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조도 아래 비로소 드러나는 배우 최현욱의 짙음.
점점 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야 생각도 더 다양하게 할 수 있고, 표현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겁없이 해야 또 다른 답이 나올 수도 있는 것 같고요.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이 6월 26일 공개를 앞두고 있습니다. 작품을 거듭하면서 처음의 긴장과 떨림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나요?
그간 출연한 드라마와 달리 이번 <맨 끝줄 소년>은 6부작이 동시에 공개된다는 점에서 드라마 첫 방송 때와는 또 다른 긴장감이 드는 것 같아요. 첫 장르물이기도 해서 어떻게 봐주실지 떨리기도 하고요.
<맨 끝줄 소년>은 실패한 작가이자 국문학과 교수인 ‘허문오’(최민식)가 강의실 맨 끝줄 소년 ‘이강’(최현욱)이 작가로서 지닌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의 글에 집착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서스펜스 드라마입니다. 그간 선보인 작품이나 역할과 확연히 다른 결을 지니고 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제가 선택했다기보다는 저도 수많은 배우 중 한 명으로서 선택을 받아야 했던 역할이에요. 시기적으로는 제가 인간의 여러 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던 때에 처음 대본을 읽게 됐어요. 때마침 저 혼자 고민하고 곱씹던 부분이 대본 안에 나타나 있더라고요. 신기한 우연으로 느껴졌어요.
최현욱 배우가 지금까지 보여준 생동감 있는 청춘의 얼굴과 달리, 이강은 속을 내비치지 않는 차가운 얼굴을 지닌 인물이잖아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고됨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먼저 강이라는 인물이 쓰는 글이 굉장히 독특하잖아요. 다른 사람을 관찰하면서 쓰는 글이고, 인물 자체도 묘한 캐릭터고요. 그래서 쓰는 사람이자 관찰자로 있을 때와 자신의 글을 읽어주는 허문오 선생님 앞에 있을 때 연기를 다르게 가져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관찰자 입장일 때는 제가 무언가를 많이 표현하기보다 최대한 절제하려 했고, 반면 민식 선배님 앞에서는 표정과 눈빛만으로는 이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없도록, 조금 더 긴장감을 주고 싶었어요.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보면 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말들이 있고, 마치 선생님의 마음을 찔러보는 듯한 대사도 있거든요. 그러는 가운데 강이 글을 쓰거나 자신의 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큼은 본인도 통제할 수 없는 희열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왜 소년들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 흥미로운 것에 대해 말할 때 흥분하고 말이 빨라지기도 하잖아요. 초반에는 감독님과 그런 방향으로 캐릭터를 조율했고, 저도 그런 차이를 호흡 안에서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상대 역할인 최민식 배우와의 독대는 젊은 배우에게 큰 도전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과정에서 얻고 배운 것도 많았을 것 같고요.
민식 선배님은 첫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감독님과 함께 두세 차례 따로 만나 대본 리딩을 했어요. 그 과정에서 선배님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셨고,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그 시간을 바탕으로 촬영 전까지 열심히 준비했고요. 연기 면에서 저는 현장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움을 얻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리허설을 하며 신을 맞춰보는 과정에서 선배님도 저를 조금씩 믿어주셨던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촬영하는 순간만큼은 선배님이라는 거리감을 느끼기보다 동료 배우로서 제가 해야 할 것을 주저하지 않고 해볼 수 있었어요. 제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기도 하지만, 사실 선배님은 20대 배우가 먼저 다가가기 어려운 분이잖아요. 그런데 선배님은 저라는 사람을 잘 파악하고 존중해주셨던 것 같아요. 장난도 많이 치면서 현장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주셨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언젠가 현장에서 함께하는 이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어떤 작품은 지나온 뒤에도 배우 안에 남아 배우 자체를 조금 바꾸어놓기도 하잖아요. 이번 작품 이후 그런 변화를 느낀 부분이 있나요?
<맨 끝줄 소년>은 그런 변화가 조금 더 분명하게 남은 작품인 것 같아요. 강은 손톱을 물어뜯거나 몸을 구부정하게 하고 다니는데, 평소 제 걸음걸이나 움직임에도 그런 습관을 많이 반영하려 했어요. 무엇보다 강은 계속 관찰하는 인물이잖아요. 어떤 신에서는 대사 한마디 없이 누군가를 관찰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현장 밖에서도 사람들을 관찰하려는 버릇이 생기더라고요. 배우로서 몰입한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강은 몰래 관찰하는, 어떤 시선에서는 조금 음침한 친구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모습이 제 안에 남는 것이 느껴지면 빨리 빠져나오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전의 저와는 다른 에너지니까요. 실제로 거북목이 더 심해지기도 했고요.(웃음)
돌이켜보면 어떤 서사에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아요? 최현욱 배우가 사랑하는 이야기의 교집합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끝내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에는 적어도 무엇이 있던가요?
처음에는 서로 경계하고 대립하는 관계로 시작했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믿음이 쌓여가는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아요. 완전히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만나고, 결국 서로 연결되는 지점에 흥미를 느껴요.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좋아해요. 각자 다른 세계관과 서사를 가진 인물들이 따로 존재하다가, 어느 순간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가 특히 흥미로워요.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넷플릭스 <원 헌드레드>라는 작품을 아주 좋아했어요. 지금은 볼 수 없는 것 같은데, 총 7개 시즌에 전체 에피소드가 1백 부작으로 굉장히 긴 시리즈인데도 세 번 정도 봤어요. 미래에 지구에 살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우주선에서 살아가다가 산소가 부족해지자 청소년 수감자 1백 명을 지구로 내려보내는 이야기인데요. 알고 보니 지구에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고, 이후 지하 세계나 사막처럼 다양한 세계관이 펼쳐져요.
장대한 서사의 대작만이 주는 희열이 있죠.
맞아요. 근데 최근에는 영화 <만약에 우리>를 너무 잘 봤어요. 시사회에 초대받아 극장에서 봤는데 소문이 났대요. 최현욱이 너무 큰 소리로 운다고.(웃음)
꾸준히 작품을 하며 본인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죠. 배우라는 일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 어떤 마음이 필요하고, 또 어떤 것은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오래 이 일을 하기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은 아직 많이 해보지 않았어요. 그저 앞에 놓인 한 작품 한 작품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오래 일하기 위해 나만의 색깔을 만들거나, 그 색깔이 없어지지 않도록 무언가를 계획하는 건 없어요. 오히려 연기는 갈수록 더 어려워요. 너무 재미있고 희열도 느끼지만, 출연 작품이 쌓일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매 작품에서 저도 보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저도 보고 싶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때때로 내가 헤매고 있는 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스트레스를 받죠. 시청자들은 괜찮다고 할 수 있지만, 저 스스로는 ‘이건 전에 썼던 표정인데’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게 지금 맡은 역할에 맞지 않는 것 같은 거죠. 그래서 최근에는 연기의 기초를 다시 생각하려고 해요. 지금 허준호 선배님과 세 작품을 연속으로 함께 작업하고 있는데, 얼마 전 저녁 자리에서 제가 고민을 털어놓으니까 선배님이 “헤맬수록 기초 연기로 가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말이 마음에 많이 남아요. 요즘은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 조금 헤매고 있는 단계라고 느껴서요.
많은 배우가 연기 경력이 쌓일수록 누군가의 감정을 표현할 때 그 감정을 어디까지 드러내야 할지 조심스럽다고 하잖아요. 예를 들어 슬픔이라는 범주 안에서도 눈물을 한 방울 툭 흘리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꾹 참고 끝내 보이지 않는 것이 맞는지 등 한 인간의 슬픔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요즘 선배님들 중에는 왜 꼭 눈물 연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보통 실생활에서는 울음을 참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사람마다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 너무 다르고, 보는 분들이 그 상황과 장면을 슬프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도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 최현욱 배우의 연기는 계산된 감정보다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표정이 번뜩일 때가 많아요. 찰나의 얼굴을 붙잡고 싶게 만드는 순간들이요.
저 역시 순간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아요. 긴 독백을 할 때도 대사를 뱉는 그 순간에 몰입하게 되고, 때로는 상대 배우에게 깊이 빠져 들기도 해요. 계산하기보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나오는 대로 반응하는 쪽에 가까워요.
맞아요. 그래서 연기론적 질문이 오히려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밀한 계산보다 순간에 몰입해 만들어가는 쪽에 가깝다면, 그 순간순간의 감각이 더 중요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오늘은 해냈지만 내일은 못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나요? 스스로의 기준에 닿지 못하는 순간에 대한 걱정 같은.
두려움이라면, 오늘 이 감정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을 말씀하시는 거죠? <반짝이는 워터멜론> 때도, <스물다섯 스물하나> 때도 그런 순간이 있었던 것 같아요. 대본을 보며 감정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수없이 연습하지만 막상 현장에 가면 또 달라지잖아요. 에너지가 떨어지거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어요. 그럴 때는 계산하기보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는 것 같아요. 콘택트렌즈를 빼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지금 천재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콘택트렌즈 이야기를….(웃음)
그런데 요즘은 ‘천재’나 ‘노력’ 같은 말을 들으면 오히려 숨고 싶어져요. 겸손해서가 아니라 제 부족함이 더 크게 느껴져서 그래요. 그런 말들이 좀 버겁게 다가오기도 하고요. 그만큼 더 나 자신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약한영웅>이나 <스물다섯 스물하나> 때의 에너지가 불과 몇 년 전인데도 그립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때의 나는 어떻게 했지, 어떤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지, 계속 떠올리게 돼요. 과거에 묶여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요즘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있어요.
그 가운데 본인이 배우로서 가진 것 중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도 있나요?
현장에서의 배짱 같은 거요. 야구를 하면서 생긴 자신감, 기세 같은 건 지키고 싶어요. 겁이 없는 것도 되게 중요하더라고요. 물론 캐릭터를 연구하는 과정이나 연기적인 부분도 아주 중요하지만, 신인 시절에는 저도 지레 겁먹고 위축될 때도 있었죠. 그런데 그런 게 조금씩 사라지면서, 점점 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야 생각도 더 다양하게 할 수 있고, 표현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겁없이 해야 또 다른 답이 나올 수도 있는 것 같고요.
근데 흔히 기세나 자기 힘이라고 하면 요란한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데, 최현욱 배우는 조용히 낮게 단단한 쪽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런 성향은 어릴 때부터 있었나요?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했어요. 야구 할 때도 야구부원들과 어울려 무리 지어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주로 혼자 다녔어요. 한림예고로 전학 갔을 때도 놀러 다니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공부하는 것도 싫어서 혼자 많이 다녔거든요.(웃음)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 밑바탕이 된 게 아닐까 싶어요.
마무리할까요. 바야흐로 여름입니다. 그간 출연한 작품들 때문인지 배우로서나 이미지로나 어딘가 여름과 닮은 인상이 있어요. 실제로 여름을 좋아하는 편인가요?
연기할 때는 겨울이 훨씬 편해요. 땀이 많은 편이라 겨울 촬영이 더 수월하거든요. 그런데 계절로는 여름을 좋아해요. 여름 특유의 냄새가 있잖아요. 집에 있다가 밖으로 나갔을 때의 쨍쨍한 햇빛 냄새, 비가 그친 뒤의 냄새 같은 것들이 좋아요. 야구장도, 화이트 와인도 좋아하고요.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저 역시 함께 풀리는 것 같거든요. 겨울에는 몸이 수축되어 있다가, 여름이 오면 조금씩 이완되고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있어요.
작년 봄과 여름에 한창 <맨 끝줄 소년> 촬영을 했죠. 현장 안팎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하나의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대구에서 촬영할 때, 점심시간에 민식 선배님과 근처 순댓국밥집에 갔던 날이 기억나요. 뜨거운 여름이었는데, 더 뜨거운 국밥을 먹었어요. 그날 그 국밥이 참 맛있었어요. 진짜 맛있는 집이었어요. 선배님은 그 후에도 혼자 가셨을 정도로 맛집이에요. 선배님은 진짜 맛있는 곳은 다 드신 뒤에 사인 요청에도 응하신다고 하는데, 그날은 사인을 남기셨어요. 크게 “최민식”이라고 쓰고, 마지막에 몇 월 며칠, 최민식이 왔다 간다 이런 식으로 짧게 쓰셨는데, 그 모습이 뭐랄까 되게 낭만 있어 보였어요. 그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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