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평화 프레임워크가 가시화되면서 인도가 서아시아 전략 재정비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가격 안정과 물류 정상화의 수혜를 받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란을 활용한 대륙 연결망 구축과 지역 외교 영향력 확대에 무게를 둘 것으로 분석된다.
22일 지정학 전문 분석기관 지오스트라타에 따르면, 인도 경제가 가장 먼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에너지 안보다. 인도는 세계 3위 원유 수입국으로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액화석유가스(LPG)의 상당 부분을 서아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원유 해상 물동량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은 인도 에너지 공급망의 생명선으로 불린다.
이번 합의로 해상 항로 불확실성이 완화되면 국제 유가와 운임이 안정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인도의 수입물가 부담을 줄이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는 동시에 루피화 안정과 경상수지 개선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인도중앙은행(RBI)의 통화정책 부담이 완화되고 성장률 전망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차바하르항 다시 주목받다
인도의 두 번째 전략 핵심 축은 연결성(Connectivity)이다. 인도는 오랫동안 파키스탄을 거치지 않고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 러시아로 진출할 수 있는 대체 물류망 구축을 추진해 왔다. 핵심 거점이 이란 남동부의 차바하르항(Chabahar Port)이다.
차바하르항은 인도가 직접 개발에 참여한 전략 항만으로, 국제남북운송회랑(INSTC·International North-South Transport Corridor)의 출발점 역할을 한다. INSTC는 인도에서 이란, 카스피해, 러시아를 연결하는 복합 물류망으로 수에즈운하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대안 통로로 평가된다.
그동안 미국의 대이란 제재는 사업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긴장 완화와 제재 부담 감소가 현실화되면 차바하르항 투자와 INSTC 개발 역시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인도가 중국의 일대일로(BRI)에 대응할 수 있는 독자적 대륙 물류망을 확보한다는 의미도 갖는다.
▲워싱턴과 테헤란 사이 균형외교
외교적으로 인도는 기존의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 원칙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미국과 안보·기술 협력을 확대하면서도 이란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지 않았다.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이스라엘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인도 정부의 공식 입장 역시 특정 진영 지지보다 대화와 외교, 항행의 자유, 지역 안정성을 강조하는 데 집중돼 있다.
이는 미국·이란·걸프 산유국·이스라엘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라는 인도의 외교적 강점을 보여준다. 어느 한 진영에 완전히 편입되지 않으면서도 모든 진영과 협력할 수 있는 위치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인도양에서 유라시아까지
이번 위기는 인도에 또 다른 교훈도 남겼다. 에너지 수입과 해상 수송로가 특정 지역에 집중될 경우 지정학적 충격에 얼마나 취약한지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도는 전략비축유 확대와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 해군력 증강, 걸프 산유국과의 장기 공급계약 확대에 더욱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
궁극적으로 인도가 노리는 것은 지역 안정 자체보다 그 이후의 질서다. 미국은 안보를, 중국은 경제를 중심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인도는 그 사이에서 안정적 중견국(Middle Power) 역할을 강화하며 서아시아와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전략 허브로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평화 프로세스가 성공적으로 정착된다면 인도는 에너지 안보, 차바하르항과 국제남북운송회랑을 통한 연결성 확대, 전략적 자율성 유지, 지역 영향력 강화라는 네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지오스트라타 중동 담당 이사인 하르짓 싱은 "인도의 목표는 단순히 값싼 원유를 확보하는 데 있지 않다"며 "호르무즈 해협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지정학적 질서 속에서 인도가 필수 연결국가가 되는 것이 장기 전략의 핵심"이라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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