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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성기노 기자】이재명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유럽 순방을 마치고 18일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했습니다. 공항에서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청와대 강훈식 비서실장과 홍익표 정무수석 등 주요 인사들이 이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이날 초미의 관심사는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의 ‘조우’였습니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가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공개적인 충돌을 벌인 뒤 양측이 처음 마주 보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 “정 대표가 이 대통령과 맞짱을 뜬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양측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에 이날 정 대표가 어떤 표정과 태도를 보일지 뜨거운 관심을 모았습니다.
역시 정 대표는 바짝 엎드렸습니다. 정 대표는 90도로 허리를 굽혀 이 대통령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수고했습니다”라는 한 마디를 남긴 채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지난 4월 귀국 때는 이 대통령이 환영나온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잠시 눈인사도 나누는 등 애정을 드러냈지만 이날은 의도적으로 빠르게 지나가 버렸습니다. 정 대표가 깊이 고개를 숙이는 사이 이 대통령은 ‘왜 이러나’ 하는 표정으로 인사가 끝나기를 잠시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날의 짧은 조우는 많은 정치적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딱딱한 의례를 통해 자신의 불편한 심기와 정 대표에 대한 불만을 여지없이 드러냈습니다. 이는 향후 양측의 갈등 봉합은 물론 정 대표의 정치적 미래마저도 어둡게 하는 권력자의 작심 퍼포먼스였습니다.
그런데 정청래 대표의 90도 폴더 인사는 뭔가 기시감이 느껴집니다. 2024년 1월 23일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알현’하기 위해 눈밭에서 발발 떨며 30여분을 기다려야 했던 장면과 묘하게 오버랩됩니다.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은 맹추위와 눈발 속에서 권력의 가장 잔인한 속살이 드러난 무대였습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의혹 등의 논란으로 대통령실의 거센 사퇴 압박을 받던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눈이 내리는 현장에서 30분 먼저 서서 윤석열 대통령을 기다렸습니다.
윤 대통령이 다가오자 한 위원장은 허리를 90도 직각으로 꺾어 깍듯이 인사했습니다. 평소 고개를 거의 숙이지 않던 한 위원장은 이날 작심한 듯 윤 대통령에게 바짝 엎드렸습니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의 어깨를 툭 쳤고 두 사람은 전용열차를 타고 함께 상경하며 갈등을 봉합하는 듯한 연출을 펼쳤습니다.
당시 언론은 이를 여권발 권력 충돌의 극적인 봉합으로 ‘미화’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고개를 숙여 당장 닥친 파국은 면했지만 한 위원장은 자신의 마이웨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총선과 전당대회를 거치며 결국 윤 대통령을 배신하고 돌아서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그렇다면 정청래 대표의 90도 폴더 인사의 결론은 과연 어떨까요. 한동훈은 그날 이후에도 계속 윤 대통령에게 고개를 쳐들었고 결국은 보수정당 전체를 비상계엄과 탄핵의 막장 수렁 속으로 떨어지게 한 결정적인 장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청래 대표의 90도 인사는 2년 전 한동훈의 서천시장 폴더 인사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대통령은 여당 대표를 쫓아내려 했지만 여당 대표는 끝까지 저항하고 있습니다. 정 대표는 일단 90도 인사를 통해 여당 대표가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는 정치적 비판과 부담에서 벗어나려 했습니다.
하지만 여당 대표의 의례적인 90도 인사에 최고 권력자의 그간 분노와 악감정이 스르르 녹아내릴까요. 권력은 생각보다 훨씬 냉정합니다. 한 번 균열이 생긴 신뢰는 쉽게 복원되지 않고 권력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도전하는 존재를 경계합니다. 더욱이 권력은 둘로 나눌 수도, 오래 공유할 수도 없는 법입니다.
이 대통령이 90도로 인사했다고 해서 정청래 대표에게 자신의 권력 일부를 뚝 떼줄 리도 없습니다. 오히려 정 대표가 이 대통령을 자신의 정치적 퍼포먼스에 이용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고 이는 이 대통령을 더욱 자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동훈은 지난 2024년 1월 당시 90도 인사 자리에서 “대통령님에 대한 존중과 신뢰의 마음이 있고, 그게 전혀 변함이 없다”고 공손하게 말했지만 갈등의 뇌관이었던 김건희 여사 리스크에 관한 입장만큼은 굽히지 않았습니다. “국민 눈높이로 판단할 문제”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고 대통령실 일각에서 제기된 김경율 비대위원 사퇴 요구에도 “그런 요구를 받은 적 없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90도 인사의 각도는 깊었지만 정치적 거리 조절은 오히려 치밀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정청래 대표 또한 깊이 고개를 숙였지만 그 뒤 다른 의원들과 인사하면서는 미묘한 발언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힘들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흔들리면서 젖으면서 사는 게 인생 아니겠습니까”라며 자신의 심경을 피력했습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연일 쏟아지는 거취 압박에도 불구하고 연임 도전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한동훈이나 정청래나 여권의 2인자이지만 대통령에 맞서다 권력자의 철퇴를 맞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90도 인사가 공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쇼’였고 두 사람 모두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이 아니었던 것도 공통점입니다. 이것은 두 사람의 개인적 성향이 비슷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민낯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복종과 서열을 요구합니다. 특히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대통령은 자신과 권력을 공유할 수 있는 2인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정치적 야망을 가진 2인자는 영원히 대통령의 그림자로만 남을 수도 없습니다.
겉으로는 충성과 예의를 표시하지만 속으로는 각자의 생존과 미래를 계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그래서 권력 핵심부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대개 정책이나 노선의 충돌로 포장되지만 결국은 누가 권력을 독점할 것인가를 둘러싼 투쟁으로 귀결됩니다.
90도 인사는 갈등의 종결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는 휴전일 뿐입니다. 윤석열과 한동훈이 그랬고 지금 이재명과 정청래도 비슷한 궤적을 밟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청래 대표는 왜 이렇게까지 버티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정 대표에게 이번 전당대회는 당대표 선거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생존이 걸린 전쟁에 가깝습니다. 지금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하는 순간 그는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쓴 채 이재명 대통령에게 밀려 퇴장한 정치인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큽니다. 차라리 전당대회에서 패배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더욱이 정 대표 주변에서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자신들에게만 돌리는 것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오히려 통합과 중도확장을 내세운 친명 주류의 전략이 핵심 지지층을 이완시키고 보수 결집을 불러온 것 아니냐는 반론도 적지 않습니다. 정 대표 입장에서는 전당대회 자체가 자신을 향한 책임론에 맞설 수 있는 마지막 정치 무대인 셈입니다.
여기에 친문 세력과 강성 권리당원들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이번 전당대회를 단순한 당대표 선거가 아니라 민주당 권력구조를 다시 결정하는 분수령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청래 개인의 후퇴는 곧 이들 친문 정치세력 전체의 후퇴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결국 이번 싸움은 표면적으로는 정청래 대 김민석의 경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재명 대통령의 당 장악력과 구주류 세력의 생존이 충돌하는 권력투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민주당은 대통령 중심의 일극 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당내 견제 세력이 청와대와 대통령을 계속 흔들어내는 불안정한 구조가 만성화될 수도 있습니다.
정청래 대표의 90도 인사는 항복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권력자를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는 과공비례(過恭非禮)였습니다. 정치적 백기투항이 아니라 일종의 선전포고였고 그것을 간파한 이 대통령은 ‘(그 동안 대표직 수행하느라) 수고했다’는 마지막 멘트를 날린 것입니다.
윤석열과 한동훈의 갈등이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던 것처럼 이재명과 정청래의 갈등 역시 어두운 결말이 어른거립니다. 자신의 몸을 90도로 꺾는다고 해서 권력의지도 그렇게 꺾이는 게 아닙니다. 그것이 권력이고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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