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가 글로벌 스타트업 중심지 도약을 위한 대규모 투자와 국제 협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공지능(AI), 로봇, 기후테크, 딥테크 분야를 축으로 창업 생태계를 재편하는 동시에 해외 창업가와 투자자 유치에도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도쿄도는 최근 '스타트업 전략 2.0'을 전면에 내세우며 세계 주요 혁신 허브와의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정책의 핵심은 글로벌 확장과 개방형 혁신이다. 스타트업과 대기업, 대학, 투자기관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성장 속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코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도쿄 혁신기지(TIB)와 SusHi Tech Tokyo를 중심으로 스타트업과 생태계 참여자들이 연결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글로벌 성장과 혁신 창출을 촉진하는 전략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의 대표 스타트업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SusHi Tech Tokyo는 올해 750개 이상의 스타트업과 6만 명의 참가자를 끌어모으며 국제 행사로서 존재감을 키웠다. 행사 기간 동안 1만 건 이상의 비즈니스 미팅이 이뤄진 것으로 집계됐다.
◇ 3년 만에 회원 3배 늘어난 TIB…도쿄 혁신 플랫폼 급성장
생태계의 연결 허브 역할을 맡고 있는 도쿄 혁신기지(TIB)의 성장세도 눈에 띈다.
2023년 출범 당시 약 2만3000명이었던 회원 수는 현재 6만7000명을 넘어섰다. 연간 행사 개최 건수는 480건에서 1400건 이상으로 늘었고, 누적 방문객도 10만 명 수준에서 33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도쿄도는 TIB CATAPULT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 연구성과와 대기업 수요, 벤처캐피털 자금을 연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기술 개발 단계에 머물던 연구 기반 스타트업을 글로벌 시장 진출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다.
특히 해외 진출 지원에 상당한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 북미와 유럽, 아시아 주요 도시와의 네트워크를 확대하면서 일본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통로를 넓히고 있다. 해외 도시와 일본 스타트업을 직접 연결하는 매칭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 12억6000만달러 펀드 조성…민관 투자 확대
자금 공급 측면에서도 대형 프로젝트가 잇따르고 있다. 민관 협력 방식으로 운영되는 'SusHi Tech Global Funds'는 약 12억6000만달러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며 글로벌 성장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민간 투자기관들도 일본 시장에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도쿄 기반 투자사 Jolt Capital은 11억달러 규모 펀드를 조성했으며, 미국의 Alumni Ventures는 일본 스타트업 투자를 목표로 1억달러 규모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도쿄도의 스타트업 관련 예산도 증가했다. 2024년 약 3억2500만달러였던 예산은 2026년 4억4800만달러로 확대됐다.
일본 정부 역시 창업 친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2025년 국가 성장전략위원회를 출범시켜 17개 전략 산업 분야의 민관 투자 협력을 추진하고 있으며, 외국인 창업자의 체류 기간을 최대 2년까지 허용하는 창업 비자 프로그램도 전국으로 확대했다.
◇ AI·로봇 분야 강세…사카나AI가 상징
도쿄가 가장 강한 경쟁력을 보이는 분야는 AI와 로봇 산업이다. 도쿄는 AI를 장기 도시 비전인 '도쿄 2050' 실현의 핵심 기술로 규정하고 관련 산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차세대 모빌리티와 로봇 산업 클러스터 구축도 병행 중이다.
대표 사례로 꼽히는 AI 스타트업 사카나AI는 2025년 1억2700만달러 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기업가치 26억5000만달러를 인정받았다. 일본 비상장 기술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기업가치 평가를 받은 사례 중 하나다.
로봇 산업 경쟁력도 견고하다. 일본은 산업용 로봇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 2위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FANUC를 비롯한 글로벌 제조 기업들이 관련 생태계를 뒷받침하고 있다.
◇ 벤처투자는 아시아 최상위권…생태계 성장률은 기대 이하
수치만 놓고 보면 도쿄는 이미 아시아 대표 스타트업 도시 가운데 하나다. 최근 집계 기준 생태계 가치는 590억달러 규모로 글로벌 평균(250억달러)과 아시아 지역 평균(240억달러)을 크게 웃돈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누적 벤처투자 규모는 240억달러에 달했다. 같은 기간 초기 투자 규모는 43억달러, 엑시트 규모는 260억달러를 기록했다.
유니콘 기업은 8개로 집계됐다. 최근 5년간 엑시트 건수는 총 760건에 달했으며, 평균 회수 기간은 9.6년으로 글로벌 평균보다 짧았다.
다만 성장성 지표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인다. 생태계 가치 증가율은 최근 기간 기준 23%에 머물렀다. 글로벌 평균 성장률 149%, 아시아 평균 66%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AI 네이티브 스타트업 생태계 가치 증가율 역시 16%로 글로벌 평균 161%에 크게 못 미쳤다.
시장 규모와 투자 여력은 충분하지만, 초고속 성장 기업 배출 측면에서는 미국과 중국, 일부 동남아 시장에 비해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 엔터테인먼트·기후테크까지 확장…도쿄식 혁신 모델 구축
도쿄는 기술 중심 전략에 문화 콘텐츠를 결합하는 방식도 시도하고 있다. SusHi Tech Tokyo는 엔터테인먼트, 예술, 음악, 스포츠를 혁신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며 일본 고유의 문화 경쟁력을 스타트업 성장 동력으로 연결하고 있다. 소니그룹과 대일본인쇄(DNP)가 참여하는 XR 프로젝트도 대표 사례로 꼽힌다.
기후위기 대응 기술과 도시 회복력 분야 역시 핵심 육성 영역이다. 딥테크와 기후테크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민관 자본을 집중 투입하며 도시 문제 해결형 기술 개발을 장려하고 있다.
여성 창업가 육성 프로그램과 국제 교육 프로젝트도 확대하고 있다. 도쿄도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창업가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도록 TIB 2.0 기반 커뮤니티 조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도쿄의 스타트업 전략은 단순한 창업 지원을 넘어 글로벌 자본, 인재, 기술을 한곳에 모으는 플랫폼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규모 투자와 공격적인 국제화 정책은 분명 강점으로 평가된다. 반면 생태계 성장률 둔화와 상대적으로 작은 시리즈A 투자 규모는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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