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더봄] 장미는 왜 가시를 품고 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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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더봄] 장미는 왜 가시를 품고 피는가

여성경제신문 2026-06-19 10:00:00 신고

장미만 한 꽃이 있을까. 화려하고 아름답고 누구에게 건네도 환영받는 꽃. 사랑의 상징이자 가장 유명한 꽃 축제의 주인공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장미를 만난다. 아파트 담벼락에 핀 장미에 감동한다면 순수한 감성의 소유자일 것이다. /김성주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장미를 만난다. 아파트 담벼락에 핀 장미에 감동한다면 순수한 감성의 소유자일 것이다. /김성주

얼마 전 아파트 단지 담벼락에 핀 빨간 장미꽃을 보고는 한참을 서 있었다. 이래 보고 저래 보고 사진을 찍어 보고 향을 맡아 보고. 그리고 감탄하고···. 중년 아저씨가 장미를 보고 감동을 받는 모습에 함께 한 아들이 한마디했다.

“아빠. 많이 힘들어?”
“아니다. 습관이야.” 

테마파크 근무 시절 종종 출근하면 곧장 로즈가든부터 들르곤 했다. 한적한 정원에서 장미를 즐기고 싶어서였다. 야간 개장이 끝날 무렵 다시 한참을 장미 덩굴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침 장미 향은 은은하고, 밤 장미 향은 활달했다. 정작 더 재미있는 건 눈앞의 연인들이었다. 장미를 보고, 서로 얼굴을 보고, 또 헤벌쭉. 그 웃음들을 아직 잊지 못한다. 전성기만은 못해도 장미축제는 여전히 많은 이의 첫사랑과 첫 키스를 품고 있다.

그런데 장미는 위험하다. 고운 꽃잎 아래 줄기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 있다. 예쁘다고 덥석 만지면 찔린다.

화려한 꽃잎 아래 날카로운 가시를 숨긴 장미 /김성주
화려한 꽃잎 아래 날카로운 가시를 숨긴 장미 /김성주

이 가시에는 비밀이 있다. 들장미의 가시는 하나같이 아래를 향해 자란다. 등산화 밑창의 아이젠처럼 옆에 선 다른 나무를 딛고 위로 기어오르기 위해서다. 숲 꼭대기의 햇빛을 차지하려는 장치다. 가시는 남을 찌르는 무기이자 제가 빛으로 오르는 사다리였던 셈이다.

우리 지방의 풍경에도 가시가 돋아 있다. 텅 빈 골목, 문 닫은 학교, 폐허가 된 시장, 승객이 없어 문 닫는 버스터미널. 내 일은 일주일에 사흘을 지방으로 떠나는 출장인데 그 출장지 대부분이 소멸 위기 지역이다. 그러니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문제는 이 가시를 상처로만 볼지 다시 오를 발판으로 쓸지다.

지금의 지방은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보다 장밋빛 과거를 추억하는 데 익숙하다. "예전엔 역 앞에 발 디딜 틈이 없었지." "그땐 장사 참 잘됐는데." 아련하지만 추억은 생존 전략이 될 수 없다. 과거의 훈장에 매달리는 순간 지역의 시계는 멈춘다. 지방의 진짜 위기는 미래가 안 보이는 게 아니다. 과거에 단단히 갇혀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은 이걸 경로의존성이라 부른다. 한 번 든 길이 구조가 무너진 뒤에도 계속 발목을 잡는 현상이다. 탄광으로 먹고살던 곳은 탄광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항구로 번성한 도시는 항구의 영광만 되뇐다. 성공의 기억은 분명 자산이지만 새 길을 막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한 방향으로 굳은 줄기가 다른 쪽으로 뻗기 어려운 것과 같다.

장미는 그 함정을 넘어섰다. 어떻게 넘었을까. 비결은 끝없는 변신이다. 원래 들장미는 꽃잎 다섯 장짜리 소박한 꽃이었다. 꿀도 없어서 꽃가루를 잔뜩 내어 곤충을 꾀었다. 그러다 돌연변이가 일어났다. 씨를 만드는 수술이 꽃잎으로 변하면서 겹겹이 화려한 꽃이 태어났다.

대신 스스로 씨 맺는 힘을 잃었다. 그 약점을 메운 게 사람의 꺾꽂이와 육종이었다. 19세기 헨리 베넷은 우량 소를 교배하던 방식을 장미에 들여와 본격적인 인공 교배를 시작했다. 그렇게 장미는 멈추지 않고 제 모습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여기에 뼈아픈 교훈이 있다. 화려함 하나에 모든 걸 몰아주면 정작 혼자 살아남는 힘을 잃는다. 한 가지에 올인한 꽃은 사람 손이 없으면 대를 잇지 못한다.

지역 경제도 똑같다. 한 곳에 전부를 거는 건 위험하다. 그래서 첫 번째로 필요한 게 포트폴리오 이론이다. 노벨상을 받은 마코위츠는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자산을 섞으면 같은 수익에도 위험이 줄어든다는 걸 증명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오래된 격언을 수학으로 풀어낸 것이다.

우리 경제를 보자. 2025년 반도체 수출은 1734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찍었고, 전체 수출의 약 4분의 1(24.4%)을 차지했다. 자랑스러운 숫자지만 같은 통계가 '반도체 쏠림'을 경고했다. 비중은 오히려 더 커졌다. 한 품목에 매달릴수록 그 하나가 휘청이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

분산에는 품목만 있는 게 아니다. 시장을 나누는 길도 있다. 2025년 한국은 관세와 갈등 속에 미국·중국 수출 비중이 동시에 줄자 EU·베트남·대만 등으로 판로를 넓혔다. 품목 쏠림은 못 줄였어도 시장이라도 분산해 충격을 흩뜨린 것이다. 물론 분산이 '아무거나 많이'는 아니다.

진화 경제 지리학자 프랑컨(K. Frenken)은 이를 관련 다양성이라 불렀다. 동떨어진 산업을 마구 벌이기보다 가진 뿌리에서 가지를 쳐 나가는 지역이 강하다. 사과 산지라면 사과주스 하나로 끝낼 게 아니라 사과식초·사과 발효·사과 체험·사과 경관까지 가지를 뻗는 식이다.

그런데 분산만으로는 부족하다. 위기는 결국 닥치고 진짜 실력은 그 충격을 견디고 되돌아오는 힘에서 갈린다. 이걸 다루는 게 복원력 경제학이다. 다시 장미를 보라. 진딧물 떼의 공격을 받으면 장미는 평소와 전혀 다른 향을 뿜는다. 진딧물의 천적인 무당벌레를 불러들이는 '구조 요청' 신호다. 혼자 못 이길 적은 동맹을 불러 함께 막는 것이다.

지역의 복원력도 여기서 나온다. 소멸의 진딧물 앞에서 홀로 버티지 말고 신호를 보내야 한다. 협동조합으로 힘을 모으고, 관계 인구와 생활 인구를 부르고, 이웃 지자체와 손잡는 일. 그렇게 엮인 그물망이 촘촘할수록 충격을 받아도 덜 무너지고 더 빨리 일어선다.

복원력에도 두 얼굴이 있다. 하나는 무너진 뒤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새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힘이다. 생태학자 홀링(C. S. Holling)이 말한 적응 순환은 후자를 가리킨다. 모든 생태계는 성장하고, 굳고, 무너지고, 다시 태어나는 순환을 반복한다.

무서운 건 무너짐이 아니라 '굳음'이다. 잘나가던 구조가 너무 단단해지면 작은 충격에도 주저앉는다. 앞서 말한 경로의존성이 바로 이 굳음의 단계다. 그러니 핵심은 옛 모습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무너진 자리에서 새 꽃을 피우는 데 있다. 산불이 숲의 약이 되고, 정원사가 묵은 줄기를 쳐내야 새 꽃이 피는 이치다.

정리하면 이렇다. 경로의존성은 우리가 어디에 갇혀 있는지 진단하고, 포트폴리오 이론은 위험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으라 하고, 복원력 경제학은 충격을 그물망으로 견디라 하고, 적응 순환은 무너진 뒤 새 품종으로 다시 피어나라 한다.

지방 소멸이라는 큰 파도를 넘는 길은 화려했던 옛 장미를 박제해 액자에 거는 게 아니다. 가시를 발판 삼아 오르고, 위험을 나눠 담고, 그물망으로 버티며, 낡은 줄기를 잘라 새 품종을 심는 일이다. 지역 경제는 한 송이 장미가 아니라 여러 품종이 어우러진 정원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미난 역발상 하나. 우리는 인간이 장미를 길들였다고 믿는다. 그런데 거꾸로 볼 수도 있다. 장미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인간을 홀려, 제 번식과 생존을 위해 사람을 부려 온 것인지도 모른다. 지방도 그렇다. 사람을 기다리기만 할 게 아니라, 제 매력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꽃이 되어야 한다.

식용 장미 꽃잎을 올린 치킨. 나는 상추 대신, 깻잎 대신 장미를 치킨과 먹고 삼겹살에도 싸 먹는다. 이게 묘하게 잘 어울린다. /김성주
식용 장미 꽃잎을 올린 치킨. 나는 상추 대신, 깻잎 대신 장미를 치킨과 먹고 삼겹살에도 싸 먹는다. 이게 묘하게 잘 어울린다. /김성주

끝으로 장미를 즐기는 신박한 방법 하나를 소개한다. 나는 삼겹살을 먹을 때 가끔 장미꽃에 싸 먹는다. 상추도 깻잎도 아닌 장미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식용 장미가 있으니까. 진딧물이 꼬여 농약을 치는 게 장미지만, 재배 기술이 받쳐주면 유기농도 된다.

꽃잎을 따서 샐러드로 즐긴다. 나는 한국 사람이니 쌈을 싼다. 이게 묘하게 어울린다. 장미 비빔밥도 괜찮고 치킨과 같이 먹어도 좋다. 춘천 강촌의 장미농장 로즈랑스에서 구할 수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한양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관광과 엔터테인먼트를 전공했다. 삼성에버랜드에서 오랫동안 '환상의 나라'를 설계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재는 슬로우빌리지 대표이자 컨설턴트로 변신해 농촌에 행복의 마법을 부리는 중이다. 한국수달보호협회 수도권서부지회장으로서 생태 보호에 앞장서고 있으며, 한국사회적농업협회 부회장을 맡아 치유농업과 6차산업을 이끌고 있다. 사람과 생명이 함께 웃고, 모든 이가 즐거운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쾌한 사명으로 삼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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