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 더봄] 바꿀 수 없는 것과 싸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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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 더봄] 바꿀 수 없는 것과 싸우지 마라

여성경제신문 2026-06-23 10:00:00 신고

신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라인홀드 니버

언제부터인가 모임에서 사진 찍는 일이 불편해졌다. 자리가 끝나고 단톡방에 사진이 올라오면 거기에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머리숱이 빠져 정수리가 훤한, 나이 든 중년의 나다. 실제의 내 모습과 마음속 내 모습 사이의 괴리가 사진 한 장마다 확인되는 기분이었다.

탈모약도 3년 가까이 먹어 보았지만 이미 늦었는지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한동안 그 사실은 나를 우울하게 했고, 자신감에도 생채기를 냈다. 그게 뭐라고, 머리카락 몇 올에 그토록 마음을 쏟던 시절이 있었다.

결국 이대로 살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빠진 머리는 돌아오지 않았고, 지금의 내 모습이 그리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제 이 일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빠지는 머리카락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탓할 사람도, 되돌릴 방법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를 정말로 지치게 한 것은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그 사실과 싸우는 일이었다. 무익한 싸움을 멈추자 정작 중요한 질문인 '어떻게 더 나은 사람이 될까'에 쏟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스위스는 그 험준함을 자산으로 삼았다. 산이 막아선 자리에 정밀 산업과 금융을 세웠고, 농사를 가로막던 봉우리들을 관광과 수력발전의 원천으로 바꿨다. 환경을 이기려 한 것이 아니라 환경과 함께 간 것이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스위스는 그 험준함을 자산으로 삼았다. 산이 막아선 자리에 정밀 산업과 금융을 세웠고, 농사를 가로막던 봉우리들을 관광과 수력발전의 원천으로 바꿨다. 환경을 이기려 한 것이 아니라 환경과 함께 간 것이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피할 수 없는 것과의 협력

탈모는 하나의 작은 사례일 뿐이다. 삶에는 끝내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이미 떠난 사람·돌이킬 수 없는 결정·타고난 조건·흘러가 버린 시간.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것들. 문제는 그것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과 어떻게 지내느냐다.

데일 카네기는 <자기관리론> 에서 "피할 수 없는 것에는 협력하라"고 말한다. 흔히 "피할 수 없으면 받아들여라"로 번역되지만, 그가 선택한 동사는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협력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다. 단순한 받아들임에는 "어쩔 수 없지"라는 체념의 기색이 스민다. 반면 협력은 상대를 인정하되, 그와 더불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동적 태도다.

엽서 속 스위스는 지상낙원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직접 가본 그곳은 낙원이라기보다 사람이 살기엔 척박한 땅에 가까웠다. 바다도 없는 내륙에, 국토의 상당 부분이 농사짓기 어려운 산악지대다. 평지를 갈망할 법한 조건이지만, 스위스는 그 험준함을 자산으로 삼았다. 산이 막아선 자리에 정밀 산업과 금융을 세웠고, 농사를 가로막던 봉우리들을 관광과 수력발전의 원천으로 바꿨다. 환경을 이기려 한 것이 아니라 환경과 함께 간 것이다.

안데스의 잉카·발리의 수박·필리핀 코르디예라의 사람들은 가파른 산비탈을 깎는 대신 그 경사를 따라 계단식 논을 만들었다. 산의 형태에 인간의 삶을 맞춘 것이다. 일본은 또 어떠한가. 지진과 태풍이 끊이지 않는 땅에서 자연의 흔들림을 없애기보다 흡수하는 건축 구조를 고안했고, 무상함을 미학으로 받아들였다. 나일강 문명 역시 통제할 수 없는 범람에 맞서는 대신 삶 전체를 그 리듬에 맞춰 설계했다.

수용, 발버둥을 멈추고 방향을 찾는 일

우리는 종종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든 부정하고 회피하려 든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은 역설적으로 작동한다. 마음의 고통은 늪과 같아서, 빠졌을 때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빨려 들어간다. 빠져나오는 길은 오히려 버둥거림을 멈추는 데 있다.

받아들임은 일어난 일을 무조건 좋아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과의 무익한 씨름을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상실의 아픔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나 그 위에 우리가 덧대는 2차적 저항인 "이래선 안 돼, 부당해, 받아들일 수 없어"는 스스로 만들어낸 고통이며, 종종 1차적 아픔보다 더 오래 우리를 괴롭힌다. 수용은 이 2차적 저항을 멈추는 일이다. 늪에서 버둥거림을 멈추는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이든 체념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일까. 불합리한 현실에 순응하는 패배자의 철학일까. 정반대다. 이 지점을 놓치면 수용은 가장 위험하게 오해된다.

다시 니버의 기도로 돌아가 보자. 사람들은 첫 줄만 기억하지만, 기도의 무게중심은 '평온·용기·지혜'의 균형에 있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오직 '바꿀 수 없는 것'뿐이다.

라이트 형제가 맞선 것은 중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중력을 받아들였다. 그들이 맞선 것은
라이트 형제가 맞선 것은 중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중력을 받아들였다. 그들이 맞선 것은 "인간은 날 수 없다"는 믿음이었다. 불변은 받아들이고, 가변은 바꾼 것이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역사 속 위인들은 대개 불가능에 도전한 사람들로 묘사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그들이 도전한 것은 '어려운 것'이었지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라이트 형제가 맞선 것은 중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중력을 받아들였다. 그들이 맞선 것은 "인간은 날 수 없다"는 믿음이었다. 불변은 받아들이고, 가변은 바꾼 것이다. 위대함은 무모한 용기가 아니라, 무엇을 수용하고 무엇에 맞설지를 가르는 분별력에 있었다.

이처럼 받아들임과 변화는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받아들임은 변화의 전제조건이다. 바꿀 수 없는 것과의 싸움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바꿀 수 있는 것에 쏟을 힘이 남는다.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의 참상 속에서 모든 것을 빼앗긴 인간에게서도 끝내 빼앗을 수 없는 한 가지를 발견했다. 그는 이를 '인간의 마지막 자유'라 불렀다. 바로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다. 수용은 외부 현실을 향한 것이지 개인의 신념·존엄·태도까지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현대 심리학의 수용전념치료 역시 같은 맥락을 강조한다. 수용은 "다 받아들이고 멈춰 서라"가 아니라, 언제나 가치 기반 행동과 짝을 이룬다. 불필요한 내적 씨름은 내려놓되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향한 걸음은 멈추지 말라는 뜻이다. 수용은 정지가 아니라 방향을 되찾기 위한 정돈이다.

넬슨 만델라가 보여준 세 가지 층위

받아들임·바꿈·지킴. 이 세 층위를 가장 가혹한 현실 속에서 온전히 구현해 낸 사람이 있다.

넬슨 만델라는 1962년에 체포되어 1990년에 풀려났다. 27년의 세월이었다. 그중 18년을 로벤섬 감옥에서 보냈고, 석회암 채석장의 강한 반사광 탓에 영구적인 눈 손상을 입었다. 극도로 제한된 면회와 서신 속에서 그는 가족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니버의 기도가 그대로 구현되어 있었다.

그는 받아들였다. 27년의 시간·감금된 몸·채석장의 환경을 부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규칙적인 일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순응하지는 않았다. 감옥 안에서 동료들과 연대해 처우 개선을 이끌어냈고, 바꿀 수 있는 것을 정확히 찾아 바꾸었다. 그리고 끝내 빼앗기지 않았다. 그의 신념과 존엄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바꿀 수 없는 것과의 싸움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오히려 자신을 지켜냈다.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평온과 용기를 위한 세 걸음

스트레스와 고통 속에서 이 원칙을 실천하기 위한 세 단계를 제안한다.

첫째, 알아차려라. 지금의 괴로움이 바꿀 수 없는 것과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그 정체를 알아차리는 순간, 고통은 막연한 무게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뀐다.

둘째, 내려놓아라. 상황을 바꿀 수 없는 것·바꿀 수 있는 것·끝까지 지켜야 할 것으로 나누고, 바꿀 수 없는 것에 쓰던 에너지를 거둬들인다.

셋째, 함께 가라. 환경과 타인을 바꾸려 하기보다, 그 조건 안에서 어떻게 작동할지를 고민한다. 협력은 체념이 아니라 전략이다.

물론 이 원칙은 부당함에 눈감으라는 뜻이 아니다. 싸워야 할 것은 분명히 따로 있다. 그것을 놓친다면 협력이 아니라 방치가 된다.

이 모든 것이 항상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어제는 바꿀 수 없던 것이 오늘은 바꿀 수 있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수용은 한 번의 결심이 아니라, 계속해서 다시 판단하고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다.

단톡방에 사진이 올라온다. 정수리가 훤한, 나이 든 내가 거기 있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제 그 사진과 다투지 않는다. 싸움을 멈춘 자리에서, 나는 다시 묻는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수용전념치료= 심리적 고통을 억제하거나 회피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확인하여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전념하도록 돕는 현대 심리학의 행동치료 기법이다.

여성경제신문 김승중 심리학 박사·마음의 레버리지 저자
spreadksj@gmail.com

김승중 심리학 박사 / 리더십 코치

광운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양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GS건설 재무팀을 거쳐 데일카네기코리아에서 17년간 교육컨설팅본부장으로 근무하며 삼성, 현대, LG, SK 등 주요 대기업의 리더십 개발 프로젝트를 기획·총괄했다. 국제 공인 마스터 트레이너로서 수백명의 강사를 양성한 전문가다. 현재는 리더십·코칭 전문 컨설팅 회사 TGW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임원과 핵심 리더들이 아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그 변화가 조직 전체로 확산하도록 돕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인생의 내공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 <마음의 레버리지> 가 있으며, 월간마음건강 고정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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