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빚 때문에 상속 포기한 아버지의 회사가 34년 만에 거액의 토지를 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 AI 생성 이미지
1990년 아버지가 남긴 빚더미 회사. 가족들은 모두 상속을 포기했다. 34년 후, 서울 방배동 재개발 소식과 함께 회사가 거액의 토지를 소유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지분을 증명할 주주명부는 온데간데 없는 상황이다.
법조계에서는 '상속을 포기하지 않은 손주들'에게 기회가 있을 수 있다며, 잊혀진 재산을 되찾기 위한 복잡한 법적 퍼즐 풀이가 시작됐다고 분석한다.
'빚더미'인 줄 알았는데…34년 만에 나타난 '유령의 땅'
모든 것은 한 통의 상담 문의에서 시작됐다. 1990년 아버지를 여읜 A씨. 아버지가 남긴 회사는 이미 1978년 청산된 상태였고, 채무가 많아 A씨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모두 상속을 포기했다.
그렇게 잊혀진 줄 알았던 아버지의 회사가 최근 A씨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근처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서울의 노른자위 땅인 방배동의 상당한 토지가 바로 그 '죽은 회사'의 소유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아버지는 회사의 대주주였지만, 세월 속에 주주명부는 사라졌다. A씨는 "주주명부가 없어 청산인을 선임하더라도, 위 회사의 재산을 저의 자녀들에게 귀속시킬 방법이 없습니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상속 포기 안 한 손주들'…법적 상속인 지위 인정될까
법률 전문가들은 이 복잡한 사안의 첫 번째 열쇠로 '상속을 포기하지 않은 손주들'을 지목한다.
A씨와 형제들이 상속을 포기했을 당시, A씨의 자녀, 즉 망인의 손주들은 상속을 포기하지 않았다. 법무법인 KB 김태안 변호사는 "핵심은 회사 토지 자체를 바로 상속받는 문제가 아니라, 아버님의 주식 또는 잔여재산분배청구권을 누가 승계했는지와 그 지위를 어떻게 입증하느냐"라고 지적했다.
법률사무소 평정 이시완 변호사 역시 "의뢰인님과 형제분들이 상속을 포기하셨더라도 자녀분들이 포기하지 않으셨다면, 아버님의 주식은 자녀분들에게 적법하게 상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민법상 선순위 상속인이 모두 상속을 포기하면 그 상속분은 다음 순위 상속인에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아버지의 주식은 손주들에게 '본위 상속'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최대 난관 '사라진 주주명부', 어떻게 뚫나?
손주들의 상속권리가 인정된다 해도 가장 큰 산이 남는다. 바로 아버지의 주주 지위를 증명할 '주주명부'의 부재다.
전문가들은 주주명부가 없더라도 포기할 단계는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제로변호사 홍윤석 변호사는 "과거 세무서 과세 자료, 구 법인 등기부등본, 국가기록원 문서 등 간접 증거들을 최대한 확보하여 주주지위확인소송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입증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회사가 청산된 것으로 간주되었더라도 토지라는 잔여 재산이 남아 있는 한, 법인은 청산 목적 범위 내에서 존속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법원에 청산인 선임을 청구하고, 청산 절차를 통해 남는 재산을 주주인 손주들에게 분배받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법무법인 도모 고준용 변호사는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인 경우, 보상금 수령 주체가 불분명해지면 권리 행사에 차질이 생기므로 신속히 청산인 선임 절차에 착수하여 실질적인 지배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속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숨은 빚'과 '시간'과의 싸움…섣부른 포기는 금물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들은 몇 가지 중요한 위험 요소를 경고했다. 법무법인(유한) 엘케이비평산 정진열 변호사는 "자녀분들은 포기하지 않았으므로, 법인의 채무가 여전히 존재하는 경우 자녀분들이 주주로서 이를 부담하게 될 위험이 있다"며, 재산 가치와 숨겨진 채무 규모를 반드시 비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법무법인 우선 조상우 변호사는 1978년에는 휴면회사를 청산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회사가 실제 청산에 들어간 것인지, 사실상 폐업에 그친 것인지부터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수십 년간 방치된 만큼 제3자의 권리 주장이나 국가 귀속 가능성 등 변수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법무법인 쉴드 이진훈 변호사는 "법인 명의 토지에 구 채권자나 국가가 권리를 주장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청산 절차 개시 전 토지등기부 및 압류·가처분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며 섣부른 포기 대신 치밀한 전략 수립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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