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시장가치는 이미 코스피시장 전체의 50%를 넘었다. 그렇다면 모든 주식시장 참여자들이 공평하게 180%씩, 300%씩 수익을 냈을까. 불행하게도 아니다. 오히려 상당수 투자자가 손실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5월 전체 코스피 종목 948개 중에서 상승한 종목은 111개이지만 하락한 종목은 811개에 달했다. 종목 기준으로 85.5%의 투자자가 5월 중 손실을 기록한 셈이다. 시장 간 불균형도 심각하다. 코스피시장이 2배 이상 오르는 동안 코스닥시장은 올해 1% 상승에 그쳤고 여전히 1,000포인트를 밑돌고 있다. 증시가 몇 배씩 올라도 손해 보는 사람이 더 많은, 기이한 불평등을 보인다.
평등의 사전적 의미는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이다. 그러나 사전에 정의되지 않은 진실이 엄연히 존재한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평등은 법적 또는 기회의 평등이지 결과의 평등이 아니다. 현대 수정자본주의의 다양한 복지정책에도 불구하고 사후적 평등은 이제껏 현실에서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오히려 ‘끔찍한 불평등’이 현실이다. 이상주의적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국가일수록 더 심각한 불평등으로 비난받는 것이 자본주의의 위안이랄까.
균형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로 정의된다. 그러나 경제학의 균형은 ‘주어진 조건 아래에서 경제 주체들이 더는 행동을 바꿀 유인이 없는 상태’ 또는 ‘균형에서 이탈했을 때 원래대로 복원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제학적 균형의 의미도 시장을 부분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친다. 균형된 경제적 발전을 달성해 평등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중남미 국가가 추진한 수입대체형 경제발전 전략의 실패에서 잘 드러난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수출 중심의 불균형 전략을 채택한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 정책이 국민 생활 수준을 성공적으로 개선했다. 키가 180㎝인 20세 남자도 일정하게 매년 9㎝씩 성장하지는 않는다. 대개 13~15세에 매년 10㎝ 이상 자라고 20세 이후에는 성장을 멈춘다. 중학생 시절의 남자아이들은 몸과 마음의 극심한 불균형을 경험한다. 이처럼 불균형은 자연의 법칙이다. 다행히 성인이 된 이후에 마음, 지식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이타심이 자란다.
국가나 지역경제의 발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발전계획을 잘 만들어도 평균적 의미의 균형 발전은 달성하기 어렵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경제일수록 더욱 그렇다. 예를 들면 수출입은 교역의 이익만큼 총잉여를 증가시키나 수입은 기업에, 수출은 소비자에게 불리하다. 추가로 발생한 잉여의 배분을 놓고 소비자, 기업, 근로자가 나눠야 한다. 이 시장주체들이 합의에 실패하면 심각한 불균형이자 불평등 시비의 빌미가 된다. 정부가 나서 조정할 수는 있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정부 정책이 합의를 끌어내는 약인 셈이다. 그러나 부작용 없는 약은 없다, 부작용이 없으면 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존 애덤스 2대 미국 대통령은 “사실은 고집이 세다(Facts are stubborn things)”고 말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현실은 희망이 아니라 사실 위에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평등과 균형이 정책에 현실적으로 반영된다. 이솝우화의 교훈처럼 남의 눈치만 보다가 나귀를 메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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