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이사철(李思哲, 1952~) 항목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멈췄다. 재독한국인 구명서가 고문을 당했다고 호소하며 혐의사실을 부인하자, 이사철이 "슬리퍼로 때려가며 보안사에서의 진술과 똑같은 진술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슬리퍼. 고문도구도 없이 그냥 신고 있는 슬리퍼로 때렸다. 이 장면이 이 글의 핵심이다. 공식적인 고문이 아니라 일상적인 물건으로 자행된 폭력. 그리고 그렇게 받아낸 자백으로 구명서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1993년 홍조 근정훈장을 받은 사람이, 그 이전에 슬리퍼로 피의자를 때렸다.
1952년 경기도 부천 출생, 경복고에서 서울법대, 제16회 사법시험
이사철은 1952년 9월 경기도 부천군 약대동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 생으로는 드물게 '오정(吾丁)'이라는 아호를 쓰고 있다. 1968년 경복중학교, 1971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법대에 입학했다. 1974년 3월 제1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동기로는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 주임검사를 지낸 김상희, 사법연수원 동기로는 노무현(1946~2009) 정부 때 법무부장관을 지낸 김성호, 15~18대 국회의원 박주선 등이 있다.
1976년 사법연수원 6기를 수료하고 1976년부터 1979년까지 군법무관으로 근무했다. 1979년 11월 수원지검 검사로 임명됐다. 1982년 제주지검을 거쳐 1983년 8월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로 발령받으면서 문제적 이력이 시작됐다.
세계사 속의 동류, '스스로 선택한 공안기술자'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가 떠오른다. 소련의 안드레이 비신스키(Andrey Vyshinsky, 1883~1954)다. 대숙청 재판을 총지휘하면서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을 법적증거로 활용하고, 이미 결론이 정해진 재판에 법적외양을 입혔다. 그러나 비신스키는 거대한 독재체제의 압박 속에서 활동했다.
이사철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는 스스로 공안부를 선택했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DJ 저격수'를 자임했다. 독재의 압박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신념으로 움직인 부분이 있었다. 미국의 로이 콘(Roy Cohn, 1927~1986)이 더 비슷하다.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1908~1957)의 법률보좌관으로 반공 색출작업을 주도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활동한 인물이다. 콘처럼 이사철도 공안검사 시절의 행적과 정치인 시절의 행적이 단절되어 있지 않았다.
1984년 이장형 사건, 고문인 줄 알면서 기소했다
이사철의 반헌법 행위의 첫 번째 정점은 1984년 이장형 간첩조작사건이다. 이장형은 1984년 8월 안기부에 연행돼 고문과 불법감금을 당한 뒤 허위자백 했다. 이사철은 이것이 "고문 및 불법감금에 의한 허위자백임을 인지하고서도 기소해 사형을 구형했다." 인지하고도 기소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몰랐다면 과실이다. 알았다면 고의다. 이것은 고의였다.
같은 해 1984년 10월, 이곤은 보안사에 불법 연행돼 고문 등 가혹행위를 받고 허위자백 해 간첩으로 조작됐다. 이사철은 이곤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하고 중형을 구형했다.
1985년에는 안기부 강압에 의해 허위자백한 뒤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수감 중 사망한 안상근 의문사 사건이 있었다. 이사철은 안상근이 안기부의 고문에 의해 허위자백 했음을 인지하고서도 기소를 강행했다.
슬리퍼로 때린 구명서 사건, 1985년
이사철의 반헌법 행위 가운데 가장 노골적인 장면은 1985년 구명서 사건이다. 구명서는 1985년 9월 보안사에 구속돼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해 간첩으로 조작됐다. 이사철이 수사를 맡았다.
구명서가 "고문을 당했다"고 혐의사실을 부인하자, 이사철은 슬리퍼로 얼굴을 때려가며 보안사에서의 진술과 똑같은 진술을 받아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간첩혐의로 기소해 1986년 3월 결심공판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공식적인 고문실도 아닌 곳에서, 특별한 도구도 아닌 슬리퍼로, 검사가 직접 피의자의 얼굴을 때린 것이다. 이것은 고문의 가장 일상화된 형태였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다는 것이 1980년대 한국검찰의 민낯이다.
집시법 위반 학생에게 "법정 태도 나쁘다"며 최고형 구형
이사철이 남긴 기록 중 황당한 장면도 있다. 1985년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된 고려대 학생의 최후진술을 들은 이사철이 "법정태도가 나쁘다"며 형량을 정정해 법정최고형인 7년을 구형했다. 법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진술한 것이 '법정 태도 불량'이 돼 더 높은 형량을 받게 된 것이다.
1993년 홍조 근정훈장, 고문이 상을 받았다
이사철은 1993년 홍조 근정훈장을 받았다. 슬리퍼로 피의자의 얼굴을 때리고, 고문인 줄 알면서 기소하고, 법정태도 나쁘다며 최고형을 구형한 검사가 나라의 훈장을 받았다. 이것이 5공·6공 시대 한국검찰의 공로기준이었다.
'DJ 저격수'로 정치 무대에 등장, 1996년
이사철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부천 원미을에 신한국당(현 국민의힘 전신)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공안검사에서 여당 국회의원이 됐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낙천낙선운동의 표적이 돼 낙선했다. 그러나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전신) 후보로 다시 당선됐다.
국회에서 그는 'DJ 저격수'를 자임했다.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며 한나라당 대변인을 맡았다. 공안검사 시절 발휘했던 공세적 기질이 정치판에서도 이어진 것이다.
재심 무죄들, 2010년대의 뒤늦은 심판
이사철이 기소한 사건들이 재심에서 줄줄이 무죄를 받았다. 이장형 사건 재심무죄(2012년), 이곤 사건 재심무죄(2012년), 구명서 사건 재심무죄(2015년). 이사철이 기소한 피해자들이 수십 년 만에 무죄를 받는 동안, 이사철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가 변호사를 하고 있었다. 법적 책임은 없었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길퍼드 4인' 사건에서 피의자를 고문해 허위자백을 받아낸 경찰관들은 이후 형사 기소됐다. 비록 최종 유죄선고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책임추궁의 과정이 공개기록으로 남았다. 그리고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공식사과하고 배상했다.
한국에서 이사철은 홍조 근정훈장을 받고, 국회의원을 두 번 지내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재심무죄가 나온 뒤에도 공개적인 사과는 없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이사철의 슬리퍼를 떠올렸다. 공식적인 고문이 아니라 일상적인 물건으로 자행된 폭력. 그리고 그것이 '공로'가 돼 훈장으로 돌아온 구조. 그 구조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작동하고 있지 않은지를 우리는 물어야 한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