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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후 경영학박사·외국변호사] 군맹무상(群盲撫象)이란 말이 있습니다. 장님 여럿이 코끼리를 만지며 코끼리의 다리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기둥이라 하고, 귀를 만진 사람은 부채라 하며, 코를 만진 사람은 뱀이라 합니다. 저마다 틀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각자가 전체를 본 것이 아닐 뿐입니다.
오늘날 인공지능(AI)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꼭 이와 같습니다. 누군가는 AI가 인류의 구원자라 하고, 누군가는 파멸의 시작이라 합니다. 언론은 매일 새로운 극단을 제조하고, 리더들은 그 사이 어디쯤에서 방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낙관도, 공포도, 지금 이 순간 리더에게는 사치입니다. AI에 대한 낙관론은 아름답습니다. 생산성 혁명, 창의성의 증폭, 불가능이 가능이 되는 시대가 낙관입니다. 저도 그 미래를 믿습니다. 그런데 ‘믿는다’는 것과 ‘준비한다’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많은 리더들이 AI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키노트 영상을 공유하며, 팀원들에게 ‘우리도 AI 해야 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조직에서 AI가 어떤 업무 프로세스에 들어가야 하는지, 어떤 데이터가 필요한지, 어떤 리스크가 따르는지는 아직 잘 모르는게 현실입니다. 낙관론은 방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속도와 방법은 주지 않습니다. 코끼리가 좋은 탈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과, 코끼리에 올라타는 법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리더의 역할은 ‘좋다’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낙관론에 취한 리더는 투자는 하지만 결과를 내지 못합니다. AI 도입을 선언하지만 조직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 사이, 정작 조용히 현장에서 AI를 업무에 녹여내고 있는 실무진이 오히려 리더보다 앞서가는 역전 현상이 벌어집니다.
반대편에는 공포론이 있습니다. AI 도입으로 일자리가 사라진다, 개인정보가 위협받는다, AI가 인간의 판단을 대체한다, 급기야 AI가 통제를 벗어난다. 등의 공포와 좌절이 있습니다. 이것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리스크는 분명히 실재합니다. 그러나 공포는 행동을 멈추게 합니다. 공포론에 갇힌 리더는 ‘AI 도입을 좀 더 지켜보자’는 말을 반복합니다. 규제가 정리될 때까지, 기술이 성숙할 때까지, 다른 회사 사례가 나올 때까지 행동을 멈춥니다.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경쟁자는 이미 두 번째, 세 번째 실험을 끝내고 있습니다.
공포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공포에는 분명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문제는 그 공포를 ‘주의’로 전환하지 못하고 ‘마비’로 귀결시키는 것입니다. 칼이 위험하다고 부엌에 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쓰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AI도 같습니다. 리더가 공포를 표명하는 순간, 조직은 그 신호를 읽습니다. ‘아, 우리 리더는 AI를 두려워하는구나.’ 그 순간부터 조직 내 AI 활용의 실험은 위축됩니다.
무엇보다도 신호를 현실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어설프게 신호를 현실화하는 리더가 있습니다. AI 챗봇을 붙여놓고 고객 상담을 완전히 대체했다 선언합니다. 기술이 준비되지 않았거나, 조직이 준비되지 않았거나, 혹은 둘 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호를 현실로 당겨 쓰면 반드시 역풍이 옵니다.
신호를 읽는 것은 리더의 감각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언제, 어떻게 현실로 전환할지를 판단하는 것은 리더의 지혜입니다. 기술은 언제나 우리의 기대보다 느리게 도착하고, 그 이후에는 우리의 준비보다 빠르게 확산됩니다. 리더는 그 간극을 읽는 사람이어야 합니다.지금 당장 AI로 모든 것을 바꾸려 하지 마십시오. 동시에, AI가 아직 멀었다고 손을 놓지도 마십시오. 신호를 현실로 만들 준비를 지금부터 차분히, 그러나 속도감 있게 쌓아가십시오.
그렇다면 리더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직접 써보십시오. 보고서를 읽고 AI를 이해하려 하지 마십시오. 오늘 당장 챗GPT에, 클로드에, 제미나이에 업무 질문을 던져보십시오. 당신의 회의 안건을 정리해 달라고 해보십시오. 어떤 답이 오는지, 어디서 틀리는지, 어디서 놀랍도록 정확한지를 직접 느끼십시오. 리더의 경험이 조직의 방향을 만듭니다. 둘째, 현장의 실험을 허용하십시오. AI의 도입은 전사 선언이 아니라 현장의 실험에서 시작됩니다. 그 실험이 성공하면 확대하고, 실패하면 배우면 됩니다. 실험을 막는 조직 문화가 가장 위험한 리스크입니다. 셋째, AI를 쓸 줄 아는 것과 AI를 판단할 줄 아는 것을 구분하십시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AI를 직접 개발하는 역량이 아닙니다. AI가 내놓은 결과물이 맞는지, 우리 조직의 맥락에 적합한지, 어떤 리스크가 숨어있는지를 판단하는 역량입니다. 그 판단력은 경험과 학습에서 옵니다.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그 판단력은 절대 생기지 않습니다.
AI 시대의 리더십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를 감지하고, 조직을 정렬시키며, 현실적인 실행을 이끄는 것’입니다. 그것은 낙관론도 아니고 공포론도 아닙니다. 현실감각입니다. 리더의 현실감각이 조직의 생존이 됩니다. 오늘도 AI는 발전하고 있습니다. 어제의 불가능이 오늘의 가능이 되고, 오늘의 신기함이 내일의 일상이 됩니다. 리더가 그 속도를 인지하지 못하면, 조직은 어느 순간 시대의 뒤편에 남겨집니다. 그것이 가장 큰 리스크입니다. 리더는 코끼리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리도, 귀도, 코도, 등도 다 보고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타서 함께 이동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AI 시대 리더에게 요구되는 현실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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