참전유공자의 부담은 더욱 크다. 지난 1년간 지출한 의료비가 부담된다고 답한 비율은 40%에 이른다. 이 같은 진료비 부담으로 인해 필요한 치료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4.7%로 나타났다.
참전유공자들의 정신건강 상태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 척도 조사 결과, 우울 위험군에 해당하는 비율은 22%, 고위험군은 20% 등이다. 참전유공자 5명 중 3명꼴로 우울 증상을 겪고 있는 셈이다. 특히 우울 고위험군 비율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참전유공자의 18.9%는 현재 마음건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원인으로는 ‘우울감과 외로움’을 꼽은 비율이 52.1%로 가장 높았으며, ‘불면 등 수면 문제’가 11.5%, ‘트라우마(PTSD)’가 8.2%로 뒤를 이었다. 참전유공자들은 전쟁 과정에서 겪은 부상과 전우 및 가족의 죽음 등 다양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배우자 사별과 사회적 관계망 축소, 상실감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정신건강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송다영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참전유공자들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세대인 만큼 보훈수당 현실화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며 “특히 80~90대 고령층이 많은 만큼 소득 보전뿐 아니라 주거 지원, 요양보호·간병 서비스 같은 일상 돌봄 지원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훈병원이나 위탁병원 제도가 있더라도 실제로는 거리 문제나 이동 부담 때문에 집 근처 일반 병원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지역 의료기관 연계나 진료비 지원 확대 등 의료 접근성 보완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용호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참전유공자들은 전쟁 과정에서 부상 등을 겪으며 경제활동이 제한되고, 그만큼 소득 수준도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경제활동이 줄면 일상에서 사람을 만날 기회도 줄어 사회적 고립과 우울감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에 대한 소득 지원뿐 아니라 건강관리, 사회참여, 돌봄까지 함께 묶은 종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특히 보호자가 없거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고령 참전유공자들이 돌봄 서비스를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장기요양 등 지원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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