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코르셋 재단사로 망하고, 두 번 결혼해 두 번 실패하고, 세금징수원으로 잘렸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낙오자였다. 그런데 이 남자가 미국 독립의 불을 질렀다. 그리고 그 불이 자신을 태웠다. 토마스 페인의 이야기다.
■ 영국에서 연이어 바닥을 쳤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1737년 영국에서 태어난 토마스 페인은 13살부터 아버지 밑에서 코르셋 재단을 배웠다. 사업은 망했다. 담뱃가게로 옮겼다. 그것도 안 됐다. 첫 번째 부인은 출산 중에 죽었고, 두 번째 부인과는 이혼했다. 세금징수원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정부에서 잘렸다.
그런데 이 실패들 사이에서 페인이 하나를 발견했다. 자신이 쓴 글이 사람들을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그때 런던에서 벤자민 프랭클린을 만났다. 프랭클린은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미국으로 와서 당신의 필력으로 독립의 열망을 부추겨 달라."
페인은 대서양을 건넜다. 배 안에서 전염병이 돌았고, 필라델피아에 도착했을 때 그는 걸어 나오지도 못했다. 프랭클린의 주치의가 배에 올라 반쯤 죽은 그를 살려냈다. 새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쩌다인문학/토마스 페인을 설득하는 벤자민 프랭클린.
■ 얇은 책 한 권이 250만 명을 흔들었다
필라델피아에 정착한 페인은 펜실베이니아 매거진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글을 썼다. 1776년 1월, 『커먼 센스(Common Sense)』가 출간됐다. 얇은 책이었다.
약 1년여 만에 50만 부가 팔렸다. 당시 미국 인구 250만 명 중 5분의 1이 이 책을 손에 쥔 셈이었다. 책은 왕의 지배가 왜 부당한지를 논했고, 스스로 다스려야 한다는 열망에 불을 질렀다. 1783년,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훗날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이렇게 말했다. "조지 워싱턴의 칼은 토마스 페인의 펜이 없었다면 아무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common sense.
■ 영웅이 프랑스로 건너간 뒤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 혁명을 성공시킨 페인은 이번엔 프랑스로 향했다. 혁명의 불씨를 다시 한번 당기겠다는 생각이었다. 프랑스에서 독립운동가들과 합류한 그는 『인권(Rights of Man)』을 썼다.
그런데 내용이 달라져 있었다. 『커먼 센스』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신과 도덕의 언어가 9만 단어짜리 『인권』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혁명과 자유는 점점 종교와 기존 질서를 밀어내는 방향으로 흘렀다. 페인은 프랑스 혁명의 무드에 스며들고 있었다.
■ 감옥에서 쓴 마지막 책이 그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결국 페인도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감옥에 갇혔다. 그 안에서 또 책을 썼다. 제목은 『이성의 시대(The Age of Reason)』. 첫 문장은 이랬다. "나의 생각이 곧 교회다."
출간 소식을 들은 프랭클린은 편지로 말렸다. "당신은 이성만으로 살 수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를 필요로 한다. 이 책으로 당신의 평판을 망치지 마라." 페인은 듣지 않았다.
책이 나오자 미국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영웅으로 기억하던 토마스 페인이 자신들이 믿어온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평판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 1809년 6월, 그의 장례식에 미국인 6명이 왔다
감옥에서 풀려난 페인은 미국으로 돌아왔다. 한때 대륙 전체를 들끓게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반기지 않았다. 1809년 6월, 페인이 죽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미국인은 단 6명이었다.
프랭클린이 예고한 그대로였다.
미국의 독립이 신과 창조 질서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혁명이었다면, 프랑스 혁명은 그것을 완전히 걷어내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같은 펜을 든 남자가 두 혁명을 모두 경험했다. 그리고 두 혁명의 결과는 달랐다. 페인의 생애는 그 차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다음 편에선 미국 국장 속 독수리가 숨긴 비밀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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