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피 시대'의 주역은 단연 반도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두 걸출한 대형주가 증시를 거침없이 끌어올리고 있다. 두 회사의 시총 합계만 투자자들도 앞다퉈 두 회사 주식을 사는 중이다. 두 회사의 시가총액 합계는 4000조원가량이다.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7399조원)의 절반이 넘는다.
시총 1위는 여전히 삼성전자다. 그런데 SK하이닉스의 추격이 매섭다. 두 회사의 시총 격차는 올해 초 500조원 가량에서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 밑으로 좁혀졌다. 최근 주가 상승률도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압도한다. 시장에선 올 하반기 '진짜 대장주' 자리를 두고 두 기업의 한판승부가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한다. 대한민국 증시 역사상 유례없는 '대장주 교체'가 이뤄질까.
석 달 전만 해도 삼성전자(1186조8870억원)와 SK하이닉스(721조9670억원)의 격차는 464조 9200억원에 달했다. 특히 양사의 시총 격차가 올해 들어 가장 크게 벌어졌던 지난 2월 27일(525조4240억원)과 비교하면 불과 4개월 만에 그 두터웠던 벽이 5분의 1 수준으로 좁혀진 것이다. 이달 들어 좁혀지는 속도는 역대급으로 가파르다.
3개월간 증시 판도를 흔든 핵심 투자 주체는 개인과 기관이었다. 이 기간 외국인은 삼성전자를 1조1821억원 순매도하고 SK하이닉스 역시 4조3688억원 팔았다. 외국인이 던진 물량은 고스란히 국내 자금으로 유입됐다. 삼성전자는 개인이 5조9908억원, 기관이 6조6485억원을 동반 순매수하면서 주가를 떠받쳤다. 특히 SK하이닉스의 경우, 개인이 5조7896억원을 사들인 데 이어 기관이 7조6136억원을 폭풍 매수하며 시총 2000조원 돌파 랠리를 견인했다.
삼성전자는 압도적인 생산능력(Capa) 우위가 무기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2분기 범용 D램의 평균판매단가(ASP) 상승률이 기존 전망(30%)을 크게 상회하는 60%에 달할 것"이라며 "이에 따라 2026년과 2027년 영업이익 전망치도 각각 377조원과 573조원으로 상향 조정됐다"고 분석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고부가가치 AI 메모리 시장을 선점한 덕에 수익성에서 압도적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SK하이닉스의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649% 증가한 69조원, 영업이익률은 77.2%에 달할 것"이라며 "D램(81%)과 낸드(66%) 전반에 걸친 수요 가속에 힘입어 2026년 연간 영업이익 280조2950억원, 2027년 454조2250억원을 달성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흥미로운 점은 두 기업이 목표주가에 동시에 도달할 경우의 시총 변화다. 현재 각사의 상장주식수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삼성전자가 목표가 57만원에 도달할 때 시가총액은 약 3332조원(우선주 제외)이 된다. 반면 SK하이닉스가 380만원 고지를 밟으면 시가총액은 약 2766조원이 된다. 두 회사가 동시에 목표가를 달성하면 현재 99조원대인 시총 격차는 다시 566조원 수준으로 늘어나며 삼성전자가 1위 자리를 굳히게 된다.
결국 장중 시총 역전 여부는 주가 상승의 속도와 시간차에 달렸다. 삼성전자가 HBM 경쟁력 회복을 바탕으로 2027년 점유율 1위 목표를 향하는 과정에서 SK하이닉스가 빅테크의 물량 확보 경쟁과 HBM 가격 급등 모멘텀을 받아 먼저 380만원 고지에 바짝 다가설지가 관건이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두 기업 모두 강력한 이익 성장 사이클에 진입했지만 주가 탄력성에 따라 단기적인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다"며 "현재 시총 격차가 100조원 미만으로 좁혀진 만큼 향후 수급 쏠림에 따라 장중 한때라도 코스피 시총 1위 자리가 뒤바뀌는 역사적 사건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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