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긴 게 이긴 게 아니다."
6·3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여야 정치인과 전문가들은 특정 정당의 일방적 승리로 보기 어렵다며, 유권자들이 여야 모두에 변화와 쇄신을 요구한 선거였다고 입을 모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오만과 안일한 선거 전략에 대한 자성이 나왔고, 국민의힘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단절 실패를 패인으로 지목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치가 여전히 초박빙 경쟁 구도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6·3 지방선거 평가 긴급 심포지엄'이 열렸다. 한겨레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공동 주최하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과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최병천 세종 전문위원, 신진욱 중앙대 교수,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 등 여야 정치권과 전문가들이 참석해 선거 결과에 대한 열띤 토론을 펼쳤다.
김영배 의원 "대통령 지지도만 믿은 무대포 선거…오만함에 대한 심판"
토론자로 참석한 김영배 민주당 의원(재선·서울 성북갑)은 "대통령 지지도에만 기댄 채 사실상 무대포식 선거를 치렀다"고 진단했다.
김 의원은 "비전이나 정책 제시 없이 처음부터 압승을 전제로 선거를 시작했다"며 "긴장감과 전략을 찾아볼 수 없는 선거였고, 야당의 실책에만 기대어 아무런 준비 없이 치른 선거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선거는 오만함에 대한 심판으로 봐야 한다"며 "부동산 정책, 공소취소 논란, 경선 갈등, 세제 문제 등이 전략적으로 관리되지 못한 채 산발적으로 제기되면서 국민들에게 '권력을 가졌으니 마음대로 한다'는 인상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부동산 문제를 핵심 패인으로 꼽았다. 그는 "시중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서울·수도권의 핵심적 의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민주당이 제시한 제대로 된 공약과 정책은 없었다"며 "유권자들이 기다리다 결국 견제해야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 결과 경기도 일부 지역과 한강벨트를 중심으로 국민의힘으로 표가 결집했다"고 덧붙였다.
2030세대 표심에 대해서는 "2030이 보수화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2030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평가했다.
당 운영과 공천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내놨다. 김 의원은 "당원 주권 시대이긴 했지만 강성 당원 위주의 공천과 경선이 이뤄지면서 일반 국민과 상당히 다른 결의 경선 과정, 결과들이 나타났다"며 "결국 중도층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경선 결과가 선거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민주당은 지금이야말로 민심은 천심이라는 자세로 심기일전해야 한다"며 "현재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더 큰 회초리가 돌아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정하 의원 "지도부에 대한 경고 넘어 선고…'윤어게인'과 결별해야"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재선·강원 원주갑)은 이번 선거를 "여당이 이겼느냐, 야당이 이겼느냐로 해석할 수 없다"며 "국민들이 양당 지도부 모두에 강하게 경고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의원은 "정당을 건전하게 지지하는 국민들의 뜻이 나타난 결과"라며 "지도부는 패배한 것이고 그렇지 않은 당원들은 이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부산 북갑의 한동훈 후보와 서울시장 선거의 오세훈 후보, 평택을의 유의동 후보가 당선된 것을 언급하며 "어떻게 딱 핀셋으로 찍듯이 그 부분만 이긴 결과를 나타내겠느냐"라며 "장동혁 지도부에는 경고를 넘어서 선고를 해버린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어 "절윤(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하지 못하고 '윤 어게인'에 기대 당을 이상한 방향으로 이끈 지도부와, 그 지도부를 밑에서 바치고 있던, 그리고 나타나지 않으면서 뒤에서 조정하려는 많은 사람들의 책임이 이번 선거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며 "폐쇄적 리더십으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지도부가 내놓은 메시지가 전혀 먹히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현 지도부는 선거 준비보다 당권을 유지하고 본인들의 지지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이용하지 않았다"며 "그래서 당연히 질 수밖에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국민의힘과 같은 보수 계열은 이미 대한민국의 주류 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계엄에 대한 문제와 윤 전 대통령에 관한 문제, 당내 민주화 문제를 정리하지 못하면 우리 당은 영원히 수권정당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것부터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천 전문위원 "진보 우위는 착각…한국 정치는 여전히 1% 승부"
최병천 전문위원은 한국 정치가 여전히 '초박빙 경쟁 구도'에 놓여 있다는 점이 이번 선거를 통해 다시 확인됐다고 진단했다.
최 위원은 "2022년 대선과 2025년 대선을 비교하면 범진보와 범보수의 득표율 차이는 1%p 안팎에 불과하다"며 "진보가 우위라는 게 지금 민주당의 큰 착각이다. 한국 정치가 초박빙 구도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선전 배경에 대해서는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동훈 전 대표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국민의힘의 간판이 사실상 장동혁 대표에서 두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보수 진영 내부에는 탄핵에 찬성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이 그동안 정치적 소외감과 모멸감을 느끼며 여론조사 응답층에서도 이탈해 있었다"며 "오세훈 시장과 한 전 대표의 등장으로 이들이 선거 막판 다시 결집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민주당을 향해서는 "공소취소 논란, 스타벅스 논란, 부동산 이슈 등이 결과적으로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범진보 진영은 역대 선거에서 한 번도 50%를 넘은 적이 없다"며 "초박빙 구도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중도층을 관리해야 하는데, 진보 진영이 마치 세상을 다 지배하는 것처럼 오버슈팅하면서 오히려 상대 진영 선거를 도와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진욱 교수 "경쟁 구도는 유지됐지만 정치 지형은 이동…정당 개혁 시급"
신진욱 교수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한국 정치의 '초박빙 경쟁 구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진단하면서도, 정치 지형은 전반적으로 우경화하고 있다며 정당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신 교수는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범진보와 범보수의 경쟁 구도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계엄과 탄핵이라는 중대한 사건이 있었음에도 결과적으로는 여전히 49대 50 수준의 경쟁 구도가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경쟁 구도라는 형식은 유지되고 있지만 정당 시스템의 내용은 크게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2017년 대선 당시 보수 쪽에서 홍준표·유승민 후보들이 나왔던 것하고 지금 김문수 후보에 이어 장동혁 체제로 굉장히 우로 이동했다"고 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보수에서 중도·진보까지 아우르는 포괄정당적 성격을 보이고 있지만 진보 정당의 공간은 크게 축소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정당 간 경쟁 구도라는 형식은 유지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굉장히 이동했다"며 "한국 정치 구도를 한쪽으로 기울게끔 만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극단적인 방향으로까지 기울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당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현실에서 시민들이 직접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은 많이 없다. 정당이 공적 권력을 갖고 있다"며 "지금은 정당의 변화와 개혁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정당들이 스스로 혁신하지 못할 경우 한국 정치가 다시 불안정한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폴리뉴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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