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입장에서도 관심사는 명확하다. 튠랩 참여가 실제 신약개발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기술수출이나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바이오업계에서는 당장 매출 증가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연구개발 효율 개선과 후보물질 가치 제고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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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AI 플랫폼 보유한 퍼스트바이오·아리바이오, 후보물질 검증 및 개발 효율화 이점
튠랩이란 릴리가 자체 연구개발 과정에서 쌓아온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축한 연합형(Federated) AI·머신러닝(ML) 플랫폼을 말한다.
일반적인 AI 신약개발 플랫폼이 공개 데이터나 특정 기업 데이터 중심으로 학습되는 것과 달리 릴리가 수십 년간 축적한 화합물·약리·독성·약물동태 데이터를 토대로 후보물질 특성을 예측한다. 튠랩은 흡수·분포·대사·배설·독성(ADMET)와 안전성, 약물동태(PK) 예측에 강점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약개발에서 후보물질이 임상 진입 전 탈락하는 주된 이유는 효능 부족보다 독성이나 약물동태 문제인 경우가 많다. 결국 튠랩의 가치는 새로운 후보물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약이 될 가능성이 높은 물질을 골라내는 능력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다른 특징으로 연합학습 구조가 꼽힌다. 참여 기업은 자사 화합물 구조와 활성 데이터를 릴리나 다른 기업에 공개하지 않고 독립된 환경에서 모델을 활용할 수 있다. 데이터 보안을 유지하면서 글로벌 빅파마 수준의 AI 예측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다.
퍼스트바이오는 이번 튠랩 참여를 글로벌 AI 협력 전략의 연장선으로 설명한다. 2016년 설립 이후 의약화학과 AI를 결합한 신약개발 체계를 꾸준히 고도화해왔다. 네이버클라우드와 바이오 빅데이터 분석·문서 인텔리전스 기술을 공동 연구했고, 다쏘시스템(Dassault Systèmes)의 가상 트윈(Virtual Twin) 기술을 도입해 후보물질 발굴 플랫폼을 발전시켰다. 지난해에는 엔비디아(NVIDIA) 인셉션(Inception) 프로그램 파트너로도 선정됐다.
퍼스트바이오 관계자는 "자체 AI 플랫폼인 루미(RUMI)를 통해 표적 단백질 활성이 최적화된 유효물질을 설계하고, 튠랩의 ADMET 예측 모델을 활용해 후보물질 특성을 평가하고 있다"며 "두 플랫폼을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해 후보물질 우선순위를 선정하고 선도물질 최적화 방향을 도출한다"고 설명했다. 루미가 '잘 듣는 약'을 설계한다면 튠랩은 '실제로 약이 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역할을 맡는다.
아리바이오는 자체 AI 플랫폼 'ARIDD(AriBio Integrated Drug Discovery Platform)'와 튠랩을 연계한 순환형 연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단순한 시스템 통합이 아니다. ARIDD가 먼저 다중 기전 기반 신약 전략을 설계하고 신규 후보물질 또는 병용요법을 도출하면 튠랩이 물성·약물동태·독성(ADMET) 등 개발 가능성을 평가한 뒤 그 결과를 다시 ARIDD에 피드백한다.
아리바이오 관계자는 "최종적으로는 자체 ?랩(Wet Lab) 검증까지 수행한 후 생성된 데이터를 플랫폼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라고 설명했다. 특히 회사 측은 10년 이상 축적한 신경과학 데이터와 릴리의 AI 예측 모델을 결합함으로써 중추신경계(CNS) 신약개발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 등 CNS 질환은 신약개발 난도가 가장 높은 분야로 꼽힌다. 임상 진입 이후 실패율이 높고 개발 기간도 길어 후보물질 단계에서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이오업계에서는 AR1001 이후 후속 CNS 파이프라인 발굴과 가치 제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비용 무료·연구 결과물 소유권 확보...데이터는 제공해야
퍼스트바이오와 아리바이오에 따르면 릴리 튠랩 참여 비용은 무료다. 다만 참여 여부는 릴리가 자체적인 기준을 만들어 선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퍼스트바이오 관계자는 “파트너링 행사에서 일라이 릴리와 만났고 튠랩 담당자와 미팅하는 자리에서 참여를 제안받았다”며 “튠랩 참여에 따른 별도 비용이나 대가 지불은 없다”고 말했다.
릴리는 출범 당시 모든 기업에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직접 심사한 기업들을 초기 파트너로 선발했다. 공개된 최초 참여사는 AI 신약 기업 인시트로(insitro), 파이어플라이 바이오(Firefly Bio), 슈퍼루미널 메디슨스(Superluminal Medicines) 등이었다.
인시트로 창업자 다프네 콜러(Daphne Koller) 박사는 당시 "릴리의 고유 데이터셋과 머신러닝 역량을 결합해 소분자 특성 예측 모델을 구축하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매크로사이클 항암제 개발사 서클 파마(Circle Pharma)도 자사 항암 프로그램의 AI·ML 역량 강화를 위해 튠랩을 활용한다고 공개했다.
이후 릴리는 연구 플랫폼 기업 벤클링(Benchling), 생명과학 솔루션 기업 레비티(Revvity)와 협력해 튠랩 접근 범위를 1300개 이상 바이오텍으로 확대했다. 최근에는 계산화학 기반 신약개발 기업 슈뢰딩거(Schrödinger)와도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플랫폼 생태계를 넓히고 있다. 바이?업계에서는 튠랩을 단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릴리가 구축 중인 글로벌 신약개발 생태계로 평가한다.
다만 완전한 무상 제공은 아니다. 참여 기업은 연구 과정에서 확보한 실험 데이터를 플랫폼 생태계에 기여해야 한다. 릴리는 이를 활용해 AI 모델 성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참여 기업은 고도화된 예측 모델을 다시 활용한다. 바이오업계에서는 ‘현금을 내는 대신 데이터를 제공하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지식재산권(IP) 구조는 비교적 명확하다. 튠랩을 활용해 도출한 후보물질과 연구 결과물의 권리와 소유권은 전적으로 각 기업에 귀속된다.
퍼스트바이오 관계자는 “튠랩 플랫폼을 활용해 생성한 결과물 및 그로부터 도출되는 신약개발 후보물질에 대한 권리와 소유권, 이익은 회사가 보유한다”고 설명했다.
아리바이오 관계자도 “튠랩으로 발굴·개발한 후보물질과 예측 결과의 지적재산권(IP)은 아리바이오가 온전히 소유한다”고 확인했다.
반면 참여 기업들이 기여한 데이터와 이를 통해 개선된 AI 모델 자체의 권리는 릴리가 보유한다. 튠랩 결과물을 다른 AI 모델 학습이나 제3자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제한된다. 결국 튠랩은 후보물질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글로벌 빅파마의 데이터 자산과 AI 예측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에 가깝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세 가지
투자자 관점에서 튠랩 참여의 실질적 가치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연구개발 비용 절감이다. 신약개발 과정에서 가장 큰 비용은 실패한 후보물질에서 발생한다. 튠랩을 활용해 독성이나 약물동태 문제로 탈락할 가능성이 높은 후보물질을 조기에 걸러낼 수 있다면 불필요한 동물실험과 임상 준비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둘째는 기술수출 경쟁력 강화다. 최근 글로벌 빅파마들은 단순히 효능이 좋은 후보물질보다 개발 가능성(Developability)이 검증된 후보물질을 선호하는 추세다. ADMET와 안전성 예측 데이터가 강화될수록 기술이전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셋째는 후속 파이프라인 가치 상승이다. 아리바이오는 AR1001 이후 차세대 CNS 파이프라인을, 퍼스트바이오는 퇴행성 뇌질환 및 신규 적응증 후보물질 발굴 속도를 각각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튠랩 참여 자체가 릴리와의 공동개발이나 전략적 투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실제 가치는 향후 후보물질 발굴 성과와 기술수출, 임상 진입 결과를 통해 입증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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