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게임 중에서 유독 관심을 받는 타이틀이 있기 마련입니다.
화제작은 단순히 ‘재미있는 게임’ 그 이상의 의미가 있죠. 시장을 주도하는 게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지금 게임 업계 흐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이 왜 입소문을 타고 있는지”를 함께 짚어보고 직접 플레이해 보려 합니다.
주목할 만한 게임과 콘텐츠를 전해드리는 코너. [송기자의 픽&플레이]는 게임을 고를 때 참고해야 할 알찬 가이드가 되겠습니다.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다양한 인공지능(AI) 시스템의 도움을 받으며 업무를 처리합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AI ‘자비스’는 저택 관리는 물론 슈트 제어까지 도맡아 하는 만능 비서로 활약하죠. 천재 과학자인 토니 스타크가 놓친 맹점까지 정확히 짚어낼 정도로 자비스는 일상과 전투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면 배틀그라운드에 지난 17일 추가된 AI 기술 ‘PUBG 엘라이’도 자비스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규 모드 ‘엘라이 듀오’에서 팀원으로 만날 수 있는 AI 캐릭터 ‘엘라’는 유저와 실시간으로 대화합니다. 주변 상황 보고와 아이템 수집, 전략 제안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파트너 역할을 해내죠.
사실 그간 크래프톤의 행보를 보면 배틀그라운드에 최신 AI 기술이 접목된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지난해 말부터 ‘AI 퍼스트’를 핵심 경영 전략으로 내걸고 역량을 집중해 왔기 때문이죠.
실제로 올해 초 피지컬 AI 전문 독립 법인인 ‘루도 로보틱스’를 설립해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에 나섰는가 하면 지난 7일에는 엔비디아 젠슨 황 CEO와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이 직접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크래프톤은 이미 수년 전부터 AI를 접목한 게임들로 주목을 받아온 기업입니다. 마이크로 직접 주문을 외쳐 전투를 벌이는 ‘마법 소녀 루루핑’. 강화 학습 기반 기술을 활용해 AI 캐릭터가 사람의 말투와 행동을 학습하고 군중 속에 숨는 심리전을 구현한 ‘미메시스’도 있습니다.
그동안 게임을 통해 AI 기술의 가능성을 꾸준히 증명해 온 크래프톤인 만큼 이번 ‘PUBG 엘라이’ 역시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기존에도 플레이를 돕는 가이드 기능은 존재했지만 ‘PUBG 엘라이’처럼 실제 이용자의 주변 환경 정보를 기반으로 직접 플레이를 함께하는 협동 플레이 캐릭터(CPC, Co-Playable Character) 사례는 국내에서 사실상 전무했으니까요.
PUBG 엘라이란?
[영상 제작·편집=황민우 기자]
‘PUBG 엘라이’의 차별화 포인트는 유저와 같은 시점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AI 캐릭터 기술에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캐릭터 ‘엘라’에 엔비디아 에이스 기반의 온디바이스 소형 언어 모델이 적용됐기 때문이죠.
엔비디아 에이스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게임 캐릭터가 실제 사람처럼 환경을 인식하고 계획을 세워 행동하도록 만드는 기술입니다. 유저 데이터나 실시간 오디오 신호를 분석해 인간에 가까운 의사 결정을 시뮬레이션하는 방식이죠.
이러한 기술은 동료 AI 캐릭터가 유저의 명령을 수행하고 전략을 공유하는 데 쓰일 뿐만 아니라 유저의 플레이 스타일을 학습해 실시간으로 새로운 공격 패턴을 구사하는 적 보스 캐릭터를 구현하는 데도 활용됩니다.
엘라 또한 인게임에서 자율적으로 분대원 역할을 수행합니다. 유저가 음성 명령을 내리면 주변 아이템을 스스로 수집해 나눠주기도 하죠. 주변 상황을 독립적으로 인식한 뒤 실시간으로 브리핑하며 전략을 제안할 때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나만을 위한 배틀그라운드 버전 자비스인 셈이죠.
AI 캐릭터 ‘엘라’, 나만의 배틀그라운드 자비스
[영상 제작·편집=황민우 기자]
엘라와의 소통은 수송기에 탑승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수송기 경로를 확인한 뒤 원하는 낙하지점을 말하면 지도상에 해당 위치를 직접 표시해 주죠. 혼자서 플레이하는 모드이지만 실제 사람에게 하듯 AI 캐릭터에게 의견을 묻고 함께 전략을 짜는 과정은 꽤나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옵니다.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면 엘라는 일반 봇과 크게 다르지 않게 움직입니다. 낙하 직후 주변 아이템을 획득하고 스스로 정비를 시작하죠. 결정적인 차이는 유저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순간 드러납니다. 음성으로 지시를 내리면, 엘라는 그 즉시 해당 명령을 수행합니다.
가령 주변에 적이 나타났거나 총성이 들릴 때 맵에 핑을 찍어달라고 요청하면 즉시 수행합니다. 굳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적을 발견하면 나침반을 언급하며 위치를 실시간으로 브리핑하죠. 놀라운 점은 디테일입니다. 단순히 ‘적이 있다’ 수준에 그치지 않고 ‘적을 발견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으니 경계하겠다’라며 상황 변화에 맞춰 대처합니다.
[영상 제작·편집=황민우 기자]
이처럼 주변 환경을 스스로 인식하고 능동적으로 보고하는 기능은 배틀그라운드가 낯선 초보 유저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도 맵 크기가 작아 곳곳에서 쉴 새 없이 난전이 벌어지는 사녹 특성상 혼란스러운 전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데 실시간 보고가 큰 힘이 됐습니다.
단순히 적을 찾고 경계하는 수준을 넘어 아이템을 공유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도 인상적입니다. 엘라에게 현재 보유한 아이템을 나눠달라고 요청하면 망설임 없이 즉시 건네주죠. 게다가 자기장 위치와 남은 시간을 감안해 이동 타이밍을 짚어주거나 특정 지점으로 이동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는 조언까지 건넵니다. 이러한 보고는 긴박하게 돌아가는 전장 속에서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는 데 유용했습니다.
첫인상: 열심히 하려 노력하는 어린아이
[영상 제작·편집=황민우 기자]
크래프톤은 엘라이 듀오 모드를 시작하기 전 안내사항을 공지합니다. 안내사항에는 ‘PUBG 엘라이’의 작동 구조와 주의사항 그리고 ‘아직 개발을 진행 중’이란 내용이 포함되어 있죠. 안내대로 ‘PUBG 엘라이’의 첫인상은 성능보다 앞으로 가능성에 기대가 가는 기술처럼 보입니다.
‘PUBG 엘라이’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현시점 기준으로 든든한 동료라기보다 손이 많이 가는 어린아이를 분대원으로 데리고 다니는 듯한 느낌입니다. 엘라는 부지런히 전황을 브리핑하고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려 노력하지만 그 결과가 엉뚱하거나 유저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갈 때가 많습니다.
이는 업무에서 챗GPT나 제미나이를 쓸 때 명령어 우선순위나 맥락을 명확히 설정하지 않으면 엉뚱한 결과물을 받는 것과 비슷합니다. 가령 주변 사주경계를 요청하면 그 임무는 완벽히 수행합니다. 하지만 이동할 때 ‘함께 가자’는 명령을 추가로 내리지 않으면 엘라는 유저의 위치와 상관없이 처음 명령을 받은 제자리에 멈춰 선 채 사주경계를 유지합니다.
엘라에게 명령을 내릴 때 겪는 불편함은 주로 긴박한 교전 상황에서 도드라졌습니다. 게임 특성상 교전 중에는 짧고 정제되지 않은 소통이 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다급한 상황 속에서 명령어의 우선순위를 따져가며 정확하게 지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니까요.
가령 실제 사람이라면 ‘적이 올 만한 곳을 봐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적이 나타나면 즉시 대응 사격을 하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반면 엘라는 적이 나타나도 그저 지도상에 핑을 찍는 수준에 머물 뿐 적극적으로 교전에 가담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적 발견 시 즉각 대응 사격을 해달라’라는 식으로 명확하게 명령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현재의 부족함보다 미래의 가능성이 기대되는 PUBG 엘라이
그런 의미에서 ‘PUBG 엘라이’가 앞으로 개선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해 보입니다. 엘라에게 배틀그라운드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죠. 교전이 쉴 새 없이 벌어지는 게임 특성상 유저의 지시는 은어나 줄임말로 두서없이 전달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번 베타 테스트 기간 동안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같은 명령이라도 전황과 맥락을 고려한 결과물을 도출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부족한 점이 있다 해서 실망스럽거나 불쾌하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내 시야에 닿지 않는 적을 AI가 먼저 찾아내고 경계 지점을 짚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배틀그라운드를 경험해 본 유저라면 파격적인 변화를 느낄만한 부분이니까요.
‘PUBG 엘라이’가 앞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며 완성도를 높였을 때 과연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지 우려보다 기대감이 앞섭니다.
송진원 기자 jin1@tleav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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