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를 학교에서 가르치냐고요? 저는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어요. 고등학교 와서는 성폭력 예방 교육 외에 성교육이랄 것도 없었고요. 그런 교육이 있었으면 제가 동성애를 독학하지 않았겠죠."(은호, 고등학생, 동성애자)
"퀴어 성교육이요? 1도 없는데요? 저희 다 독학해서 성소수자 됐거든요. 친구들이랑 걸어가면서 퀴어·동성애 교육 추방이라는 현수막을 봤는데 '안 그래도 없는데 뭘 어떻게 추방하겠다는 거냐'면서 어이없어 했어요."(바다, 고등학생, 무성애자)
6월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을 맞아 <프레시안>에 목소리를 전한 10명의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동성애·퀴어 교육을 받아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교육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온라인을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을 학습했지, 공교육은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 확립에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이들이 더욱 분개한 사건이 있다. 6.3 지방선거 유세 기간 동안 "퀴어·동성애 교육 추방, 교육감은 조전혁" 현수막이 서울 곳곳에 걸린 일이다. 현수막을 내건 조전혁 당시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그의 구호가 성소수자 혐오라는 비판에 "퀴어·동성애 교육을 하지 말자는 건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며 자신이 차별과 혐오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당당한 조 전 후보와 달리 등하굣길에 해당 현수막을 봐야 했던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답답함과 착잡한 마음으로 선거 기간을 보내야 했다. 동성애 교육 추방이라는 그의 구호는 곧 학교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겠다는 말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속상한 마음을 주위 누구에게 드러낼 수도 없었다. 성소수자라는 의심을 받을 게 뻔해서였다.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어른들에게 커다란 정책을 바라지 않는다. 단지 "우리 존재를 지우지 말아 달라", "우리를 모두와 동등한 사람으로 대해 달라"고 호소할 뿐이다.
'나무위키·X'로 성 정체성 독학하는 현실…교육 공백 속 성소수자 혐오 여전
앞서 은호와 바다(가명)가 말했던 것처럼, 한국 공교육은 동성애 및 성소수자를 교육하지 않고 있다. 성교육은 애당초 이성애 중심으로 이뤄질뿐더러 교육부가 고시한 2022년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 등의 용어까지 빠졌다. 일부 사회분과 교과서가 사회적 소수자 가운데 하나로 성소수자를 언급하지만, 그들의 특성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고 넘어간다는 게 학생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공교육의 부재로 인한 혼란을 온라인으로 메운다. 충북 소재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성애자 슬기(가명)와 부산 소재 중학교에 다니는 양성애자 티나(가명)는 온라인 참여형 백과사전 '나무위키'를 통해 자신의 성 지향성을 학습했다. 광주광역시 소재 고등학교에 다니는 트랜스젠더 예명(가명)은 X(옛 트위터)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성소수자도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뒤에야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애초에 학교에서 성교육 자체를 잘 하지 않아요. 기억나는 게 초등학교 때에는 임신을 배우고, 중학교 때에는 여성과 남성의 성기를 배우는 것 정도예요. 이 정도만으로도 학생들이 '왜 이런 걸 보여주느냐', '배우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들 하더라고요. 기본적인 성교육도 이렇게 부실한데, 당연히 동성애를 알려주는 교육이 있을 리가 없죠."(김 씨, 고등학생, 논바이너리)
교육 공백 속에 벌어지는 성소수자 혐오는 직접적이고 극단적이다. 경기도 소재 외국어고등학교에 다니는 범성애자 나연은 한 학생이 "동성애자들은 다 혀를 깨물고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것을 듣고 충격받았다. 서울 소재 중학교에 다니는 양성애자 가리비P(가명) 또한 개신교를 믿는 한 친구에게 "동성애자들을 모두 불태워 죽여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혐오는 실질적인 배제로 이어진다. 서울 소재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성애자 승승(가명)은 중학생 시절 옆반 친구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힌 뒤 왕따와 학교폭력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승승은 이후 "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내가 게이라는 걸 절대 어디에도 말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친구들에게 "제발 내 성 정체성을 남들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사정해야 했다.
혐오와 배제로 인한 고립감은 성소수자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갉아먹는다. 지난 4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 응답자 69%에서 우울 증상이 나타났다. 이는 성인 성소수자 응답자(45.8%)보다 23.2%포인트(p), 전체 우울증 경험률(11.3%) 대비 5배가량 높은 수치다.
"표 얻으려 성소수자 공격하지 말고, 우리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세요"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조 전 후보의 현수막까지 마주하고 느낀 감정은 황당, 착잡, 그리고 공포였다. 지금도 냉대받는 와중에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인물이 교육 정책을 손에 쥐기까지 한다면 교실에서 더욱 배제될 게 뻔해서다.
"퀴어 성교육을 하지 않겠다는 건 퀴어 청소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하는 거예요. 퀴어 청소년 당사자인 저로서는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들을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배제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황당했어요."(금강, 중학생, 트랜스젠더)
"퀴어문화축제 옆에서 시위하는 사람들 정도는 봐 왔지만, 일상생활에서 길을 걷다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현수막을 본 건 처음이에요. 학교에서도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데 교육감 후보라고 나온 사람이 그런 현수막을 등하굣길에 싹 걸었으니, 혐오세력이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에 무서웠어요."(승승)
이번 현수막은 조 전 후보만의 일탈이 아니었다. 신경호 강원도교육감 후보, 정승윤 부산시교육감 후보가 같은 구호를 사용했다. 국민의힘 오지성 군산 국회의원 보궐 선거 후보도 차별금지법 반대 현수막을 내걸고 성소수자를 공격했다. 다만 이들은 모두 이번 선거에서 낙선했다.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표를 얻기 위해 교육감 후보와 정치인들이 성소수자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공격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지향성을 기반으로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성소수자 교육이 성소수자를 양산한다는 일부 주장도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이성애 중심 교육 아래 "자연발생"했다는 점에서 반박된다.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혐오 세력의 공격에 황당함과 서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교육감, 정치인, 한국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다양한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답변의 본질은 같았다. "우리 존재를 있는 그대로 봐 달라", "우리에게 이성애자와 동등하게 살게 해 달라"는 것이다.
"저는 제가 성소수자라는 걸 말하면 혼란스러워 하실까봐 부모님한테도 말씀 못 드렸거든요. 지금 인터뷰도 집을 나와 공원에서 하고 있고요. 그런데 성교육에는 '성소수자는 당신의 주위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내용조차 빠져 있어요. 성소수자의 존재를 성교육이 가르치면 좋겠고, 사람들이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생각보다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면 좋겠어요."(승승)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다른 청소년들에 비해 우울과 고립을 겪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성소수자들도 자신이 원하는 교육, 안전하게 존중받을 수 있는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민생을 중요시하는 정부가 성소수자의 생존권에도 좀더 관심가져주면 좋겠습니다."(금강)
"또래 친구들이 나를 이해해 준다고 해도 한 명의 믿음직한 어른이 학교에 존재하느냐 아니냐가 정말 크게 다가오거든요. 만약 이 기사를 읽는 선생님들이 계시다면, 자신을 사회적 소수자라고 인식하는 학생이 학교를 조금이라도 안전한 공간이라고 인식하게 만들고 싶다면 소수자 문제와 관련한 발언을 하거나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면 좋겠어요."(나연)
"정책은 바라지도 않고요.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필요 없을 정도로 이성애자와 성소수자의 권리가 동등해지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엄청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그때까지 외로운 싸움을 계속 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네요."(김 씨)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차별금지법이 말할 자유를 해친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남을 혐오할 권리가 자유에 해당하는지 의문이에요. 타인의 인권을 침해할 권리를 왜 보장해야 하죠? 저는 잘 모르겠어요."(예명)
"개인적으로 오래 바라온 정책은 동성혼 법제화에요. 이것만 이뤄지면 진짜 소원이 없을 것 같아요. 동성혼을 법제화하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있어도 손해보는 사람은 없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행복하게 살겠다는 데 왜 굳이 막는지 정말 모르겠어요."(티나)
"요즈음 다들 삶이 힘들고 복잡하니까 인생에서 겪는 문제의 원인을 특정 집단에 돌리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중국이나 특정 기관, 정당 등이 그 대상이 되잖아요. 그런데 복잡한 현대사회 문제가 누구 하나 없앤다고 해결되겠어요? 고정관념은 빠른 판단에는 도움 되지만, 정확한 판단에는 도움 되지 않아요. 이제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쉽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식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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