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광주·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반도체 생산기지 구축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산업 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호남권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 역사상 처음으로 핵심 생산거점을 확보하게 되며, 투자 규모 역시 수백조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수준이 될 전망이다.
23일 머니투데이 단독보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오는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토공간 대전환(지방균형국가)' 민관 합동회의를 주재한다. 회의에는 정부 부처 수장들과 주요 대기업 경영진이 참석해 지역균형발전 전략과 미래 산업 육성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등이 국가 성장동력을 이끌 핵심 산업으로 제시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산업 인프라를 전국으로 분산하는 방안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미일 순방 동행 경제단체 및 기업인 간담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재판매 및 DB 금지) 2025.8.20/뉴스1
관심은 반도체 기업들의 후속 투자 발표에 쏠리고 있다.
우선 SK그룹은 오는 30일 광주에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반도체 후공정 패키징 시설 정도가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웨이퍼 생산과 회로 형성이 이뤄지는 전공정 시설까지 포함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역시 광주·전남권을 대상으로 중장기 반도체 생산시설 구축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전공정 생산라인이 포함된다면 단순 생산공장을 넘어 첨단 반도체 생태계 자체가 호남 지역에 형성되는 셈이다.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투자 규모는 천문학적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첨단 반도체 공장(Fab) 한 곳을 건설하는 데만 현재 기준 최소 50조~60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EUV(극자외선) 노광장비와 첨단 생산설비, 전력 및 용수 인프라 구축 비용까지 포함하면 투자액은 더욱 늘어난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경기 평택캠퍼스에 투자한 누적 금액은 수백조원 규모에 달하며, SK하이닉스 역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만 120조원 이상을 투입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향후 광주·전남 지역에 집행될 투자 규모 역시 수백조원 수준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반도체 투자와 함께 AI 인프라 구축 계획도 발표될 예정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다음 달 충남 아산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AI 산업 경쟁력이 결국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성능에 달려 있는 만큼 반도체 생산기지와 AI 인프라를 동시에 구축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코스피 지수가 전인미답의 9000선 고지를 돌파한 18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코스피 종가를 배경으로 축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코스피는 이날 전일 대비 199.60포인트(2.25%) 오른 9063.84에 장을 마쳤다. 한국 증시는 반도체 대형주의 폭발적인 상승세에 힘입어 지난 5월 26일 장중 8000선을 돌파한 후 불과 16거래일 만에 천의 자리를 바꾸며 '9천피' 시대에 진입했다. 2026.6.18/뉴스1
정부가 이 같은 프로젝트를 강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수도권 집중 현상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국내 반도체 산업은 경기 남부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화성사업장,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와 용인 클러스터 등이 모두 수도권에 위치한다. 반도체 생산시설뿐 아니라 연구개발 인력과 협력업체도 대부분 수도권에 몰려 있다.
정부는 이러한 구조가 지역 간 격차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국가 산업의 리스크를 키운다고 보고 있다. 특정 지역에 산업 기반이 집중될 경우 자연재해나 공급망 문제 발생 시 국가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호남권은 상대적으로 대규모 첨단 제조업 기반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번 투자 계획이 현실화되면 광주·전남 지역은 반도체 생산시설뿐 아니라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 등이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산업벨트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출처23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삼성전자 수원캠퍼스에서 디바이스경험(DX)부문 직원들이 반도체(DS)부문과의 성과급 격차에 항의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고 출근하고 있다. 한편 삼성전자 3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이날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 소외감을 호소하고 있는 DX부문 직원들의 의견을 사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2026.6.23/뉴스1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반도체 산업은 생산라인 하나를 구축하는 데 수십조원이 필요할 뿐 아니라 숙련된 엔지니어와 연구인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현재 국내 반도체 인력 상당수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지방 대규모 공장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력과 용수 문제도 과제다. 최첨단 반도체 공장은 하루 수만 톤 이상의 초순수와 막대한 전력을 사용한다. 따라서 생산시설 유치뿐 아니라 기반시설 구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재계 일각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투자 지역을 정부가 사실상 유도하는 방식에 대한 우려도 제기한다. 미국과 일본, 대만, 중국 등이 생산 효율성과 기술 경쟁력 확보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자율적 판단보다 정책적 목표가 앞설 경우 투자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이번 계획이 실제로 추진된다면 국내 산업 역사에 남을 대형 프로젝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 중심으로 성장해 온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이 처음으로 전국 단위 생산 체계를 갖추게 되는 전환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광주·전남 지역이 단순 지원 거점이 아니라 첨단 반도체 생산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게 될 경우, 국내 산업 지도의 대대적인 재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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