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로봇 경쟁이 하드웨어에서 학습 데이터와 시뮬레이션 인프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실제 로봇을 반복적으로 굴리기 전에 가상 환경에서 수백만 번의 시행착오를 돌려야 하는 강화학습 구조상, 얼마나 빨리 시뮬레이션 환경을 만들고 학습 가능한 데이터를 확보하느냐가 상용화 속도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3D AI 기업 엔닷라이트와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로브로스가 손잡은 배경도 여기에 있다.
엔닷라이트는 22일 로브로스와 ‘넥스트라이즈 2026’ 현장에서 업무협약(MOU)을 맺고, 휴머노이드 로봇 AI 학습과 3D 시뮬레이션 데이터 사업화 전반에서 협력에 나선다고 밝혔다. 협약은 지난 18~19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넥스트라이즈 현장에서 이뤄졌다. 넥스트라이즈는 한국산업은행과 한국무역협회 등이 주최하는 국내 대표 스타트업 행사로, 올해 행사는 6월 18일부터 19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렸다.
이번 협력의 구조는 비교적 분명하다. 엔닷라이트는 자사 솔루션 ‘트리닉스(TRINIX)’를 기반으로 관절 구조와 물리 속성이 반영된 시뮬레이션용 3D 에셋을 자동 생성하고, 이를 엔비디아 아이작 심(NVIDIA Isaac Sim) 같은 로봇 시뮬레이션 플랫폼과 연동하는 역할을 맡는다. 반면 로브로스는 휴머노이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개발, 강화학습 기반 제어 알고리즘, 학습 시나리오 정의, 시뮬레이션 결과의 실제 로봇 적용과 검증을 담당한다. 쉽게 말해 엔닷라이트가 ‘로봇이 훈련할 가상 세계’를 빠르게 만들고, 로브로스가 그 안에서 로봇이 어떻게 배우고 움직일지를 책임지는 구조다.
양사가 공략하는 문제는 로봇 업계에서 오래된 병목으로 꼽혀 왔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강화학습은 반복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실제 환경에서 그 모든 시행착오를 돌리기엔 비용과 시간이 너무 크기 때문에, 상당수 학습은 먼저 시뮬레이션에서 이뤄진다. 문제는 시뮬레이션 환경에 넣을 수 있는 3D 자산과 물리 기반 학습 환경을 만드는 데도 적지 않은 인력과 시간이 든다는 점이다. 단순히 겉모습만 있는 3D 모델이 아니라, 충돌 메쉬와 관절 구조, 질량과 마찰 같은 물리 속성까지 반영된 ‘심레디(Sim-Ready)’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엔닷라이트는 바로 그 지점을 사업 기회로 보고 있다. 회사가 앞세우는 트리닉스는 텍스트, 이미지, 기존 CAD 데이터를 입력받아 시뮬레이션에 바로 쓸 수 있는 3D 에셋을 자동 생성하는 솔루션이다. 최근 공개한 설명에 따르면 트리닉스는 OpenUSD 기반 워크플로우와 엔비디아 아이작 심 연동을 지원하며, 물리 속성과 관절 구조를 포함한 로봇 학습용 에셋 생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엔닷라이트는 최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로보틱스 서밋 & 엑스포 2026에서도 이 기술을 공개하며 “텍스트 입력만으로 로봇 시뮬레이션용 심레디 에셋과 환경을 빠르게 구성할 수 있다”고 소개한 바 있다.
행사 현장성도 눈에 띈다. 엔닷라이트는 이번 넥스트라이즈에 엔비디아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엔비디아 인셉션(NVIDIA Inception)’ 멤버 자격으로 참가했고, 엔비디아 부스에서 트리닉스 기반 ‘텍스트 투 캐드(Text-to-CAD)’와 심레디 에셋 생성 기술을 시연했다. 엔닷라이트는 앞서 올해 3월 엔비디아 GTC 2026의 인셉션 데모 피치 발표 기업으로도 선정된 바 있다. 단순 전시 참가를 넘어 엔비디아가 밀고 있는 피지컬 AI·로보틱스 생태계 안에서 자사 기술을 연결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로브로스 입장에서도 이번 협력은 실무적인 의미가 크다.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은 하드웨어 완성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로봇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움직이려면 물체를 인식하고, 팔과 손을 제어하고, 예외 상황에 대응하는 동작 정책을 학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학습 시나리오 설계와 데이터 정의, 시뮬레이션에서 현실로 옮겨가는 ‘심투리얼(sim-to-real)’ 검증이 중요해진다. 엔닷라이트가 가상 환경 구축 시간을 줄여준다면, 로브로스는 실제 제어 성능과 현장 적용성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수 있게 된다.
양사가 내세우는 공동 목표는 결국 학습 사이클 단축이다. 엔닷라이트의 심레디 3D 에셋 생성 기술과 로브로스의 휴머노이드 제어 기술을 묶어, 가상 환경에서의 반복 학습 속도를 높이고 실제 적용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피지컬 AI 시장이 커질수록 로봇의 두뇌만큼 중요한 것이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에서, 이번 협업은 단순한 기술 제휴보다 데이터 인프라 사업 쪽에 더 가까운 성격을 띤다.
다만 기대만큼 넘어야 할 장벽도 적지 않다. 로봇 시뮬레이션 업계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여전히 ‘현실과 가상의 차이’, 이른바 심투리얼 갭을 얼마나 줄이느냐다. 시뮬레이션 안에서 잘 학습한 정책이 실제 하드웨어에서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리 엔진의 오차, 센서 노이즈,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가 겹치면 가상 성능이 실제 성능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엔닷라이트의 3D 자산 자동화가 단순 제작 시간 단축을 넘어, 얼마나 현실에 가까운 학습 데이터를 만들 수 있는지, 로브로스가 이를 실제 로봇 성능 개선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가 사업 성패를 가를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시장 흐름은 분명하다.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한 피지컬 AI 생태계는 로봇 두뇌뿐 아니라, 로봇이 학습할 3D 월드모델과 시뮬레이션 자산, 디지털 트윈 인프라를 함께 키우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엔닷라이트가 CAD·3D 데이터 자동 생성에서 출발해 심레디 에셋 인프라로 보폭을 넓히고, 로브로스가 휴머노이드 제어 기술과 결합하려는 이유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박진영 엔닷라이트 대표는 “넥스트라이즈라는 대형 스타트업 행사, 그것도 엔비디아 파트너 부스에서 로브로스와의 협력을 알리게 돼 뜻깊다”며 “양사의 기술을 결합해 휴머노이드 로봇 AI 학습 전 과정을 가속화하고 디지털 트윈·로봇 시뮬레이션 데이터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노승준 로브로스 대표는 “휴머노이드 상용화를 위해서는 현실을 정교하게 반영한 시뮬레이션 환경과 고품질 학습 데이터 확보가 핵심”이라며 “엔닷라이트의 트리닉스 기반 심레디 에셋 생성 기술과 로브로스의 휴머노이드 HW·SW, AI 제어 기술을 결합해 실제 산업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기술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휴머노이드 경쟁은 이제 ‘누가 더 사람처럼 생긴 로봇을 만들었느냐’보다, ‘누가 더 빨리 로봇을 학습시키고 현장에 투입하느냐’의 싸움에 가까워지고 있다. 엔닷라이트와 로브로스의 이번 협업은 그 승부가 하드웨어 바깥, 데이터와 시뮬레이션 인프라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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