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자경의 나비효과] 미토스 수출통제가 들춘 민낯, '우린 안전하다'는 기업들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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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경의 나비효과] 미토스 수출통제가 들춘 민낯, '우린 안전하다'는 기업들의 착각

폴리뉴스 2026-06-18 20:21:39 신고

[편집자주]워싱턴의 행정청사에서 띄운 공문 한 장이, 지구 반대편 한국 산업의 가장 여린 살을 헤집었다. 나비의 날갯짓이 토네이도를 부른다는 오래된 비유가 이번처럼 선명하게 들어맞은 적도 드물다. 표면의 피해자는 삼성과 SK였으나, 정작 무방비로 드러난 속살은 "우리와는 무관하다"며 안도하던 기업들의 안방이었다. 정치의 무대에서 벌어진 한 장면이 산업의 속살을 어떻게 들추는지, 그 경로를 따라가 본다.

미국이 끝내 'AI 그 자체'에 빗장을 걸었다. 그동안 첨단 반도체에 머물던 워싱턴의 통제 수단이, 마침내 알고리즘과 서비스라는 무형의 자산으로 옮겨붙은 것이다. 미 상무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앤스로픽의 최상위 모델 '미토스5'와 '페이블5'에 대해 외국 국적자의 접근을 전면 차단하는 수출통제 지시를 내렸다.

해외 이용자는 물론, 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앤스로픽 소속 외국인 직원까지 빠짐없이 그물에 걸렸다. 결국 앤스로픽은 내국인과 외국인을 실시간으로 가려낼 방도가 마땅치 않다며 전 세계 서비스를 통째로 멈춰 세웠다. 대중이 일상적으로 쓰는 상용 AI에 수출통제의 칼을 들이댄, 사상 초유의 장면이었다.

미국 정부가 앤스로픽의 최상위 인공지능(AI) 모델 '미토스5'와 '페이블5'에 대한 외국인 접근을 전면 차단하면서, 한국 산업계의 외산 AI 의존 구조가 도마에 올랐다. 앤스로픽 로고. [사진=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앤스로픽의 최상위 인공지능(AI) 모델 '미토스5'와 '페이블5'에 대한 외국인 접근을 전면 차단하면서, 한국 산업계의 외산 AI 의존 구조가 도마에 올랐다. 앤스로픽 로고. [사진=연합뉴스]

칩이 아니라 '모델'이었다… 하루 만에 결정된 셧다운

전말은 한 편의 첩보극에 가깝다. 발단은 앤스로픽의 최대 투자자인 아마존이었다. 앤디 재시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자사 연구진이 페이블5를 사이버 공격에 악용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아냈다며 그 우려를 미 정부에 전달했다.

곧이어 데이비드 색스 대통령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이 모델 배포 중단을 요구했고,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CEO는 이를 거절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션 케언크로스 백악관 사이버 담당 국장 등 고위 당국자가 직접 수화기를 들고 철회를 압박했지만, 아모데이는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단 하루 뒤, 정부의 답은 수출통제라는 형태로 돌아왔다. 설득이 통하지 않자 곧장 강제력을 동원한 셈이다. 앤스로픽의 항변은 결코 궁색하지 않다. 페이블5는 출시에 앞서 미국 정부와 영국 AI안전연구소(AISI)까지 참여한 수천 시간의 레드팀 검증을 거쳤고, 그 누구도 안전장치를 통째로 허무는 '범용 탈옥'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들이민 근거라곤 구두 증거뿐이었으며, 문제 삼은 취약점 분석 기능 역시 "오픈AI의 GPT-5.5를 비롯한 다른 모델에서도 가능한 수준"이라는 게 회사 측 반박이다. 그럼에도 서비스는 멈췄다. 한 기업의 결백 주장이 한 정부의 안보 논리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이번 사태는 건조하게 증명했다.

삼성·SK를 덮친 직격탄, '강 건너 불'이라는 산업계의 위험한 착각

불똥은 곧장 현해탄을 건너왔다. 앤스로픽이 보안 특화 모델 미토스의 오용을 막겠다며 꾸린 협의체 '프로젝트 글래스윙'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SK텔레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이름을 올린 지 불과 열흘 만의 일이었다. 접근권을 손에 쥐고 본격적인 활용에 채 착수하기도 전에, 문은 차갑게 닫혔다.

여기서 대다수 시선은 반도체와 보안의 영역에 머문다. 그러나 정작 위험의 본질을 외면한 채 안도하는 쪽은 따로 있다. "우리는 그런 고급 보안 모델을 쓰지 않으니 무관하다"는 산업계의 속내가 그것이다. 단언컨대, 이는 착각이다. 종속의 본질은 '어떤 모델을 쓰느냐'가 아니라, 그 통제권이 우리 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속살을 들춰보면 의존의 뿌리는 이미 깊다. 배차나 재고 관리 같은 특정 목적형 알고리즘은 국내 유통업계가 상당 부분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미래 먹거리로 사활을 건 '생성형 AI 기반 디지털 전환(DX)'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임직원의 업무를 거드는 AI 비서, 고객 상담 챗봇, 수요 예측과 마케팅 솔루션에 이르기까지 차세대 두뇌의 상당수가 외산 API에 통째로 얹혀 있다. 앤스로픽의 클로드가 이미 국내 AI 시장 2위 자리를 꿰찰 만큼 깊숙이 파고들었고, 한 통신사는 AI 에이전트에 사번까지 부여하며 "동료"라 부르는 시대다.

빌린 두뇌가 어느덧 조직의 일상으로 굳어진 것이다. 쿠팡·이마트 같은 대형 유통·이커머스가 사활을 걸고 뛰어든 생성형 AI 경쟁 역시, 그 토대의 상당 부분을 외산 모델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이 흐름과 한 치도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그 두뇌가 내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매달 임대료를 치르며 빌려 쓰는 '렌탈 소비자'로 머무는 한, 공급자가 가격을 올리거나 빗장을 거는 순간 유통망과 서비스는 고스란히 그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당장 내 안방이 타지 않는다는 방심이, 미래 성장판을 통째로 저당 잡히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다.

"종속되면 언제든 벌어진다"… 소버린 AI는 구호가 아니라 생존선

정부도 사태의 무게를 모르지 않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앤스로픽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차분히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며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한 협의체를 가동했다. 그러나 사후 수습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공백이 이미 드러났다는 지적이 무겁다.

전문가들의 진단은 한 곳을 향한다.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은 "언젠가 최고 성능의 AI는 수출통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줄곧 말해왔다"며 "이런 일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는 만큼, 한 국가의 자체 AI 역량, 곧 소버린 AI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학부 교수 역시 "미국이 미토스 수출을 막은 것은 이를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보고 전략물자 통제의 관점에서 판단한 것"이라며 "안보 분야에서 소버린 AI로 보안 수준을 끌어올리는 연구가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구글 출신인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자체 모델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의 시급함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번 사태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첨단 AI는 이제 국방이자 국격이며, 언제든 국가 간 비대칭 무기로 돌변할 수 있는 전략 자산이라는 사실이다. 해외에서는 벌써 첨단 모델을 "디지털 시대의 호르무즈 해협"에 빗대는 목소리가 나온다.

길목 하나만 틀어막혀도 함대 전체가 발이 묶이는 지정학적 초크포인트라는 것이다. 미 정부가 "오픈AI 등 다른 기업으로 통제를 당장 확대하지는 않겠다"며 선을 그었다고 한들, 챗GPT와 제미나이, 클로드로 그 빗장이 옮겨붙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체급 차이가 엄연한 토종 AI를, 민간에 애국심만으로 강요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으로 주권의 방파제를 쌓아 올릴 것인가. 그 해법의 좌표를, 공공의 역할에서부터 다음 편에서 짚는다.

※  '소버린 AI' 자립의 해법을 공공의 역할에서 찾는 2편 〈대한민국 디지털 주권을 묻다, 소버린 AI 해답은 '공공'에〉로 이어집니다.

[폴리뉴스 조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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