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박정현 기자 |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 '클로드(Claude)' 개발사 앤트로픽(Anthropic)이 서울 오피스를 열고 한국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선다. 최근 미국 정부의 최신 AI 모델 접근 제한 조치로 수출통제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서도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기업·연구기관·스타트업 전반으로 협력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앤트로픽은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서울 오피스 개소와 함께 국내 사업 전략을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크리스 차우리(Chris Ciauri) 앤트로픽 인터내셔널 총괄과 최기영 한국 대표가 참석했다.
최 대표는 "한국은 정부 정책과 개발자 생태계, 반도체 산업, 클라우드 인프라를 모두 갖춘 몇 안 되는 풀스택 AI 국가"라며 "빠르게 AI를 준비하고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시장이기 때문에 지금이 진출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기업과 기관들은 혁신과 안전성을 상충하는 가치가 아닌 함께 추구해야 할 목표로 인식하고 있다"며 "서울 오피스 개소는 한국 AI 리더들과 장기적인 협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앤트로픽은 한국 기술 산업에서 30여 년간 활동해 온 최 대표를 중심으로 서울 오피스를 운영한다. 서울 오피스는 국내 고객 및 파트너 지원을 강화하고 한국 AI 생태계와 보다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기 위한 전략 거점 역할을 맡게 된다.
▲ 美 수출통제 논란..."한국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이번 서울 오피스 개소는 최근 미국 정부의 AI 수출통제 논란과 맞물리며 더욱 주목받고 있다.
앞서 미국 정부는 앤트로픽의 최신 AI 모델인 '미토스5(Mithos 5)'와 '페이블5(Fable 5)'에 대한 일부 해외 접근을 제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이 프로젝트 글래스윙(Project Glasswing) 참여 기관 가운데 중국과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한국 통신사를 발견한 것이 규제 강화의 배경 중 하나였다고 보도했다.
프로젝트 글래스윙은 앤트로픽이 최고 수준의 보안 연구와 사이버 방어 목적에 한해 일부 기관에 최신 AI 모델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SK텔레콤 등이 참여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앤트로픽은 이번 조치가 일시적인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차우리 총괄은 "이번에 문제가 된 탈옥(jailbreak) 사례는 최근 6개월 동안 출시된 대부분의 AI 모델에서도 발견된 일반적인 이슈"라며 "현재 미국 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으며 수일 내 미토스5와 페이블5 모델을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글래스윙 참여 기업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은 없다"고 답했다.
논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한국 시장에 대한 기대감은 숨기지 않았다. 차우리 총괄은 "현재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중 하나"라며 "한국의 1인당 클로드 사용량은 전 세계 12위 수준인데 우수한 개발자 생태계와 기업들의 높은 AI 수요를 고려하면 조만간 한 자릿수 순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앤트로픽이 한국 시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앤트로픽 경제지수(Economic Index)에 따르면 한국의 클로드 사용량은 인구 규모를 고려한 예상치를 3.5배 이상 웃돈다. 1인당 사용량 기준으로는 전 세계 116개국 가운데 12위에 해당한다. 반도체 기업부터 플랫폼 기업, 통신사, 스타트업까지 AI 도입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한국이 글로벌 AI 기업들의 핵심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앤트로픽의 승부수는 '안전한 기업용 AI'
앤트로픽이 한국 시장에서 내세운 차별화 전략은 '안전한 기업용 AI'다. 차우리 총괄은 모두발언에서 "AI의 최우선 가치는 안전"이라며 "강력한 성능뿐 아니라 신뢰할 수 있고 통제 가능한 AI를 만드는 것이 앤트로픽의 핵심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많은 기업들이 단순히 모델 성능보다 보안과 안정성, 데이터 보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앤트로픽은 처음부터 기업용 AI 시장을 염두에 두고 제품을 개발해왔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주요 기업들의 클로드 도입 사례도 늘고 있다. 네이버는 전체 엔지니어링 조직에 AI 코딩 에이전트 '클로드 코드(Claude Code)'를 도입했으며 넥슨은 게임 개발과 운영 과정에 활용하고 있다. LG CNS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고객 프로젝트에 클로드를 적용하고 있으며 LG그룹 전반으로 활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AWS 베드록(AWS Bedrock)을 통해 글로벌 임직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삼성SDS 역시 삼성전자 임직원을 대상으로 클로드 기반 업무 자동화와 소프트웨어 개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앤트로픽은 이러한 기업 수요를 기반으로 한국 시장에서 엔터프라이즈 지원과 정책·운영을 담당하는 전담 조직을 구축하고 있다. 클로드의 한국어 성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한편 국내 고객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서비스 지원 체계도 마련할 계획이다.
최 대표는 "한국 기업들이 추진하는 주요 AI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며 "산업별 전문성을 갖춘 조직을 구축해 고객 지원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AWS, 구글 클라우드,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은 물론 SI 기업들과도 협력해 AI 전환(AX)을 지원하는 파트너 생태계를 확대하고 있다"며 "고객들이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AI를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과기정통부와 AI 안전성 협력...데이터 주권도 검토
안전성 확보를 위한 행보도 본격화한다. 앤트로픽은 이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AI 안전성 및 사이버보안 분야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양측은 AI가 사이버 공격과 방어에 미치는 영향을 공동 연구하고 한국어 환경에서의 AI 모델 안전성 평가와 오남용 위험 분석, 자율형 AI 에이전트 레드팀 평가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AI 안전 분야에서는 AI안전연구소(AISI)와 협력해 AI 모델 및 AI 에이전트 검증 체계를 구축한다. 사이버보안 분야에서는 금융권을 포함한 산업 전반의 AI 취약점 발굴과 위협 정보 공유를 확대할 계획이다.
최 대표는 "한국은 세계 최초 수준의 AI 법·제도를 마련했고 AI 안전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다"며 "혁신과 신뢰를 동시에 추구하는 앤트로픽의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앤트로픽은 한국 규제 환경에 맞춘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과 컴플라이언스 체계 마련도 검토하고 있다. 한국 내 데이터 레지던시(Data Residency) 옵션 제공 여부 역시 검토 대상이다.
개발자 생태계 확대에도 적극 나선다. 앤트로픽은 국내에서 '클로드 포 스타트업(Claude for Startups)'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베이스벤처스와 공동으로 '클로드 빌드 데이'를 개최했다. 18일에는 레플릿(Replit), 한국투자파트너스,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와 함께 해커톤 행사인 '푸시 투 프로드(Push to Prod)'를 진행한다.
또 KAIST, 고려대, 연세대, POSTECH 등이 참여하는 국가AI연구거점(NAIRL) 연구 컨소시엄과 협력해 연구자 최대 60명에게 무료 클로드 계정을 제공하고 AI 안전성, 모델 평가, 정렬(Alignment), 강건성(Robustness) 연구를 지원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서울 오피스 개소가 단순한 영업 거점 설립을 넘어 한국을 글로벌 AI 안전성 협력의 핵심 거점으로 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평가한다. 오픈AI에 이어 앤트로픽까지 한국 시장 공략을 강화하면서 국내 생성형 AI 시장을 둘러싼 글로벌 빅테크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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