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홍이는 예쁘다. 오른편으로 돌아눕는다. 금홍이 얼굴이 가물거린다. 왼편으로 눕는다. 금홍이 뺨이 아른거린다. 그대로 누워 있을 수 없다. 성긋성긋 웃어가며 바지를 주워 입는다. 당장 금홍이에게 가야 한다. 바지 주머니에 오만원권 지폐 몇 장 구겨 넣는다. 재킷 안쪽 주머니에 칼집에 낀 칼을 쑤셔 넣는다. 금홍이 손님을 홧김에 찔···
금홍이 집은 좁은 굴다리를 통과해야 한다. 굴이 끝나는 곳에서 두 번째 골목을 돌아 세 번째 판잣집에 금홍이가 산다. 금홍이 집 대문에는 밤마다 홍등이 걸린다. 자정쯤이면 홍등은 한껏 붉어진다. 그 집에서 금홍이는 손님과 밤을 지새운다. 무엇을 하며 밤을 보내는지 알고 싶지 않다. 당연하지 않은 빤한 일로 노닥거리는 것이 분명하다.
“다음번에 나도 밤에 올 텨.”
“안 돼. 손님 와.”
“나도 손님 하면 되잖여.”
“안 된다니까. 정오에 와. 홍등 꺼져 있을 때.”
앙칼진 금홍이 입술이 삐죽인다. 고 앙큼한 입술은 꽉 물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달다. 또 그 귀한 열매. 밤에만 몰래 보고 싶은, 금홍이의 열매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2
깊은 밤 굴속은 환하고 시원하다. 아직 춥지 않은 가을밤, 굴속 시원함은 한기와는 다르다. 옆에 있는 누구와 손을 꽉 잡아도 끈적이지 않을 만큼 청량하다. 금홍이 콧방울이 아른거린다. 웃을 때마다 쏙 찌를 듯, 옴팍 들어간 보조개가 어룽댄다. 얼른 달려가 금홍이를 안고 싶다. 부둥켜안고 문지방에서 벽까지 데구루루 구르고 싶다.
긴 굴다리의 밤을 통과하면 금홍이는 홍등 아래 앉아 있을 게다. 복숭아 같은 살결을 올랑올랑 녹여가며 웃을 게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폐를 만지작거린다. 재킷 안쪽 주머니에 있는 칼로, 혹여 어떤 놈이랑 부둥켜안고 있으면, 그놈 눈동자를 단번에 찌를 테다.
절뚝거리며 굴다리를 뛰듯 걷는다. 홍등 달린 금홍이 방이 떠오른다. 홀로 앉아 나를 기다리는 금홍이를 힘껏 안아본다. 금홍이와 눈을 맞추며 시뻘건 알전구 타는 듯할 그놈을 생각하다, 달릴 때마다 튀어나오는 금홍이 모습이 나에게 달려와 냅다 안기는 거 같다. 신이 난다. 피식피식 웃으며 절뚝이며 달린다.
굴다리는 가도 가도 빛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달려왔건만 굴의 끝은 깜깜하다. 함께 뒹군 금홍이의 옆구리가 자꾸 사라진다. ‘젠장, 가도 가도 밤이구먼. 언제나 끝날 겨. 이 시꺼먼 밤은.’
굴 끝에서 족제비한 검은빛이 반짝거린다. 절뚝거리는 왼쪽 다리가 더 조급해진다. 쉴 새 없이 왼쪽 가슴을 만져본다. 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금홍이에게 달려갈수록 자꾸만 칼을 숨긴 왼쪽 가슴에서 바람이 샌다. 텅 빈 바람이 왼쪽 가슴을 훔쳐 달아나는 듯하다. 금홍이의 속삭임이 왼쪽 가슴에서 빠져나가는 듯하다.
“밤에 이 홍등이 얼마나 먹고 싶은지 알아? 빨간 석류처럼 홍등에서 향이 흘러.”
“뭔 등에서 향이 난다는 겨.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냐. 너는 시방.”
“밤에, 밤에, 밤에. 향이···”
“내는 모르겄다. 밤에 안 와봐서.”
금홍이 말이 굴속에서 메아리친다. 홍등에서 퍼지는 석류 향이 달리는 굴속으로 쏟아질 듯 몰려온다. 굴다리의 밤을 통과하면, 금홍이의 석류를 맛볼 수 있다. 이 밤길의 끝, 홍등을 볼 수 있다. 금홍이와 뒹굴다 말고, 홍등 같은 알알한 석류의 향을 금홍이와 함께 느낄 수 있다. 밤이 끝나 가는지 빛이 가까이 온다. 먼 것 같기도 한 빛이, 달려가며 손을 뻗으면 곧 닿을 듯, 밤길이 끝나간다.
“금홍아, 금홍아.”
마음속으로 애타게 금홍이를 부른다. 대문 열고 홍등에 불을 켤 금홍이를 생각한다. 홍등에 빨간 불이 빛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떨려온다. 그 순간 금홍이가 내 귀에 대고 했던 속삭임이 왼쪽 가슴을 울린다.
“밤에는 오지 마. 밤에, 밤에, 밤에.”
왜 나는 홍등이 환할 때 오지 말라는 것인지, 왜 가면 안 되는지, 이 굴을 빠져나가면 알 수 있으리. 왜 나와 함께 홍등을 켜면 안 되는지. 홍등 빛에 왜 나는 금홍이를 안을 수 없는지.
3
긴 굴다리를 홍등과 금홍이의 손님을 칼로 찔러가며 빠져나온다. 길이 끝나는 굴 밖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어둠이 잠시 머물다 삽시간에 빠져나간 것처럼, 휑하니 시린 바람이 분다.
대문 앞은 서늘하다. 홍등은 꺼져 있다. 대문을 살며시 민다. 방문 앞에는 금홍이 신발뿐이다. 덜컥, 문을 열까? 멈칫한다. 홍등은 꺼져 있다. 불 꺼진 홍등 때문에, 밤에는 한 번도 온 적 없는 금홍이 방을 벌컥 열 수는 없다. 하지만 다가섰다. 방문을 살며시 밀었다.
그런데 이건! 그림자다. 방 한구석 그림자가 매달려 있다. 금홍이의 모습을 한 금홍이의 다리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두 다리가 벽에 붙들려 격렬하게 떨어댄다. 금홍이 다리에 낀 열매가 떨어질 듯 마구 흔들린다. 두 다리 사이를 움켜쥔 울음이 흐느끼기 시작한다. 내게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던 열매가, 엉뚱한 곳에서 발발발 떨고 있다. 홍등을 쏙 빼닮은 그 붉디붉은 열매가.
여성경제신문 양선주 시인·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zoo-mouse@hanmail.net
☞미니픽션=아주 짧은 분량 속에 완결된 서사를 담아낸 초소형 소설을 말한다. '한 뼘 소설', '손바닥 소설(掌篇小說)', '플래시 픽션(Flash Fiction)' 등으로도 불리며 주로 설명은 생략하고 상징이나 묘사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끝맺는다. 짧은 틀 안에 소설적 재미와 철학을 압축해 놓은 '문학의 에스프레소'라고 할 수 있다.
양선주 시인·작가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하며 문단에 데뷔해 시집 <사팔뜨기> 를 출간했다. 건강 문제로 인한 긴 공백기 끝에 2025년 시집 <열렬한 심혈관> , 산문집 <시는 내 곁으로 와 눕고> (공저)를 펴내며 다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소설미학> 에서 동화, <월간문학> 에서 동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문학적 역량을 펼치고 있으며, 동화책과 동시집 발간을 앞두고 있다. 월간문학> 소설미학> 시는> 열렬한> 사팔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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