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칩도 확보했고 패키징도 확보했는데 막상 돌아보니 기판이 없더라고요."
지난 16일 서울 강서구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이노텍 패키지솔루션 미디어 테크데이 현장에서 만난 황정호 패키지솔루션마케팅담당 상무는 최근 글로벌 반도체 고객사들의 고민을 이같이 전했다.
AI 반도체 경쟁이 GPU와 HBM(고대역폭메모리)을 넘어 패키징과 기판 영역으로 확산되면서 반도체 기판이 새로운 공급망 병목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LG이노텍은 이날 RF-SiP(무선주파수 패키지형 시스템), FC-CSP(플립칩 칩스케일 패키지), FC-BGA(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 등 패키지솔루션 사업의 핵심 제품과 중장기 성장 전략을 공개했다. 회사는 오는 2031년 패키지솔루션 사업을 영업이익 1조원 규모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지난해 LG이노텍 패키지솔루션 사업 매출은 1조7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8%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289억원으로 82% 늘었다. 전체 매출 비중은 10% 수준이지만 영업이익 비중은 19%에 달하는 대표적인 고수익 사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 AI 시대 새 병목 된 ‘기판’
이날 행사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반도체 기판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 변화였다. 과거에는 반도체 칩 자체의 성능이 경쟁력을 좌우했다면 AI 시대에는 고성능 칩을 구현하기 위한 패키징과 기판 기술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 상무는 "고객들은 이제 칩과 패키징뿐 아니라 기판까지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며 "장기 공급을 원하는 고객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I 데이터센터와 서버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CPU와 GPU, AI 가속기에 적용되는 고성능 기판 수요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황 상무는 "예전 PC에 들어가던 FC-BGA와 지금 고객들이 원하는 AI용 FC-BGA는 완전히 다른 제품"이라며 "앞으로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 구축이 확대될수록 FC-BGA 시장은 또 다른 단계로 진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결국 누가 먼저 고객 공급망(SCM)에 올라가느냐가 중요하다"며 "AI 시대에는 기판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RF-SiP 1위…다음 승부수는 FC-BGA
LG이노텍의 자신감은 RF-SiP 시장에서 쌓아온 경쟁력에서 나온다. RF-SiP는 스마트폰 통신 기능 구현에 필요한 핵심 기판이다. 핀셋 끝과 비슷한 크기의 작은 기판 안에 수많은 통신 부품과 회로를 집적해야 하는 대표적인 고난도 제품으로 꼽힌다.
LG이노텍은 2011년 세계 최초로 코어리스 RF-SiP 기판 양산에 성공했고 현재 글로벌 RF-SiP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시장점유율은 약 65% 수준이며 올해는 80%까지 확대될 것으로 회사는 기대하고 있다.
황 상무는 "RF-SiP는 기술 장벽이 높은 시장"이라며 "LG이노텍이 오랜 기간 축적한 초정밀·고집적 기판 기술력이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FC-CSP 사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FC-CSP는 스마트폰 AP뿐 아니라 AI 서버용 메모리 패키징에도 활용되는 기판으로 적용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황 상무는 "최근 글로벌 반도체 고객향 GDDR7용 FC-CSP 기판을 수주했고 현재 구미 생산라인은 사실상 풀가동 상태"라며 "베트남 신공장에서도 FC-CSP와 RF-SiP 생산능력을 우선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029년까지 사실상 풀부킹 상태"
LG이노텍이 가장 큰 기대를 거는 분야는 FC-BGA다. FC-BGA는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CPU·GPU, 자율주행차 등에 적용되는 고부가 패키지 기판이다. 기존 FC-CSP보다 면적은 최대 18배 이상 크고 층수도 최대 22층에 달해 기술 난도가 훨씬 높다.
LG이노텍은 현재 구미 드림팩토리를 중심으로 FC-BGA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빅테크 고객향 PC 칩셋용 제품 양산에 들어갔으며 올해 3분기부터는 PC CPU용 제품 공급도 본격화할 예정이다. 향후 AI 서버용 CPU·GPU 기판 시장까지 진출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조지태 패키지솔루션사업부장(전무)은 "현재 시장 상황만 놓고 보면 2029년까지는 사실상 풀부킹 상태라고 볼 정도로 수요가 견고하다"며 "고객들이 요구하는 방향은 결국 고다층·고면적 기판이며 이 분야에서 LG이노텍의 강점이 발휘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 상무 역시 "LG이노텍은 30년 이상 기판 사업을 해왔고 생산기술연구소(PRI), 스마트팩토리 역량까지 갖추고 있다"며 "FC-BGA 시장에서는 후발주자지만 AI 시대가 본격화되는 2028년쯤에는 시장이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업계에서는 AI 반도체 시장이 학습 중심에서 추론 중심으로 확대되면서 CPU와 메모리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CPU·GPU용 FC-BGA와 메모리용 FC-CSP 수요도 동반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LG이노텍이 RF-SiP 세계 1위를 넘어 FC-BGA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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