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헌법 107조 2항 처분에 '재판작용'은 포함 안 돼" 지적도
판결 이유나 결정서 판단할 수도…유·무죄 결론 영향 줄지 미지수
(서울=연합뉴스) 김빛나 이미령 이승연 기자 = 서울중앙지법 재판부가 17일 헌법재판소의 심리 지연 문제를 사실상 공개 저격한 사건을 두고 법조계 안팎에선 문제 제기의 타당성과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헌재의 재판소원 시행 과정에 축적된 법원 내부 불만 표출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국민 기본권 보장과 무관하게 자칫 법원과 헌재 두 기관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0부(전보성 형사수석부장)는 전날 헌재의 심리 지연으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사건 피고인에 대한 결론을 4년째 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헌재에 지연 사유를 묻는 의견서를 보냈다.
재판부는 '명령·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 대법원은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는 헌법 107조 2항을 근거로 "헌재의 부작위 처분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여부 심사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헌재의 재판 지연을 두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즉 부작위 처분으로서 사법부의 위헌·위법성 심사 대상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재판부의 재판을 '처분'으로 보고 위헌성을 심사하는 것 자체가 법리적으로 타당하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헌법 107조 2항의 처분에는 헌재의 '재판작용 그 자체'(판결·결정·명령)는 포함되지 않는다"며 "이번 행위는 헌법과 법률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일탈 행위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명예교수도 "처분에 재판 작용이 포함된다고 해석하면 다른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도 상급심도 아니면서 판단할 수 있다는 게 된다"며 "법리적으로 성립되지 않고 사법 체계를 흔드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헌재에선 문제의 사건이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이어서 결론이 나올 때까지 해당 형사재판이 중단되는 것도 아닌데 재판을 못 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단 입장이다.
아울러 '헌재 재판지연의 위헌성을 심사한다'고 공언한 재판부가 과연 어떤 결론을 내놓을 수 있을지를 두고는 법원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판결 이유나 별도 결정을 통해 헌재의 부작위가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놓을지 모르겠다"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판결 이유에서나 별도의 결정문을 만들어서 위헌성을 지적한다는 것인데, 다만 그 판단이 결국 형사재판의 결론에 어떤 법적 효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가령 헌재의 심리 지연이 위헌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피고인에 대한 무죄 선고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반대로 헌재 결정 없이도 유죄 판단이 가능하다면, 재판부가 장기간 결정을 기다릴 이유 역시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부장판사도 "법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재판 당사자가 직접 '헌재의 재판 지연으로 재판권이 침해됐다'며 국가배상소송을 내는 경우 이번 재판부의 판단이 고려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법원 내부에서 "물음표만 남는 상황"이란 목소리마저 나온다.
익명의 부장판사는 "헌재에서 답이 안 오든 어떻게 하겠느냐"며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반격도 방법이 마땅찮다"고 꼬집었다.
법원 역시 재판 지연 문제를 안고 있는 만큼 문제 제기의 명분이 약하다는 내부 반성도 나온다.
재판소원 도입 과정에서 불거졌던 양 기관의 갈등이 재점화한 듯한 양상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차진아 교수는 "법원이 재판소원 도입에 대한 불만으로 맞대응을 한 것처럼 보인다"며 "이런 다툼이 기본권 보장과 무슨 상관이 있나"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헌법소원 결과를 보고 재판을 진행해달라'고 요청해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던 만큼, 4년이 넘도록 이어진 심리를 지적할 수밖에 없었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올해 재판소원 도입으로 헌재의 전체 사건 처리가 늦어질 수 있단 우려가 제기돼왔다.
헌재에 계류 중인 미제 사건은 올해 4월 말 기준 1천396건이다.
이중 이번 사건과 같이 3년을 초과한 사건이 150건에 이른다.
2년 초과 3년 이내는 195건, 1년 초과 2년 이내 330건, 180일 초과 1년 이내가 209건이다. 180일 이내 사건은 512건 수준이다.
가장 오래된 사건은 사형 제도의 위헌성을 다투는 사건으로 7년 넘게 심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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