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번 받는 AI 에이전트…'가상 동료' 시대 개막
사내 위키 학습한 AI, 팀 프로젝트까지 함께 수행
메신저·문서·일정 통합…협업 플랫폼의 진화
GPU 효율·보안 강화로 완성하는 AI 근무 환경
AI 이미지. (포인트경제)
[포인트경제] 사무실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새로운 팀원이 합류했다. 간단한 환영 인사 후 팀장이 지시를 내린다. "이번 분기 시장 동향 보고서와 주요 경쟁사 공시 자료를 취합해서 비교 분석해 주세요" 묵묵히 지시를 들은 신입 사원은 단 몇 분 만에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초안을 대화방에 올린다. 사람이 아닌, 기업의 고유 업무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AI) 에이전트 이야기다.
과거 단순한 문장 요약이나 질의응답 수준에 머물렀던 기술이 실제 업무 프로세스에 직접 뛰어들어 행동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작년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의 조사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도입한 기업의 95%가 재무적 성과나 비즈니스 임팩트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오직 4%만이 본격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온다. 기술을 단순한 '도구'로만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ICT 업계를 이끄는 기업들은 메일, 메신저, 일정, 사내 문서 등 내부 지식 자산을 온전히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해 업무를 수행하는 형태로 가상 근무 환경을 변화시키며 가치 창출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업무 보조 도구로 취급받던 기술이 이제는 사원 번호를 부여받을 만한 조직의 일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 메신저로 대화하고 사번도 받는 가상 팀원 체계
국내 대표 통신 기업인 SK텔레콤은 가상 동료를 정식 업무 주체로 정의하는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전사적으로 추진되는 'AX(AI 전환) 혁신 2.0' 프로젝트에 맞춰, 내부에 도입되는 에이전트들은 사람 직원과 유사하게 고유한 사번을 부여받는다. 이들은 특정 소속과 직무를 할당받고, 기업 내부 규정에 따른 명확한 데이터 접근 권한과 책임 체계 속에서 관리되는 거버넌스를 갖추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체계는 직급과 부서 구분을 없애고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백지상태에서 다시 설계한 'AX 샌드박스' 환경에서 큰 시너지를 낸다. 직원 한 명이 기획, 개발, 디자인 등 각기 다른 직무 성향을 가진 여러 가상 에이전트와 동시 협업하는 '멀티 롤(Multi-Role)' 구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출근 직후 밤새 쌓인 글로벌 동향과 회의 안건을 가상 동료에게 브리핑받고, 방향성만 던지면 SNS 에이전트가 디자인 시안을 뽑아내는 식이다. 대규모 행사를 앞두고 이동기지국 위치나 트래픽 수요를 가상 동료와 설계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기획 업무에 소요되던 시간이 대폭 단축됐고, 실제 조직 전반의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 사내 위키 기반의 데이터 축적과 가상 부서 간 협업
종합 IT 기업인 NHN이 보여주는 협업 솔루션 영역에서는 정제된 사내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격화된 가상 직원을 구동하려는 시도가 한층 구체화됐다. 클라우드 기반의 협업 플랫폼 '두레이' 내에서 일반 직원과 완전히 동일한 계정 등급을 가진 에이전트 환경을 구축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내 시스템에서 가상 직원을 검색해 1대1로 대화를 나누거나, 팀 프로젝트 단체 대화방에 가상 직원을 초대해 업무를 분담하는 형태다.
이 시스템의 가치는 기존 사내 인프라와의 긴밀한 통합에서 나온다. 10년 전부터 마크다운 기반으로 축적해 온 사내 '위키(Wiki)' 시스템은 에이전트들이 인지하는 가장 정제된 지식 창고가 된다. 실제로 단체 대화방에 숙련된 기획자, 중견 실무자, 회의 사회자 등 서로 다른 전문 성향과 규칙을 주입한 다수의 가상 에이전트를 모아놓고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분석 미션을 주면, 이들이 상호 의견을 교환하며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비교 분석한 문서를 뚝딱 만들어낸다.
지난 28일 판교 NHN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백창열 NHN두레이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포인트경제)
백창열 NHN두레이 대표는 "기술이 업무 환경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직원이 일일이 데이터를 복사해 외부 AI 서비스에 붙여넣는 번거로움이 없어야 한다"라며 "매일 쓰는 협업 툴 자체에 지치지 않는 동료들이 인격체로서 상시 대기하며 협업하는 구조가 진정한 업무 혁신"이라고 전했다.
초기 파일 1개, 30메가바이트(MB) 수준에 머물던 파일 기반 챗봇은 이제 최대 2000쪽 분량의 방대한 사내 문서를 완벽히 소화하며, 기업 내부 데이터만을 안전하게 활용하는 협업의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 연산 자원 효율화와 강력한 보안이 만드는 상시 일터
가상의 존재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하부 인프라의 안정성과 철저한 통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NHN클라우드는 이를 위해 가상화 레이어를 실제 하드웨어에 가깝게 제어하는 '베어메탈' 방식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그래픽처리장치(GPU)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가동 효율을 극대화하는 'GPU 라이브' 솔루션을 적용하고 있다. GPU 1000장 규모의 클러스터를 가동할 때 효율이 50%에 머물면 연간 약 140억원(920만 달러)의 비용이 무의미하게 낭비되는데, 이를 오케스트레이션 기술로 묶어 자원 이용률을 2배 이상 끌어올린 것이다. 동시에 시스템 초기 호출 시 걸리던 75초의 대기 시간(콜드 스타트)을 1.2초로 단축하며 사람과 유사한 반응 속도를 확보했다.
여기에 파이썬 기반의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를 활용해 사내 데이터 레이크와 메신저를 단 한두 시간 만에 연동하는 플랫폼 기술이 더해졌다. 가상 직원이 기업의 내밀한 정보에 접근해 실무를 수행하되, 해당 데이터가 사내 망 외부로 절대 유출되지 않도록 막는 통제 시스템이 결합되면서 보안 문제도 해소되고 있다.
'자율과 통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에이전트 전용 클라우드 환경 덕분에, 모두가 퇴근한 야간 시간에도 가상 직원이 홀로 시스템 장애를 탐지하고 알림을 보내며 스스로 조치하는 미션 수행이 가능해졌다. 사람이 더 가치 있는 판단과 전략적 의사결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니터 속 가상 동료들의 출근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생산성을 지탱하는 새로운 기반으로 안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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