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이른바 '연어 술파티' 위증 등 혐의 사건 국민참여재판을 사흘 앞둔 지난 5일 국민참여재판이 열릴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204호 대법정이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 / 뉴스1
법원이 그동안 법조계 안팎에서 논란이 분분했던 검찰의 수사·기소 관행에 처음으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검찰의 '쪼개기 기소'가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수원지법 형사11부(송병훈 부장판사)는 20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국민참여재판에서 위증 혐의에 징역 4개월을 선고하면서, 대북 지원 관련 직권남용 등 혐의는 직권으로 공소를 기각했다. 한 피의자의 혐의를 시차를 두고 건건이 나눠 기소하며 압박해 온 수사 방식에 법원이 법리로 제동을 건 것이다.
공소기각은 소송 조건에 흠결이 있거나 절차상 명백한 위법이 있을 때 법원이 사건의 실체적 유무죄를 따지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절차다. 재판부는 검찰이 공범으로 지목된 다른 인물의 재판 과정에서 이 전 부지사의 방어권을 부당하게 제약했다고 보고 공소권 남용을 인정했다.
법원이 이날 배포한 설명자료와 판결 취지를 보면 검찰은 신명섭 전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을 수사하고 기소할 당시 이 전 부지사와의 공모 관계를 입증할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이 전 부지사를 피의자로 정식 인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검찰은 신 전 국장의 공소장에 이 전 부지사를 공범으로 적시해 이 전 부지사가 정식 기소되기도 전에 타인의 재판에서 먼저 유죄 취지의 사법적 판단을 받게 만들었다.
재판부는 이런 수사 방식을 두고 모든 국민은 자신의 형사 사건에서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한 뒤에야 법적 판단을 받아야 한다면서 기소되지 않은 타인의 사건에서 유죄 판단을 받게 유도하는 행위는 헌법이 보장한 피고인의 방어권을 근본적으로 침해한 공소권 남용이라고 못 박았다.
이번 판결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검찰이 피의자를 압박하거나 유리한 재판 구도를 만들기 위해 활용해 온 쪼개기 기소 관행에 정면으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쪼개기 기소는 같은 피고인의 여러 혐의나 하나의 사건에서 파생된 연관 혐의를 한꺼번에 묶어 기소하지 않고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시차를 두며 건건이 나눠 별건으로 재판에 넘기는 방식을 가리킨다. 검찰이 먼저 확보한 혐의로 한 차례 기소한 뒤 수사를 이어가며 새로 인지한 혐의를 다시 별개 사건으로 기소하는 식이어서 별건 수사와 맞물려 쓰이는 경우가 많다.
원칙적으로 한 사람이 저지른 여러 범죄는 한 재판에서 함께 심리해 하나의 형으로 선고하는 것이 피고인에게 유리하다. 그러나 검찰이 혐의를 쪼개 따로 기소하면 피고인은 같은 뿌리의 사건을 두고 여러 재판을 동시에 또는 잇따라 받게 된다. 구속 피고인의 경우 부담은 더 커진다. 형사소송법상 1심 구속 기간은 한 사건당 최장 6개월로 제한돼 있는데, 사건을 나누면 사건마다 구속 기간이 새로 인정돼 사실상 구금 기간이 늘어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검찰은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이 전 부지사를 재판에 넘겼다.
이런 방식을 두고 법조계와 인권 단체 등에서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재판이 길게 이어지면서 피고인의 정신적·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헌법상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된다는 지적, 검찰이 자백을 받아내거나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수단으로 별건 기소를 남용한다는 비판, 유사한 사건이 여러 재판부에 흩어져 판단이 엇갈리면 사법 자원이 낭비되고 사법 신뢰가 떨어진다는 우려 등이 제기됐다. 앞선 사건의 유죄 여부를 지켜본 뒤 결과가 나오자 추가로 기소하는 일종의 '시험소송'이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돼 왔다. 사법부가 이런 병폐를 공소권 남용이라는 법리로 공식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단순한 분리기소만으로 곧장 공소권 남용이 인정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그동안 검사가 여러 범죄를 한꺼번에 기소하지 않고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여러 차례 나눠 분리기소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소추 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왔다. 재판부가 문제 삼은 것은 기소 시점을 나눈 것 자체가 아니라, 기소되지도 않은 사람을 타인의 재판에 공범으로 적시해 사실상 유죄 낙인을 먼저 찍었다는 대목이다.
실제 이번 재판에서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 7명은 대북 지원 사업의 법령 위반 여부 등 실체적 혐의에 대해 만장일치로 무죄 취지의 평결을 내렸다. 행정정책 사업을 형사처벌하는 것이 검찰권의 과잉 행사이자 공소권 남용인지 묻는 항목에서도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배심원단의 실체적 판단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기소 자체의 절차적 위법성을 이유로 직권 공소기각을 선고했다. 재판 시작 전부터 절차적 흠결이 확인되면 쟁점과 관계없이 공소기각 판결을 하겠다고 공언한 대로 옮긴 것이다. 이 전 부지사 측 변호인단은 배심원단의 만장일치 무죄 평결에도 형식적 판단에 밀려 공소기각이 나온 만큼, 항소심에서 실체적 무죄 판결을 받아내겠다며 항소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번 판결은 그간 정치권과 법조계를 뒤흔든 '검사실 연어 술파티' 의혹에 대한 사법부의 첫 실체적 결론이라는 점에서도 파장이 크다. 이 전 부지사는 국회 청문회 등에서 수원지검 영상녹화실에서 대북송금 관련 진술을 조작하기 위해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과 술판을 벌였다고 주장해 왔고, 이는 야권이 수사 검사에 대한 탄핵 소추를 추진하는 결정적 명분이 됐다.
하지만 재판부와 배심원단은 이 주장을 허위로 결론짓고 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배심원 평결에서는 술 반입 여부를 두고 유죄 4명, 무죄 3명으로 치열하게 갈렸으나, 재판부는 검사실 관계자들의 진술이 상호 일관된 반면 이 전 부지사의 진술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수사 검사였던 박상용 인천지검 부부장검사는 선고 직후 페이스북에 "이로서 2년 3개월간 나라를 뒤흔들었던 '연어 술 파티' 주장은 허위로 결론내려졌다"며 "배심원들의 현명한 판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거짓말 탐지기 결과 등을 근거로 기억의 오류일 뿐 고의적 위증이 아니라며 반발을 이어갔다.
이번 재판은 2008년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도입된 이래 주말을 제외하고 열흘 연속으로 매일 밤늦게까지 공방을 벌인 역대 최장기 국민참여재판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지난 8일 시작된 재판은 19일까지 이어졌고, 배심원단은 9시간 30분에 걸친 평의 끝에 결론을 냈다. 재판장은 시민 배심원단의 노고에 깊은 사의를 표했다.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등으로 이미 대법원에서 징역 7년 8개월의 확정판결을 받고 수감 중이며, 남은 대북송금 관련 재판에서도 기소의 정당성을 둘러싼 법리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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