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도 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전 세계가 장기간 지속되는 고물가를 다잡기 위해 고금리 시대로 진입함에 따라 한국 경제 최대 뇌관인 '빚 잔치'에 따른 위험이 커지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케빈 워시 신임 연준 의장은 임기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미국 기준금리를 3.50%~3.75%로 4연속 동결했다. 위원 12명 전원 만장일치 승인이었다.
다만 메시지는 명확히 차후 인상을 시사했다. 연준은 이날 발표한 정책결정문에서 "중동 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졌음에도 경제 활동은 견조한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며 "생산성 증가와 자본 투자가 활발하고, 고용 증가세는 노동 시장 성장률과 보조를 맞추고 있으며, 실업률에는 큰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연준은 "물가상승률은 위원회 목표치인 2%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연준은 "이는 에너지 부문을 포함한 특정 부문의 가격 상승을 초래한 공급 충격의 영향을 부분적으로 반영"했기 때문이라며 "위원회는 물가 안정을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력한 금리 인상 신호다.
연준 위원들이 함께 발표한 점도표상에서도 올해말 기준금리 예측치 중간값은 지난 3월 직전 점도표의 3.4%에서 이번에는 3.8%로 올라갔다.
앞으로 물가 상승세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연내 기준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
미국마저 기준금리를 연내 올린다면 한미 금리차는 더 크게 벌어진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2.5%로 미국 기준금리 상단과 1.25%포인트 차이가 난다.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은 지난 2022년 7월부터 시작돼 일시적으로 동률을 이룬 2022년 8월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3년 11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역대 최장기 기준금리 역전이다.
구조적으로 원화가치 하락을 불러와 물가 인상 압력을 더 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도 연내 최소 한 번의 기준금리 인상은 단행할 공산이 커졌다.
한국 경제는 기준금리를 올리더라도 골치아픈 문제에 직면한다.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올린다면 한국 경제 최대 뇌관인 부채 문제를 건드리게 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올 1분기말 현재 111.3% 수준이다. 지난해 4분기 말 대비 0.7%포인트 올라갔다. 이 비율은 2020년 2분기 사상 처음으로 100%를 넘은 후 꾸준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기업의 빚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이미 중소기업 부문을 중심으로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은행권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90% 수준까지 치솟아 1%대 진입을 목전에 뒀다. 지난 4월 신용보증기금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금융기관 대출 부실률은 3.7%를 기록해 2016년(3.9%)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았다.
가계 빚은 더 문제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명목 GDP 기준 88.6%(BIS 기준)로 100% 미만이었으나 이는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수준이었다.
더구나 이는 물가 상승과 수출 기업 실적 개선 영향이 반영된 결과였고 가계의 실질 빚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현재 전세보증금을 포함한 전체 가계 빚 규모는 300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즉 소득 증가로 인해 비율이 수동적으로 낮아졌을 뿐, 빚은 지속적으로 늘어난 만큼 이를 실질적인 디레버리징(deleveraging, 부채 축소)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와 관련 나라살림연구소는 17일 발간한 <나라살림브리핑>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 및 가계부채 상황 분석' 보고서에서 "한국의 2025년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71.1%"라며 "한국보다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나라는 덴마크·노르웨이·호주 등이 있으나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이들 국가는 고세율로 인해 순처분가능소득(분모)이 작아지는 효과가 있는 데다, 연금 소득대체율이 70% 이상이고 노인빈곤율이 5% 미만에 불과해 은퇴 이후에도 부채 상환 능력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된다"며 "반면 한국의 연금 소득대체율은 OECD 최하위권이며 노인빈곤율은 OECD 1위다. 즉, 우리나라는 여전히 디레버리징 국면에 들어섰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주요 국가와 비교해 봐도 구조적인 리스크가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기업과 가계 모두 100%대를 오르내리는 부채비율을 유지하는 건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든 수준의 위험이다. 만에 하나 빚 폭탄이 터진다면 사실상 정부가 거대 적자재정을 꾸려 이를 메워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정부 부문의 경우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은 50% 수준으로 100%대에 달하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증가 속도가 빠른 건 문제다.
즉 주요 경제 3주체(가계, 기업, 정부)가 모두 큰 빚의 무게에 짓눌리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부실 위험을 키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커진 유동성이 특히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가 집값을 거대하게 부풀린 데다, 2021년 고점을 찍은 후 찾아온 부동산 구조조정 기회를 당시 정부가 다시금 특례론 등의 거대한 유동성 공급으로 막아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특이할 정도로 긴 '빚잔치'를 벌여온 후과가 세계적 고물가 상황에서 큰 위험으로 다가오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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