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코스피가 1년 사이 204.9% 급등하며 사상 첫 9000선을 돌파했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은 4900조원 넘게 증가했다. 투자자예탁금은 130조원 안팎까지 불어났고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규모는 500조원대로 커졌다. 국민성장펀드는 출시 직후 완판됐다. 오랫동안 부동산과 예금에 집중됐던 시중 자금이 자본시장과 첨단산업으로 향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돈의 방향이 달라졌다. 글로벌 AI 투자 경쟁과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대가 맞물리며 자본시장이 새로운 자금 흡수처로 떠올랐다. 정부는 생산적 금융과 자본시장 육성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고, 금융권은 가계대출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투자와 기업금융 확대에 나서고 있다. 다시 그려지고 있는 한국 경제의 자본시장 지형도다.
◇4900조원 늘어난 증시…돈의 흐름이 바뀌다
지난 18일 코스피는 사상 최초로 종가 기준 9000선을 돌파했다. 지난해 6월 18일 2972.19와 비교하면 정확히 1년 만에 6091.65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시가총액은 약 2500조원에서 7400조원대로 불어나며 4900조원 이상 증가했다. 국내 자본시장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상승세다.
증시 주변 자금도 빠르게 늘고 있다. 투자자예탁금은 130조원 안팎까지 확대됐고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도 110조원을 넘어섰다. ETF 시장 성장세는 더 가파르다. 국내 ETF 순자산총액은 4월 말 429조7552억원에서 5월 말 507조3886억원으로 한 달 새 77조6334억원 증가했다.
유동성 확대가 자본시장 자금 유입을 뒷받침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광의통화(M2)는 4153조9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25조3000억원 증가했다. 증가 배경에는 기업 자금 조달 확대, 정부 재정 집행, 예금성 자산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늘어난 유동성은 예금과 단기 금융상품뿐 아니라 주식과 ETF 등 투자자산으로 유입됐다.
장기 투자자금의 흐름도 변화하고 있다. 퇴직연금 시장에서 증권사 비중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고 ETF를 활용한 자산배분 전략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예금 중심 자산 운용에서 투자 중심 자산 운용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삼전닉스 시대…AI·반도체가 빨아들인 유동성
자본시장에 유입된 자금은 AI와 반도체를 향했다. 실제 코스피 상승세 중심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었다. 두 기업의 시가총액은 총 4033조원으로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의 54.4%를 차지했다. 최근 1년 동안 늘어난 코스피 시가총액 증가분의 약 70%도 두 기업에서 발생했다.
글로벌 AI 투자 확대는 반도체 산업 가치 재평가로 이어졌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AI 투자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고성능 반도체 수요 전망이 빠르게 개선됐고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직접적인 수혜 기대를 받고 있다.
정부가 추진한 국민성장펀드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총 6000억원 규모로 조성된 국민성장펀드는 출시 첫날 모집 물량의 87.1%가 판매됐고 5영업일 만에 완판됐다.
정부는 1200억원을 후순위로 출자해 AI와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미래차, 방산, 로봇 등 첨단전략산업 분야에 민간 자금이 유입되도록 설계했다.
◇가계대출에서 기업금융으로…금융도 체질 바꾼다
돈의 방향이 바뀌면서 금융산업도 변화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은 오랫동안 가계대출 확대와 예대마진에 의존해 성장했다. 하지만 가계부채 부담이 커지고 금융당국의 관리 기조가 강화되면서 기존 성장 방식은 한계에 직면했다.
정부는 생산적 금융 확대를 정책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는 가계부채 관리 정책을 적용하는 반면 자본시장에는 국민성장펀드와 밸류업 정책 등을 통해 자금 유입을 유도하고 있다. 부동산과 가계대출 중심 성장 모델을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금융권은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자산관리(WM)와 기업금융, 투자금융(IB)이다. 고객 자산을 투자상품으로 연결하고 기업 성장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금융지주들도 WM과 기업금융, 자본시장 부문을 핵심 성장축으로 제시하며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026년 자본시장 주요 이슈’ 보고서에서 “한국 자본시장이 제도 개선 기대와 반도체·AI 중심 실적 회복 기대에 힘입어 구조적 재평가 국면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한국 경제를 움직여 온 돈은 오랫동안 부동산과 가계대출 중심 구조 속에서 순환했다. 그러나 AI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 투자 확대, 생산적 금융 정책, 자본시장 성장세가 맞물리면서 새로운 자금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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