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인 이곳은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간의 지혜와 자연의 생명력이 결합해 만들어진 기적의 공간이다. 도심 속 소음과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휴식처가 돼주는 숨은 국내 명소를 소개한다.
함양 상림공원. / 함양군 공식 블로그, AI
경남 함양에 자리한 상림공원의 역사는 통일신라 진성여왕 시절부터 시작됐다. 당시 최치원 선생은 함양읍 중앙을 가로지르던 위천의 잦은 범죄와 홍수 피해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목격했다. 이후 선생은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직접 둑을 쌓고 지리산과 백운산에서 자라는 수많은 나무를 옮겨와 심는 치수 정책을 단행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호안림(護岸林)의 시작이다. 조성 당시에는 ‘대관림(大館林)’이라 불리며 지금보다 훨씬 큰 규모를 자랑했으나, 오랜 세월 동안 큰 홍수를 겪으며 중간 부분이 유실됐다. 이후 살아남은 위쪽 숲을 '상림', 아래쪽 숲을 '하림'으로 부르게 됐으며 1962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됐다.
상림공원은 길이 1.6km, 폭 80~200m에 달하는 거대한 선형태의 숲을 이루고 있다. 약 20만㎡의 면적 안에는 느티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개서어나무 등 120여 종, 2만여 그루의 낙엽 활엽수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밀도 높은 숲길을 완성한다. 숲 속에 들어서는 순간 울창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한낮에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낸다.
함양 상림공원. / 함양군 공식 블로그, AI
공원의 가장 큰 특징은 오랜 세월 동안 자연스럽게 형성된 천연림과 같은 식생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인공림으로 시작했음에도 천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다양한 참나무류와 서어나무류가 안정적인 생태계를 이뤄 자연학습원으로도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숲바닥은 평평하고 부드러운 흙길과 포장길이 잘 섞여 있어 맨발로 걸으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상림공원의 또 다른 매력은 울창한 숲에만 머물지 않는다. 공원 옆으로 펼쳐진 대규모 사계절 꽃단지와 연꽃단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이곳의 진가는 여름철에 드러난다.
여름이 되면 21㏊에 달하는 넓은 연못 위로 수만 송이의 연꽃이 일제히 피어나 장관을 연출한다. 백련, 홍련, 수련 등 다양한 종류의 연꽃이 초록빛 연잎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 여름날의 평온한 풍경을 완성한다. 또 숲길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역사적 유적들도 빼놓을 수 없다.
상림공원 초입 부근에 자리한 조선시대 누각인 ‘함화루’는 과거 함양읍성의 남문이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당시에는 백성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외부의 침입을 감시하는 군사적, 행정적 요충지 역할을 담당했다. 1932년 고종 황제의 서자였던 이강 공이 함양을 방문했을 때 이를 기념하고 문화재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현재의 상림공원 자리로 이전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 구조로 이뤄진 함화루는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건축학적 가치가 높다. 특히 2층 누각에 올라서면 상림공원의 울창한 수목과 멀리 흐르는 위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함양 상림공원 연리목. / 함양군 공식 블로그, AI
이 밖에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인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가 몸통을 하나로 합쳐 자라는 ‘연리목’도 연인들의 단골 코스로 꼽힌다. 예로부터 연리목은 남녀 간의 지극한 사랑이나 부부의 두터운 정을 상징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두 나무가 좁은 공간에서 부딪치며 하나의 수액 통로를 공유하게 되는 과정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에 연인들은 나무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부부들은 백년해로를 기원하기도 한다.
상림공원은 교통 접근성이 뛰어난 편이다. 대전통영고속도로 함양IC에서 차로 약 5분 거리에 불과해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마자 푸른 숲을 마주하게 된다. 대중교통 이용객은 함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도 이동하면 된다. 누구나 무료 입장 가능하며, 24시간 상시 개방돼 있다.
개평한옥마을. / 함양군 공식 블로그, AI
일두 정여창 고택. / 함양군 공식 블로그, AI
상림공원에서 멀지 않은 지곡면 개평한옥마을에는 조선 전기 오현(五賢) 중 한 분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생가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이 고택은 대지 면적만 3000평에 달하는 남도 지방의 대표적인 양반 가옥으로, 조선 후기 사대부 주택의 구조와 배치를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지며 젊은 세대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정여창 고택의 특징은 절제된 화려함과 자연 친화적인 공간 배치다. 솟을대문을 지나 사랑채로 들어서면 백 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낸 소나무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정원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안채는 사방이 가로막힌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바람과 빛이 자연스럽게 통하도록 설계돼 선조들의 건축 지혜를 대변한다. 또 한옥의 부드러운 곡선과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마당의 풍경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시각적인 편안함과 깊은 사색의 시간을 선사한다.
누구나 무료 입장 가능하며, 하절기(4~11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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