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행] 112-행주산성 밥 할머니와 원조국수집의 시원한 콩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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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여행] 112-행주산성 밥 할머니와 원조국수집의 시원한 콩국수

중도일보 2026-06-22 17:03:1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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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60622_093318838행주산겅 대첩문. (사진= 김영복 연구가)

이번 '맛있는 여행'은 서울과 가까운 곳에 있는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덕양산에 있는 행주산성에 재경당진향우회 김종서회장, 재경청양향우회 윤종훈 회장과 함께 했다.

행주산성(幸州山城)은 7, 8부 능선에 쌓은 테뫼식[山頂式] 성으로 흙을 이용해서 쌓은 산성이다.

행주산성 성안에서 삼국시대의 토기(土器) 조각을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많이 나오고, 물고기뼈무늬를 새긴 기와조각도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도 사용했다.

그러나 1592년 왜군의 침입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났고, 당시 이곳 행주산성은 문무(文武)를 겸비한 권율(權慄1537~1599) 장군은 의병(義兵)과 승병(僧兵)을 포함한 2천3백 명과 함께 왜군 3만여 명을 크게 물리친 승전지로, 조선의 굳은 의지와 민초들의 헌신이 서린 역사 유적지로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선조실록(宣祖實錄」선조38년(1605) 10월 9일자에도 경기 감사 이정구(李廷龜)가 행주산성의 형세에 대해 치계(馳啓) 즉 말을 달려와 보고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신이 삼가 보건대, 행주산성(幸州山城)은 경사(京師)와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데다가 강도(江都)와 마주보고 있으며 삼면(三面)은 험준한 산이고 일면은 강물입니다. 무릇 산성으로서 걱정되는 것 가운데 한 가지는 땔나무 길과 물을 길어오는 길이 막히는 것이요 또 한 가지는 식량을 운반하는 길이 순조롭지 못한 것이요 또 한 가지는 지원병이 나아가기 어려운 것이요 또 한 가지는 민심이 먼저 겁을 먹게 되는 것인데, 여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래로 강물을 기를 수 있으니 진실로 샘물이 마르는 걱정이 없고 주위로 운선(運船)이 통하니 또한 길이 막혀 굶주리는 걱정이 없고 군사가 적어도 충분히 원병을 부를 수 있고 사세가 위급하여도 또한 도망할 길이 있습니다.

지난날에 권율(權慄)이 1천 명도 채 못되는 잔약한 군사로 하늘을 뒤덮을 듯한 왜적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유리한 조건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옛터에다가 삼면을 단단히 축조하고 군기와 군량을 그 속에 비축해두며, 일면의 연안에는 배를 많이 모아 두었다가 불행한 일이 생길 경우 강도로 이운(移運)할 계책을 하면 군사들의 마음이 스스로 견고해지고 적의 계모가 먼저 저상하게 되어 여러 날 동안 지구전을 벌인다. 하더라도 군사를 보충하고 군량을 이어 조달하기에 군색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오른쪽은 산릉(山陵)을 등지고 앞에는 수택(水澤)을 낀 형세입니다. 더구나 권율이 대승을 거둔 후 인심이 모두 지킬 만한 곳이라 이르는 데이겠습니까. 이것 또한 군정(群情)을 분발시켜 권장하는 데 일조(一助)가 될 것입니다. 지금 갑자기 공사를 일으킬 수는 없겠으나 여기에 뜻을 둔다면 점차 수축하여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여기에는 경기도 밥할머니 공원과 향토문화재 제46호인 밥 할머니 동상과 연관이 있다.

KakaoTalk_20260622_093327250권율장군 동상. (사진= 김영복 연구가)

밥 할머니는 왜구가 침입하는 등 민심이 뒤숭숭하던 조선 중종(中宗) 때 명문거족의 하나였던 해주 오씨 집안에서 출생했다.

밥 할머니 오씨(吳氏)는 지금의 불광동 연천 마을에서 살았는데, 만석꾼 집안의 선비였던 문옥형씨에게 시집을 갔다. 밥 할머니는 시부모님을 공경하고 남편에게 내조를 잘했으며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쌀을 나눠주기도 하였다 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불과 20일 만에 한양(서울)을 함락시켰고, 선조 임금은 평안도로 피신하면서 명나라에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고양에서는 권율 장군이 조선 민관군을 이끌고 있었고, 고양 벽제관 부근에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은 일본에 패하고 퇴각했으며, 승기를 잡은 왜군은 창릉천에 머물고 있었다.

이때 북한산 부근의 대부호 문씨 집안 며느리였던 이름난 여장부 해주 오씨는 당시 49세로 북한산 봉우리를 볏짚으로 감싸 군량미를 쌓은 오적거리 처럼 위장하고 냇물에 석회 가루를 풀어 흘려보냈다.

이튿날 아침 밥 할머니는 함지박을 이고 창릉천(지금의 고양시 덕양구)으로 갔다. 왜병들이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할머니를 보고 물이 뿌연 이유를 물으니까 밥 할머니는 노적봉을 가리키며 조선군 수만 명이 북한산에 주둔해 있는데, 저것이(노적봉) 바로 군량미를 쌓아놓은 노적가리라고 말했다. 적들은 밥 할머니가 사라진 후 한참 동안 갈증을 견디기 어려웠던지 앞다퉈 물을 마시고 끌고 왔던 말에게도 물을 먹이기 시작했다. 얼마 후 물을 마신 왜적들은 배탈이 나서 배를 잡고 쓰러져 고통스러워했다.

그 후에도 밥 할머니는 인근의 부녀자들을 모아 여성의병대를 조직하고 전쟁에서 군인들에게 밥을 지어주고 부상병을 치료하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오씨를 밥 할머니라 불렀으며 ,1593년 2월 12일, 행주산성에는 권율 장군이 이끄는 1만 명의 조선 민관군과 3만 명의 왜군이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시간이 갈수록 성안에는 무기가 떨어져 불리해졌는데, 밥을 짓고 부상병을 돌보던 여성 의병장 밥 할머니는 여자들에게 앞치마에 돌을 주워 나르게 하고 군인들이 돌을 무기로 쓰게 해 대승을 거두게 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바로 이 전투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행주대첩이다. 왜란이 끝나고 선조는 노적봉이 잘 보이는 창릉 모퉁이에 오씨 부인을 기리는 석상을 세웠으며, 인조 대왕은 밥 할머니의 공적을 인정해 정경부인에 봉하였고, 후세 사람들은 밥 할머니 석상과 비석을 북한산이 잘 보이는 창릉 모퉁이에 세워 호국정신을 기렸다. 밥 할머니는 보살 할머니라고도 불렸는데, 남편이 벼슬에 있지 않았지만, 인조대왕은 밥할머니에게 남편이 정·종1품인 부인에게 내리는 정경부인의 호를 주었다. 그만큼 큰 공을 세워 국가에서 배려해준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밥할머니 석상과 비석을 북한산이 잘 보이는 창릉에 세웠다.

현제 밥할머니의 머리 부분이 없어졌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 초기에 일본인들이 국도 길옆에 서 있는 밥 할머니 석상의 내력을 알고 석상 머리 부분을 망치로 깨뜨려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목을 자르고도 일본인들은 석상을 땅속 깊숙이 묻어 버렸는데, 해방 직후 마을 주민들이 이를 찾아서 다시 세웠다고 전해진다.

KakaoTalk_20260622_093830128원조국수집. (사진= 김영복 연구가)

행주산성은 산꼭대기를 둘러싼 작은 규모의 내성과 골짜기를 에워 싼 외성의 2중 구조를 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昌陵川)이 산성을 에워싸고 돌아, 자연적으로 성을 방어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초기에 백제의 땅이었으며, 서해안과 연결된 수로의 거점 지역으로 남북 교통의 요충지대라 할 것이다.

가파른 행주산성을 오르려면 간단한 스트레칭이 필수다.

산성 입구의 '대첩문(大捷門)'을 지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권율 도원수(權慄 都元帥)의 동상(銅像)이다. 동상 뒤편에는 관군, 의병, 승병, 부녀자들이 함께 싸운 모습을 담은 부조물이 자리하고 있어 당시의 처절한 항전을 떠올리게 한다.

산 정상을 향해 오르다 오른쪽 오솔길로 들어서면 산중턱에 위치한 충장사(忠壯祠)가 나오는데, 이곳은 행주대첩의 주인공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잠시 쉬다가 그늘진 토성길을 걸어 나오니 숲에서 새소리 바람 소리가 도심의 노독을 풀어 주는 것 같다.

행주산성을 주변은 밥 할머니 이야기와 함께 맛집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특히 행주산성 주변에 옛날에는 웅어회, 장어, 민물매운탕집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국수집들이 많다.

우리들은 행주산성 국수집 중에 원조라 할 수 있는 원조국수집 40여년 넘게 국수집을 하는 집인데, 평일 오후에도 북적 북적한다. 본점 말고 바로 옆 쪽에 또 2호점이 있다.

이 집은 오래전부터 자전거를 타는 애호가들이 자주 찾는 성지라 불릴 정도로 자전거에서 '라이더(Rider)들에게 알려진 맛집이다.

간판은 노포답게 빛이 바래있고, 가게는 마당까지 늘렸는지 우물과 펌프가 70년대를 연상케할 정도로 정겹게 서있다.

이 집은 잔치국수, 비빔국수, 콩국수 딱 세가지 뿐인데, 잔치국수는 진한 멸치육수에 넉넉한 양의 면과 고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멸치육수는 깊고 진한 맛이 일품이며, 면은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다. 잔치국수는 파로 가득 찬 양념을 기호에 맞게 넣어서 먹는다. 비빔국수는 상추, 양파, 당근 등의 야채 고명에 양념을 넣어 비벼먹으며 면은 쫄깃하고 매콤하고 새콤한 맛으로 멸치육수를 함께 준다.

KakaoTalk_20260622_093842598장단콩국수. (사진= 김영복 연구가)

우리는 이집에 들어가 청양향우회 윤종훈 회장은 비빔국수를 필자와 당진향우회 김종서 회장은 파주 장단콩으로 한 콩국수를 시켰다.

이곳의 국수는 가격도 저렴하고 양도 푸짐하며, 양이 많아 한 그릇으로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으나 원하면 국수를 더 추가해 준다.

장단콩은 파주시 장단면의 특산물이다.

장단콩이란 이름 또한 이 지역 '장단' 지명을 따서 장단콩이라 지어졌다.

민통선과 DMZ가 설치된 이후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이 지역은 장단콩을 수확하기에 모자랄 것 없는 깨끗한 환경이다.

장단콩은 1913년 우리나라 최초의 콩 장려 품종으로 결정된 품종인 "장단백목"도 바로 이지역 토종 콩으로 장단지역 콩을 수집, 순계, 분리하여 선발되었다.

실제로 장단면 주민과 그 주변 지역 몇몇 농부가 재배하는 장단콩은 좋은 품질을 인정받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장단콩은 다른 지역 콩보다 알이 굵고 윤기가 난다. 이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으로도 불리는 이소플라본(isoflavone)의 영향이 크다. 이소플라본은 콩단백질 중 하나로 우울증, 골다공증 등 여성호르몬이 부족해 나타날 수 있는 갱년기 증세를 완화시켜 주고, 심장병, 고혈압, 동맥경화증, 암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한국식품연구원 자료를 보면 장단콩은 다른 콩에 비해 이소플라본의 함량이 약 50%, 노화방지 효과가 있는 안토시아닌 함량도 매우 높아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명품 콩으로 전해진다.

콩물이 걸죽하니 고소하며, 쫄깃한 면발과 함께 시원한 것이 아주 맛이 좋았다.여름철 더위를 물리칠 음식 중에 시원한 '콩국수'만한 것도 없을 것 같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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