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상상해 본다.
상상하는 예술가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떨까. 당장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버스는 정해진 시간에 도착할 것이고, 공장은 물건을 만들 것이며, 행정은 계획대로 움직일 것이다. 학교도 문을 열고 회사도 돌아갈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는 사회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가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군가의 슬픔에 이름을 붙여주던 시가 사라지고, 낯선 사람의 삶을 이해하게 하던 소설이 사라지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보여주던 영화와 그림이 사라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먼저 상상하는 사람들이 사라진다.
예술가는 종종 현실과 거리가 먼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인류의 변화는 언제나 현실을 넘어서는 상상에서 시작됐다. 하늘을 나는 꿈이 비행기가 됐고, 모든 사람이 평등할 수 있다는 상상이 민주주의가 됐으며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상상이 복지와 인권의 역사를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의 생각과 상상을 빠르게 정리해 주는 인공지능(AI) 역시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대화를 나누는 존재를 꿈꾸지 않았다면 지금의 AI 역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술은 그 상상의 가장 오래된 형태다. 그래서 예술가가 사라진 세상은 작품 없는 세상이 아니다. 가능성이 사라진 세상이다. 예술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숫자나 제도만이 아니었다. 한 편의 소설이 누군가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고, 한 편의 영화가 한 세대의 감정을 대변하며, 한 장의 그림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예술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인 사람은 결국 세상을 움직인다.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은 순간을 상상에 기대어 살아간다. 사랑도, 희망도, 용기도 모두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믿어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상상은 현실의 반대말이 아니다. 현실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내는 힘이다.
나는 어릴 적 공상을 많이 하는 아이였다. 남들보다 느렸고, 무엇 하나 빨리 이뤄내는 재주는 없었지만 늘 머릿속에는 지금과 다른 미래가 있었다. 돌아보면 나를 움직여 온 것은 현실 감각만이 아니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먼저 상상해 보는 힘이었다.
예술가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보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한다. 우리가 예술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반드시 예술가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상상하는 예술가가 사라진 세상. 어쩌면 그것은 문화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미래가 없는 세상일지 모른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예술가와 상상이 정제된 세상은 슬프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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