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임준혁 기자 | 광주에서 공작기계 사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중견 기업 화천그룹이 기업지배구조에서는 사실상 '낙제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경영자(CEO) 승계정책·집중투표제·독립적인 내부 감사 조직의 부재는 말할 것도 없고 코스피 상장사 중 가장 낮은 수준의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15개 핵심지표 준수율, 견고한 공작기계 수직계열화 구조 등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넘쳐난다는 지적이다. 화천그룹은 지난 1일 이같은 내용의 ‘2025년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공시했다.
화천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는 화천기공이 자리하고 있다. 화천기공은 관계사로 지분의 39.95%를 보유한 화천기계를 비롯해 서암기계공업(지분율 32.2%), 에프앤가이드(지분율 12.16%)를 거느린 그룹 내 실질 지주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화천기공, 그룹 내 실질 지주사
화천그룹이 화천기공·화천기계·서암기계공업을 중심으로 한 공작기계 전문 그룹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화천기공은 사업회사임과 동시에 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축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그룹 사업 구조를 들여다 보면 서암기계공업은 부품을 공급하고 화천기공과 화천기계가 이를 활용해 공작기계를 생산한 뒤 화천기계가 판매를 맡는 방식이다. 그룹 안에서 소재·부품·완제품·판매가 한 번에 이어지는 공작기계 수직계열화를 구축했다.
화천그룹의 지배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화천기계의 최대 주주는 화천기공 외 특수관계인으로 지분율은 40.55%다. 화천기공의 최대 주주는 권영열 화천그룹 명예회장 등 특수관계인 8명으로 지분율은 48.78%에 달한다. 권 명예회장은 고 권승관 창업주의 장남으로 화천기공 지분 17.93%를 보유,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 있다. 화천기공이 화천기계와 서암기계공업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들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권 명예회장이 화천기공을 통해 그룹 전반에 간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권 명예회장과 일가가 화천기공을 지배하고 화천기공은 다시 화천기계를 지배하는 수직 계열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 핵심지표 15개 중 14개 미준수...소액주주 보호 실종
이 같은 수직계열화는 그룹 계열사 간 내부거래가 늘어날 경우 거래조건의 공정성을 외부 주주가 확인하기 어렵고 지배주주가 적은 자본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피라미드형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지배구조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데 있다. 화천기공과 화천기계의 기업지배구조 15대 핵심지표 준수율은 2곳 모두 6.7%에 그쳤다. 화천기공이 유일하게 준수한 핵심지표는 전자투표 실시 단 1개였고 화천기계의 경우 주주총회의 집중일 이외 개최를 제외한 나머지 14개 지표는 모두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ESG행복경제연구소가 분석한 올해 코스피 상장사 평균 준수율은 47.8%로 집계됐다. 자본시장 전문가는 “화천기공·화천기계의 준수율(6.7%)은 시장 평균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는 오너 일가 중심의 경영 체제가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화천기공은 CEO 승계정책이 수립돼 있지 않다고 공시했다. 화천기계 역시 "명문화된 CEO 승계정책은 없다"면서 “CEO 유고 시 정관에 따른 직무대행 체계만 존재한다”고 밝혔다.
▲ 대표이사, 이사회 의장 겸직...독립성 상실
현재 화천기계는 권형석·권형운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모두 오너 일가다. 회사는 이를 안정적인 경영체제라고 설명하지만 시장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거래소 기업지배구조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단순한 직무대행 순서를 승계정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승계 후보군 관리와 평가, 교육, 비상 승계 체계 등을 포함한 실질적 시스템 구축을 요구한다. 따라서 현재 화천그룹의 경영 승계는 '시스템 승계'가 아닌 '오너 일가 중심 승계'에 가깝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사회의 독립성 역시 부족하다. 화천기공은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다. 화천기계 역시 동일한 구조다. 이사회는 경영진을 감독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감독 대상인 대표이사가 이사회 운영권까지 쥐고 있는 구조에서는 독립적인 감시 기능을 사실상 기대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소액주주 권리 보호 장치인 집중투표제도 두 회사 모두 정관으로 배제했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가 특정 후보에게 의결권을 집중해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를 배제할 경우 이사회 구성 과정에서 최대 주주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
▲ 경영진 없이 외부감사인 별도 회의 사례 '전무'
수직계열화와 관련해 이사회 독립성이 약하고 집중투표제가 없다는 점은 소액주주가 계열사 거래를 견제할 수단이 제한되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화천기계 이사회 구성과 경영진이 사실상 화천기공과 동일한 지배권 아래 놓여 있는 것 역시 두 회사가 독립경영보단 그룹 경영 논리가 우선시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감사기구 부문 준수율도 초라하긴 마찬가지다. 화천기공은 독립적인 내부감사 조직을 설치하지 않았고 경영진 없이 외부감사인과 별도 회의를 가진 사례도 전무하다고 공시했다. 화천기계 역시 독립적인 내부감사 조직이 부재한 상태다. 감사 업무는 재무지원팀과 인사지원팀이 지원하고 있으나 독립적인 부서는 아니며 조직도상 별도의 감사 전담 조직은 불비돼 있다.
한국거래소 가이드라인은 독립적인 감사 지원조직 설치와 외부감사인과의 정기적인 독립 회의를 핵심 통제 장치로 제시하고 있지만 화천그룹 계열사 2곳은 이를 비웃듯이 권고안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로 창립 74주년을 맞은 화천기공이 걸어온 길이 ‘대한민국 공작기계 산업’의 역사란 말이 있다. 오너 중심 경영이 사업의 연속성과 신속한 의사결정에 기여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코스피 상장사로서 요구되는 투명성과 견제 장치, 소액주주 권익 보호 체계의 보유 여부는 별개의 문제란 분석이다.
올해부터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 의무가 코스피 전 상장사로 확대되면서 시장은 단순한 경영실적보다 승계 체계와 이사회 독립성, 감사 기능, 주주권 보호 수준을 더욱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화천기공과 화천기계는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운영돼 온 기업이지만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여전히 오너 중심 체제의 색채가 짙다"며 "지배구조 개선이 경영권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과정이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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