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쌀과 도자의 도시로 기억돼 온 이천은 이제 세계 인공지능(AI) 시대를 움직이는 ‘반도체 도시’라는 또 하나의 빛나는 이름을 갖게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SK하이닉스가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SK하이닉스가 세계 기술 경쟁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문화예술인의 시선에서 정작 인상 깊었던 것은 눈부신 기술이나 압도적인 성과가 아닌 그 위상에 걸맞게 지역사회와 깊이 연결되고자 노력하는 그들의 태도였다.
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업무를 감당하면서 기업과 지역이 만나는 여러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했다. 이러한 문화적 스케일의 확장은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SK하이닉스의 글로벌 위상과도 완벽하게 궤를 같이한다. 그 여정을 함께하며 느낀 점은 명확했다. SK하이닉스는 단순히 지역에 적을 둔 글로벌 기업이 아니라 이천의 문화를 세계적 수준으로 함께 끌어올리는 든든한 파트너라는 사실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잊지 못할 뜨거운 기억이 하나 있다. 돌이켜보면 2023년은 반도체 한파로 인해 SK하이닉스도, 이천시도 참 힘든 시기를 통과해야 했던 해였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염려하던 그때 이천문화재단은 하이닉스 구성원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해 온 마음을 담은 뮤지컬 콘서트를 기획해 헌정했다. 문화예술이 지닌 따뜻한 위로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하이닉스는 그 위기를 당당히 극복하고 다시 한번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최근 미국에서 진행한 ‘이천통신사’ 공연 당시 SK하이닉스 미주법인에서 가졌던 무대는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물리적 거리는 지구 반 바퀴만큼 떨어져 있었지만 고담극장의 퇴근길 콘서트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같은 도시의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 특유의 정서가 흐르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지역의 문화 자산과 글로벌 기업이 시너지를 낸 가장 이상적인 글로벌 프로젝트이자 서로를 ‘친구’로 생각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동행의 본보기가 아닐까.
우리는 종종 성공을 숫자로만 재단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과연 무엇으로 완성될까. 개인의 성취만으로 충분할까. 도시의 발전이 과연 경제적 수치만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존재 의미를 찾고, 자부심을 느끼며, 서로 연결돼 있다는 감각 속에서 더 깊은 행복을 맛본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과 기업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적 연대와 공감의 경험은 단순히 남는 시간에 하는 부가적인 활동이 아닌 어쩌면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기반일지도 모른다.
문화예술 협력의 참된 가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방적인 기업의 지원이나 일회성 프로그램을 넘어 도시의 문화적 풍경을 글로벌한 차원으로 함께 그려 나가고 시민의 마음속에 자부심의 씨앗을 심는 것. 기술 경쟁력이 서슬 퍼렇게 날이 서 있는 시대일수록 지역사회와 따뜻하게 맞닿는 연결의 힘은 더욱 소중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이천이 산업적 경쟁력과 문화적 자부심이 눈부시게 어우러지는 도시가 되기 바란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가장 힘들 때 곁을 지켜주고, 고단한 퇴근길을 함께 걸어주며, 이제는 시민의 자긍심으로 우뚝 설 친구 같은 기업과 지역이 만들어갈 연대의 가치가 더 많은 이들의 이야기 속에 따스하게 녹아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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