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비대면진료가 제도권 편입을 앞두고 두 갈래 시험대에 올랐다. 민간 플랫폼은 이용자와 매출을 키우며 AI 건강관리와 의료 마이데이터로 사업을 넓히고 있지만, 국회는 의약품 판매·판촉과 도매상 연계를 차단하는 규제 장치를 다시 꺼내들었다. 동시에 정부와 국회입법조사처는 희귀질환자, 섬 지역 주민 등 의료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의료 수단으로 비대면진료 활용 확대를 제안. 플랫폼을 산업으로 키울 것인지, 공공의료 보완 수단으로 관리할 것인지, 그 경계 설정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쟁점은 플랫폼 기업의 성장 자체보다 커진 영향력에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비대면진료 플랫폼은 이미 단순 예약·진료 연결 서비스를 넘어섰다. ‘나만의닥터’를 운영하는 메라키플레이스는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15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약 6배 성장한 수치다. 누적 가입자는 300만명, 월간 활성 이용자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광고와 유통 등 신규 사업 성장에 더해 의료 마이데이터, AI 홈닥터 등 데이터 기반 건강관리 서비스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 같은 확장세는 시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규제 필요성 논의를 같이 키우고 있다. 플랫폼이 환자와 의료기관, 약국을 연결하는 중개자에 머물 때와 달리, 이용자 데이터와 유통망, 광고 사업까지 결합할 경우 의료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약품은 일반 상품과 달리 처방과 조제, 복약 관리가 연결되는 영역이다. 플랫폼이 특정 의약품이나 유통업체와 이해관계를 맺을 경우 중개 서비스의 중립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국회에서는 이런 문제를 겨냥한 의료법 개정안이 다시 발의됐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비대면진료 중개업자의 의약품 판매와 판촉영업, 특수관계 의약품 도매상을 통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올해 12월 시행 예정인 의료법 개정안에는 의약품 오남용 조장 금지와 특정 의료기관·약국 선택 유도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 개정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플랫폼의 의약품 유통시장 개입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른바 ‘닥터나우 방지법’은 이미 지난해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본회의 상정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해당사자와 정부부처 간 이견이 남아 있어서다. 산업계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만으로 사업을 막는 것은 과도한 사전 규제라며 반발해왔다. 중소벤처기업부도 원천차단보다 사후 제재가 적절하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처방·조제와 의약품 유통을 분리해 이해충돌을 막는 것이 핵심이라는 입장이다.
반대로 공공의료 영역에서는 비대면 방식의 활용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보건복지부는 가정 내 돌봄이 필요한 희귀질환자를 대상으로 비대면 의료제품 구매 지원 서비스를 확대했다. 지원 대상은 기존 5개 질환, 15종 의료제품에서 11개 질환, 58종 의료제품으로 늘었다. 병원 방문이 어렵거나 지속적인 의료제품 관리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비대면 기반 서비스가 접근성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섬 지역 의료에서도 같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병원선을 지역보건의료기관으로 법제화하고 건강보험 적용, 비대면진료 활용, 지역보건의료정보시스템 연계 등을 포함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2024년 말 기준 전국 유인섬 480개 가운데 보건소·보건지소·보건진료소 등 기본 의료시설이 없는 섬은 288개에 달한다. 병원선은 이들 지역 주민에게 내과·치과·한의과 진료와 건강관리, 예방접종 등을 제공하는 사실상 유일한 의료안전망이다.
병원선의 법적 지위 공백은 비대면진료 활용에도 영향을 준다. 병원선은 실제 의료행위를 수행하면서도 현행법상 지역보건의료기관이나 의료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올해 12월 비대면진료가 제도화되더라도 병원선이 의료기관에 해당하지 않으면 기상 악화나 자연재해로 운항이 중단됐을 때 만성질환자의 약 처방과 건강관리 공백이 생길 수 있다. 비대면진료가 단순 편의 서비스가 아니라 의료공백을 줄이는 공공 인프라로 쓰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대면진료를 둘러싼 논의는 산업 성장과 규제 완화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민간 플랫폼에는 의약품 유통과 광고, 데이터 활용 과정에서 중립성과 책임 기준이 요구되고 있다. 반면 희귀질환자, 섬 주민, 의료취약지 환자에게는 비대면진료가 기존 의료체계의 빈틈을 메울 수 있는 현실적 수단으로 거론된다. 같은 비대면진료라도 민간 플랫폼의 사업 확장과 공공의료 보완 기능을 나눠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제도권 편입 이후 비대면진료 시장의 재편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의 성장을 막을 것이 아니라 어떤 영역에서는 활용하고 어떤 영역에서는 이해충돌을 차단할지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의약품 유통 중립성, 데이터 활용 책임, 의료취약계층 접근성이라는 세 가지 기준이 향후 시장 질서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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