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강도를 제압했던 피해자가 되려 피의자가 됐다. 강도를 막은 배우 나나 사건이 정당방위를 둘러싼 오랜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나나 사건을 계기로 국회는 정당방위 범위를 확대하는 ‘나나법’을 내놨지만, 논란의 본질은 따로 있다. 피해자가 스스로를 지키는 순간까지 법의 심판대에 올라야 하는 현실이다.
사건은 지난해 11월15일 새벽 경기 구리시 아천동에 위치한 나나의 자택에서 발생했다. 30대 남성 김모씨는 사다리를 이용해 발코니로 올라간 뒤 잠겨있지 않은 문을 통해 집 안으로 침입했다. 당시 집 안에는 나나와 그의 어머니가 있었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김씨는 흉기를 소지한 채 나나의 어머니를 위협했고, 목을 조르는 등 폭력을 행사하며 금품을 요구했다. 비명을 듣고 잠에서 깬 나나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고, 모녀는 몸싸움 끝에 김씨를 제압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나나 사건
갑론을박
이 과정에서 나나와 어머니 모두 부상을 입었다. 특히 어머니는 의식을 잃을 정도의 상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역시 제압 과정에서 턱 부위 등에 상처를 입고 병원 치료를 받았다. 경찰은 사건 초기부터 나나 모녀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판단했다.
흉기를 소지한 침입자가 실제 위해를 가하는 상황에서 자신과 가족의 생명·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방어 행위였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구속된 김씨는 돌연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 자신은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고 단순 절도 목적이었을 뿐이라며 강도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자신이 오히려 나나에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면서 살인미수 및 특수상해 혐의로 나나를 고소했다.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나나가 흉기를 들고 자신을 공격했으며 자신은 피해자라는 취지였다. 결국 경찰은 별도 수사를 진행했고, 나나는 참고인 신분을 넘어 피고소인으로 조사를 받아야 했다.
경찰은 올해 1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나나 사건을 불송치 결정했다. 수사 결과 침입자가 흉기를 소지했던 사실이 확인됐고, 나나의 행위 역시 자신과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 행위로 판단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강도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씨는 법정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재판부는 사건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나나와 그의 어머니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나나는 피해자임에도 여러 차례 수사와 재판 절차에 참여해야 했다. 지난 4월 열린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나나는 법정에서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피고인이 들고 있던 흉기를 빼앗으려고 몸싸움을 벌였다”며 “왜 이렇게까지 어머니와 제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어 “(피고인이) 여기서 그만하고 반성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 6월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은 김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흉기를 소지한 채 주거에 침입해 피해자들을 위협한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김씨는 선고 직후 사실오인과 양형부당 등을 이유로 항소장을 제출했다.
사건이 알려지자 온라인상에서는 “강도를 막은 피해자가 왜 경찰 조사를 받고 법정까지 서야 하느냐”는 반응이 이어졌다. 특히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이뤄진 방어행위조차 사후적으로 법적 판단 대상이 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졌다.
“왜 우리가 수모를 당해야 하나”
역고소에 법정에까지 선 피해자
나나 사건이 사회적 논란으로 번지면서 정치권도 움직였다. 피해자가 범죄자를 제압한 뒤 되려 수사 대상이 되고, 역고소에 시달리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회에서는 이른바 ‘나나법’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지난 12일 형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정당방위 성립 요건인 ‘상당한 이유’의 판단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법에 명시하는 것이다.
현행 형법 제21조는 정당방위를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그 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처벌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상당한 이유’가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법률에는 어떤 상황이 정당방위에 해당하는지 구체적인 기준이 적혀 있지 않다. 결국 수사기관과 법원이 사건 발생 이후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며 정당방위인지 판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느꼈던 공포와 긴박함보다 방어 행위의 결과가 지나치게 강조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 정당방위 사건을 둘러싼 논란 대부분도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범죄 피해자는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했다고 주장하지만,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사후적으로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행위가 과도하지 않았는지” “공격이 이미 끝난 것은 아닌지” 등을 따진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생사가 오가는 순간에 한 행동으로 수개월 또는 수년 뒤 법정에서 다시 평가받는 셈이다. 전 의원은 이를 두고 “사후적 잣대로 현장의 공포와 급박함을 재단하는 기계적 판단은 선량한 시민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이 같은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정당방위가 인정될 수 있는 대표적 상황을 법률에 명문화했다.
우선 주거에 침입한 사람이 자신 또는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경우, 이를 저지하기 위한 행위를 원칙적으로 정당방위로 인정하도록 했다.
또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소지한 사람의 공격에 대응하는 경우 ▲다수의 위력을 앞세운 공격에 맞서는 경우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위해가 예상되는 상황 등 역시 정당방위 인정 대상에 포함했다.
기존 법이 ‘상당한 이유’라는 추상적 개념에 의존했다면, 개정안은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해 수사기관과 법원의 해석 범위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부당한 침해
상당한 이유?
정치권에서는 특히 주거침입 범죄를 중요한 변화로 보고 있다. 현행법상 집 안에서 발생한 범죄라고 해서 자동으로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다른 폭행 사건과 마찬가지로 현재성, 상당성, 비례성 등을 따져 판단한다.
반면 개정안은 주거를 생명과 안전이 보호받아야 할 최후의 공간으로 보고, 침입 범죄에 대해서는 보다 넓은 범위의 방어권을 인정하는 방향에 가깝다. 나나 사건 역시 흉기를 든 침입자가 자택에 들어와 가족을 위협한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개정안이 상정한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다만 법안이 통과된 것은 아니다. 개정안은 앞으로 국회 심의와 법제사법위원회 검토 등을 거쳐야 한다. 특히 정당방위 인정 범위를 확대할 경우, 사적 제재나 보복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아 입법 과정에서 상당한 논쟁이 예상된다.
나나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산 이유는 단순히 유명 연예인이 범죄 피해를 입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시민들이 “저 상황에서도 정당방위를 따져야 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 배경에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정당방위 인정 기준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우리나라에서 정당방위는 얼마나 인정되고 있을까.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정당방위를 인정받기가 매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형법 제21조는 정당방위를 인정하기 위해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존재할 것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행위일 것 ▲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 등을 요구한다.
조문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훨씬 복잡한 기준이 적용된다. 법원은 통상 정당방위를 판단할 때 현재성, 상당성, 비례성, 보충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우선 침해가 ‘현재 진행 중’이어야 한다. 이미 공격이 끝난 상황에서 가해자를 폭행하거나 보복하는 경우에는 정당방위로 인정받기 어렵다.
방어 수단의 정도 역시 중요하다. 가해자의 공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판단되면 정당방위가 아닌 과잉방위 또는 일반 범죄로 평가될 수 있다. 상대방의 공격을 제지한 뒤에도 계속 폭행을 가하거나, 공격의 정도에 비해 지나치게 강한 수단을 사용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보충성’ 개념도 적용된다. 쉽게 말해 도망가거나 신고하는 등 다른 방법이 있었는데도 굳이 적극적인 물리력을 행사했다면 정당방위 인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런 기준들이 실제 범죄 현장의 긴박한 상황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흉기를 든 범죄자와 마주한 피해자가 순간적으로 침착하게 공격의 강도와 대응 수위를 계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법원은 사건 발생 이후 비교적 냉정한 시각에서 당시 행위를 평가한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정당방위가 사실상 “존재는 하지만 실제로 인정받기는 매우 어려운 권리”라는 말까지 나온다. 통계 역시 이 같은 현실을 보여준다.
인정 범위?
모호한 기준
대검찰청 검찰연감에 따르면 전체 사건 처리 인원 가운데 ‘죄가 안 됨’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된 비율은 2018년 0.17%, 2019년 0.16%, 2020년 0.17%, 2021년 0.09%, 2022년 0.08%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이 수치는 순수한 정당방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긴급피난, 정당행위 등 형사상 위법성이 조각되는 모든 경우가 포함돼있다. 다시 말해 실제 정당방위로 인정된 비율은 이보다 더 적을 가능성이 높다.
그간 정당방위를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는 범죄 피해자가 자신이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저항했다가 오히려 피의자로 입건되거나 처벌 대상이 된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건이 이른바 ‘도둑 뇌사 사건’이다. 2014년 한 20대 남성은 심야 시간 자신의 집에 침입한 절도범을 발견했다.
그는 도둑을 붙잡기 위해 주먹과 빨래건조대 등을 이용해 수차례 폭행했다. 결국 절도범은 뇌사 상태에 빠졌고 이후 사망했다. 당시 법원은 집주인의 행위가 정당방위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침입자를 제압하는 수준을 넘어 과도한 물리력이 행사됐다는 이유였다.
결국 집주인에게는 과잉방위 책임이 인정됐다. 당시 판결은 “도둑을 막은 사람이 왜 처벌받아야 하느냐”는 사회적 논쟁을 불러왔다. 반면 법원은 침입자를 제압한 이후에도 폭행이 계속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1964년 발생한 ‘최말자 사건’은 정당방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정당방위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 18세였던 최말자씨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에게 저항하는 과정에서 혀를 깨물어 절단시켰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고 중상해 혐의 유죄를 선고했다. 60여년이 흐른 뒤 법원은 재심을 통해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폭력 상황에서의 저항권과 당시 시대적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한국 형사법에서 정당방위 인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인정률 0.08% 보여준 현실
바늘구멍 같은 인정 범위
정당방위 인정이 어려운 건 과거의 일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불법촬영 범죄를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지난 1일 창원지법은 여자 화장실에서 자신을 몰래 촬영한 남성을 붙잡아 얼굴을 여러 차례 때린 40대 여성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피해 여성은 몰카범의 도주를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가해자가 범행을 인정하고 있었고, 피해 여성이 출입구를 막아서는 수준을 넘어 얼굴을 15~17차례 폭행한 것은 방어를 넘어선 사적 제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판결이 알려지자 온라인에서는 “몰카범을 잡고도 처벌받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법원은 정당방위의 핵심은 범죄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현재의 침해를 막기 위한 방어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 2023년 대전의 한 편의점에서는 술에 취한 남성이 점주를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점주는 이를 막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였고, 경찰은 한때 점주를 상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피해자가 오히려 수사 대상이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졌고, 이후 정당방위가 인정되면서 사건은 종결됐다. 하지만 점주는 수개월 동안 경찰 조사를 받고 법적 절차를 밟아야 했다.
교제폭력 사건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된다. 장기간 폭력에 시달리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맞서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경우 법원은 대체로 정당방위를 엄격하게 해석해 왔다.
실제로 수년간 교제폭력을 당하다 가해자를 살해한 사건에서 법원은 피해자의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정당방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폭행이 진행 중인 ‘현재의 침해’ 상황이 아니었다는 이유에서다.
피해자 측은 지속적인 폭력과 통제 속에서는 위협이 늘 현재형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지만, 현행 법리는 이를 폭넓게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정당방위를 둘러싼 사건들은 유형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자신이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사기관과 법원은 방어의 필요성뿐 아니라 그 방법과 정도까지 함께 검토한다. 그 결과 어떤 사건에서는 정당방위가 인정되고, 어떤 사건에서는 범죄가 성립한다. 문제는 그 경계가 일반 시민의 눈에는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이다.
누구는 인정
누구는 범죄
전문가들은 법적 모호성 이상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종적으로 무혐의 또는 정당방위 판단을 받더라도 그 과정에서 상당수 피해자들이 수사와 재판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나나 역시 경찰의 불송치 결정을 받았지만 역고소에 따른 수사를 받아야 했고, 이후 강도 재판에서는 증인으로 출석해 사건 경위를 설명해야 했다. 피해자가 범죄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충격을 회복하기도 전에 다시 수사기관과 법원을 오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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