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전세사기 누적 피해 건수가 3만9000건을 넘어서며 조만간 4만건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22대 국회 전반기 동안 전세사기 예방을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단 한 건도 처리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18일 참여연대가 발표한 국회 주거·부동산 입법 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22대 국회 전반기에 발의된 주거·부동산 관련 법안은 총 405건이다. 이 가운데 처리된 법안은 18건에 그쳤다. 대안반영 폐기 법안 58건을 포함해도 처리된 법안은 76건으로 처리율은 19% 수준이었다.
처리 법안은 전세사기 피해 구제와 주택 공급 확대 관련 법안에 집중됐다. 대안반영 폐기 법안을 포함하면 전세사기특별법이 30건으로 가장 많았고, 공공주택특별법 15건, 민간임대주택특별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주택법이 각각 6건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전세사기를 사전에 막기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한 건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주거·부동산 법안 논의 자체도 충분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22대 국회 전반기 2년 동안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는 총 18차례 열렸다. 소위가 다루는 법률이 약 100여 개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차례도 회의가 열리지 않은 셈이다. 그나마 처리된 법안도 재개발·재건축 등 주택 공급 확대와 규제 완화에 무게가 실렸다.
정부는 지난 3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세사기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에는 임차인이 전입신고를 하면 즉시 대항력을 갖도록 하고 전세계약 전 예비 임차인이 선순위 보증금 등 권리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후 구제에 치우쳤던 정책 방향을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대책 상당수는 여전히 입법이나 제도 정비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전입신고 직후 임대인이 담보대출을 받거나 근저당, 즉 향후 발생할 채무까지 일정 한도 안에서 담보하는 저당권을 설정해 임차인의 권리가 뒤로 밀리는 문제를 막으려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이 필요하다.
공인중개사가 선순위 권리관계와 보증금 규모 등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하고 표준임대차계약서에 선순위 권리 총액을 적도록 하는 방안 역시 추가 제도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서는 대항력(집주인이 바뀌거나 집이 경매·공매로 넘어가도 임차인이 거주와 보증금 반환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 발생 시기 조정뿐 아니라 임대차 계약 구조 전반을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덕수 이강훈 변호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정부와 국회 안에서 제도를 어디까지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들은 실제 경험을 통해 문제를 분명히 제기하고 있지만 이를 제도화하려면 임대차 시장 전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국회의 관심이 피해 구제에 치우쳐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국회의원들의 대체적인 관심사는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에 주로 집중돼 있다”며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세사기가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전세보증금이 주택 가격에 지나치게 근접한 구조도 근본적인 문제로 꼽힌다. 집값이 하락하거나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면 보증금이 높을수록 세입자가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은 줄어든다. 이 변호사는 “보증금이 집값 대비 어느 만큼까지 허용돼야 하느냐가 핵심 문제”라며 “경매에서 돌려받지 못하면 보증금이 너무 높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임대차 정보가 불투명한 점도 문제다. 현행 제도는 임차인의 점유, 주민등록, 확정일자 등을 통해 권리관계를 확인하는 방식이지만 제3자가 임대차 관계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다가구주택은 한 건물 안에 여러 임차인이 있어도 전체 보증금 규모나 우선순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쉽지 않다.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되는 사이 피해는 계속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사례는 누적 3만9000건을 넘어섰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피해주택 매입은 9000호 수준에 그치고 있다. 피해주택 매입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살던 집에서도 밀려나는 이중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지만 피해 발생 이후 작동하는 사후 구제책이라는 한계가 있다.
참여연대는 “22대 국회 후반기가 시작됐지만 거대 양당의 원 구성 협상은 여전히 순조롭지 않은 상황”이라며 “양당은 조속히 원 구성 협상을 마무리하고 후반기 국회에서는 서민들의 주거 안정과 주거비 부담을 완화할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