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양과 김하은양. / SBS '궁금한 이야기 Y'
전남 강진군에서 2000년과 2001년 잇따라 벌어진 초등학생 여아 연쇄 실종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유력 용의자로 지목돼 조사를 받은 인물이 지난해 출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20년 넘게 풀리지 않은 사건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온라인에서 커지고 있다.
SBS 시사프로그램 '궁금한 이야기 Y'가 과거 다룬 강진 여아 실종 사건 관련 영상과 자료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수사 과정에서 제기됐던 의혹과 유력 용의자로 거론된 인물의 범죄 이력을 공유하며 진상 규명과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실종된 김성주양과 김하은양. / 경찰
강진 여아 연쇄 실종 사건은 1년 간격으로 강진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사라진 사건을 말한다. 강진읍 동초등학교 2학년이던 김성주(당시 8세)양이 처음 자취를 감춘 것은 2000년 6월이다. 김성주양은 수업을 마친 뒤 학교 앞 문방구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던 오빠를 기다리다 사라졌다. 친구들이 오후 2시 30분과 2시 50분에 문방구 앞에 서 있던 김성주양을 봤지만 오후 3시 무렵 담임교사가 같은 곳을 지났을 때는 이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불과 10여 분 사이에 사라진 셈이다.
이듬해 6월에는 인접한 강진중앙초등학교 1학년 김하은(당시 6세)양이 하굣길에 실종됐다. 김하은양은 같은 반 친구와 집에서 3분 거리인 성요셉여고 입구 횡단보도까지 함께 걸어간 뒤 혼자 남았고, 그대로 행방이 끊겼다. 두 학교는 가까이 붙어 있었고 실종 장소도 멀지 않았다. 두 아이 모두 6월 대낮 하굣길에 혼자 있다 사라졌고, 가족에게는 어떠한 금품 요구나 협박 전화도 없었다.
경찰은 실종 직후 집과 학교 주변, 인근 야산과 폐가, 비닐하우스까지 뒤지고 전국에 전단을 배포했다. 강진 시내 주요 도로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찍힌 통과 차량 1400여대를 일일이 판독했고, 김하은양 실종 당시에는 인근 성요셉여고 학생 721명을 상대로 탐문했지만 목격자는 나오지 않았다. 전국 아동보호시설까지 돌며 조사했으나 두 아이의 행방은 끝내 확인되지 않았고, 사건은 그대로 장기 미제로 남았다.
강진 여아 연쇄 실종 사건을 다룬 SBS '궁금한 이야기 Y'를 캡처한 사진.
수사가 다시 움직인 것은 2008년이다. 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의 범인 정성현이 검거되면서 전국적으로 장기 미제·실종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자는 분위기가 일었고, 강진 사건도 그 흐름 속에서 재조명됐다. 전남경찰청은 장기 실종 어린이 전담수사팀을 꾸려 원점에서 재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이 유력 용의자로 지목한 인물은 A씨였다. A씨는 두 아이가 실종되던 2000~2001년 광주의 한 대학에 다니면서 부모 집이 있는 강진을 수시로 오갔지만 사건 당시 강진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초기 용의선상에는 오르지 않았다. 경찰은 A씨가 범행을 암시하는 듯한 메모를 남긴 점, 실종 시기와 그의 동선이 겹치는 점 등을 근거로 삼았다. A씨의 집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200쪽 분량의 암호 노트에는 어린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 관련 기록이 담겨 있었고, 그가 컴퓨터로 김성주양·김하은양 관련 기사와 함께 공소시효를 검색한 사실도 확인됐다.
온라인에서 다시 회자되는 방송 내용 가운데는 A씨 전 부인의 증언이 관심을 끌고 있다. 전 부인은 방송에서 결혼 생활 당시 집 안을 정리하다 우연히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 어린 여자아이가 나오는 충격적인 장면이 담겨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영상을 본 뒤 큰 충격을 받았고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됐다고 했다. 당시 수사 관계자는 전 부인으로부터 영상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실종 아동과의 관련 가능성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다만 해당 테이프는 끝내 확보되지 못했고, 실종 사건과 직접 연결할 물증도 나오지 않았다.
또 다른 진술이 나오면서 수사는 새 국면을 맞기도 했다. 어린 시절 A씨로부터 성추행과 불법 촬영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남성이 등장해 수사기관에 진술했고, 경찰은 이를 강진 사건과 무관하지 않은 정황으로 보고 수사를 넓혔다. A씨는 이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면소 판결을 받았다. 2010년 무렵에는 A씨가 교도관에게 "실종된 두 아이를 살해하고 유기했다"고 자백해 시신을 찾기 위한 현장검증까지 이뤄졌지만 아이들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A씨가 곧 자백을 뒤집으면서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졌다.
A씨에게는 강진 사건과는 별개의 범죄 전력이 있다. 전 부인과 이혼 절차를 밟던 중 처남을 살해해 2002년 살인 등의 혐의로 징역 15년을 확정받았고, 2017년 출소했다. 이후 또 다른 범죄를 저질러 이듬해 다시 구속돼 재판을 받았고, 복역을 거쳐 지난해 다시 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강진 여아 실종 사건과 관련해서는 살해나 시체 유기를 입증할 직접 증거가 확보되지 않아 검찰에 넘겨지지 못했고,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적도 없다. A씨는 강진 사건 관련 의혹을 부인해 왔으며 경찰 조사에서는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지난해 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소식을 들은 네티즌들 사이에선 "아직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충격적이다", "유가족은 20년 넘게 기다리고 있다", "미제 사건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일부는 과거 수사 기록과 방송 내용을 다시 공유하며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수사 환경은 과거와 달라졌다. 2015년 7월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그 시점까지 시효가 남아 있던 사건은 결정적 증거나 혐의점이 드러날 경우 언제든 처벌이 가능해졌다. 두 아이가 살해된 정황과 범인을 입증할 증거가 나온다면 책임을 물을 길이 열려 있는 셈이다.
강진 여아 연쇄 실종 사건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미제 사건이다. 경찰은 여러 차례 재수사를 벌였지만 두 어린이의 행방과 사건의 실체를 규명할 결정적 단서를 찾지 못했다. 실종 아동의 가족은 아이들이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으로 믿고 지금도 진실 규명을 호소하고 있다. 김성주양의 어머니는 딸이 살아 있다면 가난하지 말라는 마음으로 딸이 입던 옷에 돈을 넣어 둔다고 했고, 김하은양의 아버지는 잃어버린 딸의 이름이 적힌 주민등록등본을 떼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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