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영은 1976년생으로 지난 2000년 MBC 공채 11기 개그맨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SBS 공채 개그맨으로 자리를 옮겨 당대 최고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웃찾사'의 전성기를 이끄는 핵심 멤버로 맹활약했다. 특히 '코봉이' 캐릭터와 "희한하네~" 등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메가 히트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특유의 개성 넘치는 비주얼과 천생 코미디언다운 감각으로 2000년대 중후반 안방극장에 큰 웃음을 선사했다.
한창 잘 나가던 최고의 전성기 시절, 그의 수입은 대기업 간부의 연봉을 가볍게 웃도는 수준이었다. 장재영은 과거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당시 방송 외에도 나이트 DJ 행사를 동시에 다섯 군데나 계약해 한 달 수입이 5,000만 원 정도였다"며, "광고 수입까지 합치면 한 달에 1억 원 가까이 벌기도 했다"라고 화려했던 리즈 시절을 생생하게 회상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황금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그는 "내가 언제까지 개그를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요식업에 무리하게 도전했던 것이 화근이었다고 전했다. 성공한 사업가 타이틀을 얻고 싶었던 그는 강남 한복판에 100평짜리 스테이크 가게를 오픈했으나, 월세 1,000만 원이라는 무거운 현실을 버티지 못하고 1년 만에 폐업의 쓴맛을 봐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믿었던 이에 대한 사기 피해 사실도 고백했다. 동료 개그맨 김늘메와 함께 부산에서 대규모 포장마차 사업을 일으켜 대박을 터뜨렸지만, 동업자가 투자금을 모두 가로채 도망치면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는 아픈 기억이었다.
인생 최악의 비극 속에서 방송을 할 수 있는 에너지마저 방전됐던 그는 당시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로 처절한 암흑기를 보냈다고 회상했다. 월 수입 1억 원을 바라보던 탑개그맨의 수입이 고작 40만 원까지 떨어지는 지독한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장재영은 과거의 영광과 자존심을 완전히 내려놓고 리포터 활동부터 닥치는 대로 시작하며 다시 바닥부터 일어섰고, 현재는 1인 크리에이터들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엔터테인먼트사의 이사로 재직하며 인생의 제2막을 열었다는 새로운 근황을 밝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만난 현명한 아내는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고, 재기에 성공한 그는 이후 재테크를 통해 상가주택을 매입하며 당당히 '건물주'로 우뚝 서는 반전을 맞이했다. 당시 인터뷰를 통해 "뿌듯하다, 지금의 삶이 너무 행복하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던 그였다. 화려한 정상과 처절한 바닥을 모두 경험한 뒤 든든한 가장으로 돌아온 장재영의 뜨거운 앞날을 변함없는 마음으로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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