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여버린 디지털자산법···‘규제 불확실성’에 韓 시장 고사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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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여버린 디지털자산법···‘규제 불확실성’에 韓 시장 고사 위기

이뉴스투데이 2026-06-23 08: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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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진영 기자]
[그래픽=김진영 기자]

[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이 정치 일정과 이해관계 충돌에 막히면서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길어지고 있다. 여야가 오는 9월 정기국회 처리를 목표로 논의를 재개할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과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둘러싼 쟁점이 그대로 남아 연내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이 늦어지는 사이 미국·유럽·일본은 제도 정비를 바탕으로 스테이블코인, 실물연계자산, 토큰증권 등 신사업을 빠르게 넓히고 있어 국내 시장이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디지털자산 사업자들은 결제·송금·수탁·토큰화 상품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한 내부 검토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현행 제도에서는 법인 고객 대상 서비스, 스테이블코인 기반 정산, 디지털자산 보관·관리, 해외 이전 업무의 허용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실제 서비스 출시까지 이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법안 처리 시점뿐 아니라 어떤 사업자가 어떤 요건을 갖춰야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지가 정해져야 투자와 인력 채용, 시스템 구축도 본격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가상자산 사업자 유형을 나누고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 체계를 정하는 법안이다. 정부와 국회는 지난해부터 입법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지만, 올해 상반기가 끝나가는 현재까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초기에는 은행권과 핀테크 업계가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두고 맞섰고, 이후에는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논란이 불거졌다. 중동 사태로 당정 협의가 미뤄진 데다 6·3지방선거와 후반기 국회 원 구성까지 겹치면서 논의는 사실상 멈춰 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후반기 정무위원회 구성이 마무리되면 9월 정기국회에서 법안을 다룰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관건은 정부안이다. 금융당국이 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15~20%로 제한하는 방안이나, 은행 중심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의 지분율 51% 기준을 다시 제시할 경우 논의가 재차 꼬일 수 있다. 해당 안은 업계와 정치권의 반발을 샀고, 입법조사처에서도 위헌 소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입법 의지는 남아 있지만 쟁점 정리가 끝나지 않은 셈이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제도 정비를 넘어 시장 선점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은 비트코인 비축과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대를 국가 전략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월가에서는 JP모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전통 금융사가 토큰화 펀드, 비트코인 관련 상품,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 준비. 비자, 마스터카드, 페이팔도 스테이블코인을 결제와 송금 인프라에 연결하고 있다. 유럽은 미카(MiCA)를 통해 디지털자산 규율을 마련, 일본도 토큰증권과 엔화 스테이블코인, 국채 토큰화 기반을 이미 갖췄다.

반면 한국은 법인 투자, 디지털자산 ETF·파생상품, 원화 스테이블코인, 과세 기준 등 핵심 제도의 방향이 아직 뚜렷하지 않다. 연간 160조원 규모의 디지털자산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지적도 이런 제도 공백과 맞닿아 있다. 국내에서 관련 상품 출시나 법인 투자가 제한되는 흐름이 이어질 경우 투자자와 기업의 해외 플랫폼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입법 지연이 행정 절차상의 문제를 넘어 자본과 사업 기회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실무 현장에서도 불확실성은 적지 않다. 스테이블코인을 지급결제에 활용하려는 기업은 전자금융거래법상 전자금융업 등록이 필요한지,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대상에 해당하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이용자로부터 스테이블코인을 받아 정산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보유하는 구조라면 보관·관리업으로 해석될 가능성도 있다. 전자금융업 등록과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는 모두 비용과 준비 기간이 필요한 절차다. 적용 법령이 명확하지 않은 환경에서는 사업자가 서비스를 설계하고도 출시 시점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유럽은 이 문제에 대해 비교적 앞서 기준을 제시한 사례로 꼽힌다. 유럽은행감독청은 이머니토큰, 즉 법정화폐에 가치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서비스가 미카와 기존 결제서비스 규제 사이에서 이중 인가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보고 비조치 의견서를 냈다. 단기적으로는 일부 거래에 추가 인가를 요구하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관련 법 체계를 정비하는 방향을 제안했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어떤 규제를 준비해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측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한국 역시 새 디지털자산 규율과 기존 금융규제의 접점을 정리하지 못할 경우 유사한 혼선이 반복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기본법 부재는 기존 규제의 역할을 넓히는 결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가상자산거래소 신고와 대주주 변경은 자금세탁방지 목적의 특금법 체계에서 관리되고 있다. 별도 업권법이 마련되지 않은 제도 공백 속에서 특금법이 거래소의 소유·지배구조 판단까지 일부 담당하는 구조가 된 셈이다. 네이버와 두나무의 주식교환 과정에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변수로 거론된 것도, 이 같은 제도 구조와 맞닿아 있다. 자금세탁방지 규제가 기업 인수합병의 불확실성으로 번질 수 있는 만큼, 법체계 정합성을 둘러싼 논의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스타트업과 핀테크 기업 입장에서도 규제 부담은 주요 변수로 남아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최근 가상자산 규제합리화 간담회를 열고 업계 의견을 수렴했지만, 금융·외환당국은 당장 전향적인 규제 완화에 신중한 분위기다. 가상자산 해외이전업 진입 문턱을 낮추는 문제 역시 현행 외국환거래법상 VASP 요건이 정해져 있어 시행령 개정만으로 풀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 나온다. 결국 디지털자산기본법에 어떤 방향이 담기느냐가 후속 규제 완화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제도화 논의가 단순한 규제 완화 요구로만 해석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명확한 기준을 통해 사업자와 투자자의 책임 범위를 구분하고, 부실 사업자는 걸러내면서 합법적인 서비스에는 제도권 안에서 사업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는 취지다. 투자자 보호와 산업 육성은 상충하는 목표라기보다 시장이 지속되기 위해 함께 설계해야 할 과제로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가 더 늦어질 경우 한국이 글로벌 규칙을 만드는 쪽이 아니라 따라가는 쪽에 머물 수 있다고 진단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자산 시장은 이미 결제, 투자, 송금, 자산 토큰화로 확장되고 있다”며 “국내 제도가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면 기업은 해외에서 답을 찾고, 한국 시장은 거래만 남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자 요건과 발행 기준, 보관·결제 책임, 불공정거래 제재 기준을 명확히 해야 투자자 보호와 산업 육성을 함께 끌고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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