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23원→9억원' 계좌조작…"보완수사 통해 잡아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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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23원→9억원' 계좌조작…"보완수사 통해 잡아냈죠"

이데일리 2026-06-23 06:05: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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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오현 기자] 인공지능(AI)으로 조작한 통장 잔고증명서에 법원까지 속았다. 수억원대 자산을 보유한 것처럼 꾸민 20대 무직 피고인 A씨는 위조 서류를 재판부에 제출해 구속영장 기각 결정을 받아냈다. 하지만 검찰의 추가 확인 과정에서 잔고증명서가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계좌에 9억원이 있다는 A씨 주장과 달리 실제 잔액은 23원에 불과했다. 이를 밝혀낸 데는 지난해 10월 부임한 한 초임검사의 보완수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법원도 속아 넘어간 사기범 행각의 덜미를 잡은 부산지검 동부지청 허호재 검사(변호사시험 11회)를 지난 13일 이데일리가 직접 만났다.

◇“변제약속 후 변제 이뤄지지 않아 의심 시작”

이번 사건은 코인 투자 사기에서 시작됐다. A씨는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한 뒤 ‘매형이 개발한 AI 기반 코인 투자 프로그램으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며 피해자의 환심을 샀다. 가짜 의사 국가고시 합격 화면과 수십억원대 거래소 자산 화면까지 제시하며 신뢰를 쌓았고, 지난해 8~10월 투자금 명목으로 3억원이 넘는 돈을 가로챘다.

수사기관의 수사 중에도 A씨의 범행은 계속됐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A씨는 법원에 9억원 상당의 잔고증명서를 제출하며 “외화 펀드 계좌를 해지하면 일주일 뒤 피해금을 변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실제 자금 여력과 변제 의사를 이유로 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후 불구속 상태로 사건을 넘겨받은 허 검사는 A씨의 주장과 달리 실제 변제가 이뤄지지 않는 점을 수상하게 여겼다. 외화 펀드라고 설명한 계좌가 일반 예금 계좌라는 점도 의문이었다. 피해자에게 직접 전화를 건 그는 A씨가 변제를 약속한 지 한 달이 넘도록 돈을 갚지 않았단 사실을 확인했다.

결정적 단서는 A씨가 법원에 제출한 잔고증명서 하단의 안내 문구였다. 서류에는 ‘제증명 조회 기능을 통해 진위를 확인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허 검사는 직접 조회를 시도했고 ‘불일치’ 결과를 확인했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다.

이후 수사관과 은행 탐문조사를 통해 ‘잔액 차이가 난다’는 사실까지 알아낸 허 검사는 법원에 계좌 영장을 청구했고 발부된 영장을 통해 23원밖에 남지 않은 통장 잔고가 9억원으로 부불려진 사실을 확인했다.

허 검사는 “문서 자체만으로는 위조 여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며 “기존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이 AI로 각종 금융 화면을 위조했다는 진술이 있었고, 여러 정황을 종합해 추가 확인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수사 과정에서 추가 범행도 드러났다. A씨는 이 사건 후에도 범행을 이어가 자신의 친구에게 부동산 근저당 설정을 요구해 피해자를 더 양산했다. 이후에는 ‘검찰 불기소 이유 통지서’까지 조작해 변제를 미루는데 활용한 것도 확인됐다. 결국 A씨는 사기죄에 사문서위조 및 행사, 위계공무집행방해죄까지 더해져 재판에 넘겨졌고 재판 중에 나머지 여죄도 추가 기소돼 병합됐다.

허호재 부산지검 동부지청 검사가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최오현 기자)


◇“보완수사, 수사의 마지막 필터”

허 검사는 이번 사건을 통해 검찰 보완수사권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만일 보완수사를 하지 못했다면 의심은 의심에서 끝났을 수도 있다”며 “기록에 적힌 내용만 보고 판단했다면 이 사건은 단순 사기 사건으로 처리되고 피고인의 재판 양형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쟁점인 ‘보완수사권’에 대한 철학도 분명했다.

허 검사는 “보완수사는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마지막 필터’ 같은 역할”이라며 “한 번 더 확인해보는 보완수사가 없었다면 법원을 속인 범행과 추가 피해를 밝혀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보완수사권이 사라진다면 평면적인 서류만 보고 판단을 해야한다”며 “전화를 해볼 수도, 위조가 의심된다고 은행에 가볼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가 진행한 피해자·피의자 진술 청취, 재증명 조회, 은행 탐문조사, 계좌 영장 청구, 참고인 조사 등 모두 검찰의 보완수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보안 수사를 하게 되면 입체적인 사건의 진실을 좀 더 확인할 수 있다”면서도 “종이 기록으로만 판단해야 한다면 정확한 판단이 될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허 검사는 AI 기술 발전에 따른 제도 보완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생성형 AI는 금융서류뿐 아니라 졸업증명서, 입학증명서 등 다양한 문서를 위조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며 “AI 생성물에 대한 표시제가 도입됐음에도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가 없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이 같은 악용 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논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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