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교수가 70명 남짓한 지방 국립대에서 채용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채용 과정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교수가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 교수가 맞닥뜨린 건 교육부의 방임, 교수 사회의 폐쇄성, 학생의 무관심,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안일한 판단 등 숱한 벽이었다. 모두가 소리를 낸 교수에게 말했다. “당신은 제3자”라고.
진주교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일요시사> 1579호, 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5318)은 2020년 11월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시작됐다.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 일로, 당시 채용 과정에서 면접 심사에 들어간 류지선 진주교대 교수가 처음 문제를 제기했다. 시발점은 지원자였던 A 교수의 전공이 지원 자격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전공 적부’ 문제였다.
시작부터
삐걱댔다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공고를 내면서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를 지원 요건으로 내걸었다. 미술교육과에서 채용하려던 교수 전공은 ‘도자’ 분야였는데, A 교수는 학사(초등교육), 석사(초등교육 미술), 박사(디자인) 등의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A 교수는 2018년 폐교한 대학에서 도예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원 자격에는 미치지 못했다.
당시 채용에서 류 교수는 면접 심사위원 가운데 1명이었다. 진주교대는 전공 적부와 서류 심사를 거쳐 1차로 5명의 지원자를 선발한 후 면접에서 최종 1명을 뽑는 방식으로 채용을 진행했다. A 교수는 1차 심사에서 무난하게 5배수 안에 들었다. 류 교수는 1차 심사 과정은 알지 못한 채 면접 심사에 참여했고 이때 지원자 5명의 학사-석사-박사 전공을 확인했다.
류 교수는 “심사위원들에게 나눠준 자료를 보는데 A 교수의 전공이 지원 자격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당시 교무처장에게 (A 교수의) 전공 적부에 관해 물었고 점수를 줄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 류 교수가 심사에 참고했던 지원자 전공 관련 문서를 보면 A 교수의 전공 부분에 ‘?’ 표시를 해둔 흔적이 있다.
류 교수는 모든 심사 항목에서 A 교수에 1점을 줬다. 그는 “(1점을 준 걸로) 징계를 줄 거면 주라고 했다. 전공이 지원 요건에 맞지 않는, 애초에 면접에 올 수 없는 지원자에게 제대로 된 점수를 줄 수 없다고 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최저 기본 점수를 주는 대신 류 교수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류 교수는 “(당시) 교무처장 등이 일단 점수(최저 기본 점수라도)를 주라고 했는데, 그랬으면 아무 조치 없이 넘어갔을 듯하다. 그나마 내가 1점을 주면서 면접 심사를 더 진행할 수 없었기에 A 교수의 전공 적부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이뤄졌다”며 “하지만 1차에서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이 그대로 재조사에 참여했다. 그럼 결과가 바뀌겠나?”라고 반문했다.
결국 A 교수는 최종 합격했고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다. 류 교수는 “전공 적부나 서류 심사에서 점수가 매겨지면 면접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 전공 적부는 학과에서 선정된 2명의 교수가 심사한다. 그 2명이 (지원자의) 전공이 자격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면 기자님이라도 우리 학교 미술교육과에 교수로 들어올 수 있다”며 자조했다.
이후 류 교수는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에 관해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처음에는 전공 적부만 눈에 들어왔는데 논문이나 전시 경력 등에서도 하자가 있는 게 보였다. 특히 A 교수의 박사 논문은 학교의 교수 채용 공고가 나기 몇 달 전에 나왔다”고 주장했다.
채용 과정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석
전공 적부 문제 삼으며 ‘1점’ 줬다
논문 자료를 모아놓은 사이트 DBpia를 확인한 결과 A 교수가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의 발행 시기는 2020년 8월로 확인된다. 진주교대 미술교육과 채용 절차는 2020년 11월에 시작됐다.
A 교수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 광주대는 이후 류 교수의 문제 제기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교수의 연구 부정 여부를 판단하는 곳으로,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쳐 최종 판단을 내리는 기구다. 문제는 이 과정이 제보자(류 교수)와 피조사자(A 교수)의 문제 제기, 절차상 하자 등으로 무려 3년5개월가량 지속됐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그사이 결과도 여러 차례 뒤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문제는 법정으로 넘어갔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최종적으로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에 대해 ‘표절이 아니다’라고 판정했는데, 류 교수가 반발한 것이다.
류 교수는 법원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최종 판단을 무효로 해달라는 소를 제기했고 지난달 말, 1심 결과가 나왔다.
1심 재판부의 판결은 ‘각하’였다. 류 교수에게 소를 제기할 자격, 즉 절차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니 소송 내용에 관해서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결정이다. 다시 말해 류 교수는 이 소송이 진행된다 해도 어떤 이익도 손해도 보지 않는 이른바 ‘제3자’일 뿐이라는 뜻이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작업실에서 류 교수를 만났다. 그는 1심 판결이 나온 후 1주일 정도 멍해 있었다고 말하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류 교수는 “재판부의 판단이 아쉽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감정을 맡길 수 있게 해달라는 (원고 측) 요청을 받아줘서 적어도 결론은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됐다”며 “피고 측에서 변론 내내 줄기차게 주장한 (나에게는) 원고 자격이 없다는 내용이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도
안 나서
이어 “재판부에서 각하 판결을 내렸더라도 ‘논문 내용에는 하자가 있다’는 한 문장만 덧붙여 줬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재판부가 공공의 이익이나 공공 제보를 지나치게 좁게 판단한 듯해 아쉬운 마음이 든다”며 “그래도 저작권위원회의 판단이 있기에 계속 싸울 힘이 생겼다”고 의지를 다졌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과 그가 표절한 것으로 의심되는 12편의 다른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류 교수는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감정 결과를 근거로 항소심, 대법원까지 가보겠다고 했다. 그는 “원심과 항소심에서 각하된 사건이 대법원에서 법리 오인으로 뒤집힌 사례도 몇몇 있다. 형사 고소도 준비 중이다. 끝에, 끝까지 가도 안 되면 책을 써서라도 이 문제에 대해 ‘박제’해 두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이후 5년3개월 동안 류 교수는 수많은 벽에 마주해야 했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학교(진주교대)는 침묵했고 광주대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교육부는 방임에 가까운 태도로 일관했다. 교수들은 뒤에서는 ‘비분강개’한다면서도 앞에 나서질 못했다. 학생은 무관심에 가까웠다.
류 교수는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팩트가 명백하고 진실이 존재하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대로 결과가 나오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연구와 교육이라는 대학의 본질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제도를 악용하는 카르텔이 얼마나 견고한지, 정책의 취지가 얼마나 오염돼있는지를 알게 됐다”고 토로했다.
류 교수는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한 상태였다. A 교수의 전공 적부 문제나 논문 표절 의혹을 교육부에도 알렸다. 대학을 담당하는 주무 부처로서 관리, 감독을 해달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복붙(복사-붙여넣기)’이었다. 조치가 아니라 민원의 전달자 역할만 했다는 게 류 교수의 주장이다.
저작권 위반
인정했지만…
류 교수는 “교육부에 민원을 넣으면 학교로 내려보내 답변하라고 지시한다. 그러고 학교가 답변하면 그걸 다시 민원인에게로 보낸다. 그러면서 ‘대학의 자율성’을 운운한다. 자율성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오염됐는지 아나? 대학은 자율성이라는 취지를 내부 부패를 감추는 무기로 쓰고, 교육부는 방임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이를 악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본질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교수 채용에 막강한 권한을 발휘하는 학과장 순서를 계산하고 심사에 들어갈 교수를 고르는 과정을 철두철미하게 계획하는 이들은 아무리 제도를 손질해도 막을 수 없다. 그러니 교육부나 수사기관, 사법부 등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확실하게 단죄해서 제도를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 교수와 함께 채용에 참여했던 지원자에 대한 아쉬움도 표현했다. 류 교수는 “지원자 가운데 딱 1명만이라도 나서줬다면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몇몇 지원자에게 문의한 적이 있는데 ‘다른 학교에도 계속 (교수직에) 지원해야 하기에 나서고 싶지 않다’는 답변을 동일하게 받았다”고 토로했다.
A 교수의 논문과 비교, 감정한 논문 저자들에게 문의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류 교수는 “한국저작권위원회 결과를 보고 (저작권 위반이라고 나온) 11편의 논문 저자 가운데 일부에게 연락했는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그들(지원자, 논문 저자)도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동조자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류 교수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방법은 교대를 나오는 것뿐이니까, 학생들에게 대학은 일종의 (교사가 되기 위한) ‘학원’ 정도로 전락했다. 커리큘럼도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져 있고 학점을 이수하면 임용 자격이 주어진다. 그렇다 보니 애석하게도 학생이 학교에 애착이 없고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더더욱 관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학교·교육부·수사기관·사법부까지
민사 1심서 ‘자격 없다’ 각하 결정
하지만 류 교수를 가장 분노하게 한 주체는 역시 진주교대였다. 친소 관계에 따라 처분이 달라지는 학교의 태도가 상황을 여기까지 악화시켰다는 주장이다. 류 교수가 기자에게 “(진주교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 교수를 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자학하듯이 말한 것도 그 연장선처럼 보였다.
류 교수는 “한 교수가 학회에 논문을 투고했는데 그게 표절로 드러났다. 그 문제는 학회가 아니라 우리 학교에서 처리했고 해당 교수는 연구비를 토해냈다. 또 한 강사가 수업 과정에서 문제를 저지르자 직접 고발한 사례도 있다. 그런데 왜 이 문제에 있어서는 광주대의 처분만 기다리면서 침묵하나. 우리 학교에서만큼은 결국 친분이 처분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백번 양보해서 박사학위 논문의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게 광주대의 역할이라고 하자. 그럼 진주교대에서 학위를 받은 A 교수의 석사 논문 문제는 어떤가. 석사 논문을 판단해 달라고 요구하자 학교는 ‘표절 검증 시한이 지났다’면서 외면했다. 학내 규정도 A 교수가 석사학위를 받은 시기에서 딱 1년 뒤로 슬그머니 바꿨다. 검증 대상에 포함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였다”고 주장했다.
류 교수는 이 사건에 시간과 돈을 쏟아부었다. 변호사 비용 등 5년 동안 들인 돈만 해도 수천만원에 이른다. 이제 그만하라면서 말리는 주변 사람들도 끊어냈다. ‘외곬’이라는 말을 들어도, 외로운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아직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걸까.
류 교수는 “법원은 나를 제3자로 판단했지만 나는 채용 과정에서 심사위원이었고, 실력 있는 교수를 뽑아야 할 의무와 좋은 동료 교수와 지낼 권리가 있는 학교 관계자다. 정말 내가 제3자인지 잘 생각해 봐줬으면 한다”며 그리고 “차라리 모르면 몰랐을까,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부정을 묵인하는 동조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끝에 끝까지
책이라도 쓴다
이어 “주변 교수나 학생들이 나를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전혀 정의롭지 않으며 흠결이 많은 사람이다. 무엇보다 이 문제는 정의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다. 채용의 공정성이라는 너무나 기본 중의 기본 상식이 훼손된 사안이다. 최소한의 상식이 바로 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교수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학생들 덕분에 있는 자리라는 거다. 그렇기에 대학에서는 학생의 수업권이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한다. 학생들은 도덕적이고 실력 좋은 교수에게 교육받아야 하고, 대학은 그런 교수를 뽑아 양질의 수업을 제공해야 한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학생의 수업권에 눈 감고 있는지, 나는 이 부분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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