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 헬스케어 및 보건의료정보 활용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디지털헬스케어법)’ 제정 공청회에서는 보건의료정보의 활용과 보호의 균형을 둘러싼 각계의 토론이 이어졌다. 이번 공청회는 의료데이터 활용 기반을 마련하고 관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법률안 논의 과정에서 다양한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마련됐다.
|
◇“규제 가이드라인, LLM 시대 못 따라가” 인센티브 제안
이날 공청회에 산업계를 대표해 참석한 차동철 네이버 의료혁신센터장은 의료데이터 활용 생태계가 안착하려면 데이터 가치 산정이 구체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센터장은 “기업이 환자에게 데이터를 요청하려면 동의할 만큼 매력적인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책임”이라면서도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왜 데이터를 제공해야 하는지, API 비용과 행정 부담은 어떻게 보상받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차 센터장은 환자가 건강정보를 제공했을 때 더 나은 맞춤형 서비스를 받는 구조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의료기관 역시 데이터 전송 과정에서 시스템 연계와 행정 부담이 발생하는 만큼 정부가 참여를 유도할 인센티브와 비용 보상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AI 시대에 뒤처진 규제 정비 필요성도 역설했다. 차 센터장은 2022년 마련된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이 현재 헬스케어 서비스의 사실상 표준이지만, 대규모언어모델(LLM) 등장 이후의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용자들은 이미 건강검진 결과나 의료 정보를 생성형 AI에 물어보고 있지만, 국내 기업이 유사 서비스를 출시하려 하면 규제에 막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안전장치를 갖춘 서비스에 한해 면책 조항이나 ‘안전지대(샌드박스)’를 둘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예컨대 AI가 생성한 건강정보가 참고용이라는 점을 명확히 고지하고, 최종 진료나 약물 상담은 의사·약사 등 전문가에게 확인하도록 안내하는 방식이다.
또 디지털 헬스케어법에서 특수전문기관 제도 등을 통해 개인 의료정보를 합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서비스 기능이 바뀔 때마다 장기간 심사를 받는 구조로는 디지털 서비스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며 메이저와 마이너 변경을 구분한 ‘신속 심사 체계’ 도입을 촉구했다.
◇의료·병원계 “개인정보 보호와 비용·책임 소재 명확히 해야”
의료계는 보다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김형갑 대한의사협회 정보통신이사는 의료데이터가 AI 학습에 활용되면 사실상 회수가 어렵다는 점을 우려했다. 김 이사는 “법안이 데이터 유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AI 학습 이후의 사후 통제와 프라이버시 보호 장치가 충분한지 더 논의해야 하며, 의료기관이 전송 부적절 정보를 판단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병원계는 인프라 비용과 책임 문제를 제기했다. 양문술 대한병원협회 제2정책위원장은 “정보 수집·관리·전송에 필요한 인력과 장비 비용 보상 체계가 부족하다”며 “데이터 제공 이후 분쟁 발생 시 책임 소재를 정리할 가이드라인과 의료데이터 분쟁조정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약사회는 ‘환자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꼽았다. 이윤표 대한약사회 정보통신이사는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의 출발점은 민간기업의 사업 확대가 아닌, 환자 안전과 치료 연속성을 위한 기관 간 정보 연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약국 현장에서 환자의 복용약과 질환 등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먼저라며,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가 약사 면허 행위와 충돌할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다.
보건의료 단체에서는 ‘책임과 통제권의 일치’를 요구했다. 박시은 보건의료정책연대 대변인은 보건의료데이터가 의사뿐 아니라 구급대원, 간호사, 약사 등 여러 직역이 함께 생산하는 특수성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박 대변인은 “진료기록 보존 책임은 의료인에게 부과하면서, 데이터가 외부로 전송된 뒤 발생하는 보안 사고나 오남용에 대한 통제 권한은 주어지지 않는다”며 권한과 책임의 균형을 요구했다.
◇학계 “법제화 늦어…국가 경쟁력 차원서 서둘러야”
학계에서는 법제화 지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영상학과 의사이자 국가AI전략위원회에서 자문 중인 서준범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법제화는 이미 늦었다”며 “AI 대전환 시기에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의료데이터 활용 기반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필수의료 위기 대응, 통합돌봄 등에 AI가 활용될 수 있으나 이를 모두 외국 기술에 의존할 수는 없다고 경고했다. 다만, 공익적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과 오남용 위험이 큰 보험사 등을 구분해 차등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은 보건의료정보를 AI 기반 질병 예측, 신약·의료기기 개발 등 미래 의료 혁신의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법안이다. 동시에 보건의료정보가 환자의 질병 이력과 유전정보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포함한다는 점을 고려해 가명처리 적정성·안전성 심의 절차, 환자의 정보 전송요구권, 의료 마이데이터 활용기업 지정 기준 등을 법률에 명시했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회사에서 “초고령사회 진입과 만성질환 증가, 인공지능(AI) 기술 발전 속에서 보건의료정보의 안전한 활용과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기반 조성이 국민 건강 증진과 미래 의료 혁신을 위한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형훈 보건복지부 제2차관도 축사에서 보건의료정보를 미래 의료 혁신의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하면서도, “환자의 생명과 사생활이 담긴 민감정보인 만큼 보호와 활용은 함께 실현해야 할 가치”라고 밝혔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