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에서 나는 통합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하고, 지역 안에서 누구도 혼자 늙지 않게 하자고 말하는 사람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치매 어머니를 돌보는 아들이 된다. 낮에는 돌봄 체계를 논의하고, 밤에는 어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지 못하게 붙잡는다.
며칠 전 새벽 세 시였다. 어머니가 갑자기 옷을 입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아직 안 들어왔어."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인데 어머니는 그날 밤 남편을 기다렸다. 나는 급히 뒤따라나갔다. 골목 끝에서 어머니를 붙잡았다. 찬 바람 속에서 어머니가 말했다.
"집에 가자."
그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집은 어디일까. 시설일까. 병원일까. 아니면 기억이 무너져도 끝까지 머물고 싶은 자기 방일까.
가족들은 말했다.
"이제 요양원 가셔야 해."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모두 지쳐 있었다. 나 역시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낯선 곳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불안해했다.
밥상 위치가 바뀌어도 혼란스러워했고, 익숙한 골목 이름을 들을 때만 겨우 안심했다.
나는 결국 내가 사는 동네 주민센터 문을 두드렸다.
"통합돌봄 신청하려고 왔습니다."
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늘 설명하던 제도 안으로 내가 직접 들어온 것이다.
공무원은 친절했다. 여러 제도를 설명해 주었다. 방문간호도 연계할 수 있고, 돌봄서비스도 검토할 수 있고, 치매안심센터와도 연결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순간 상상했다.
언젠가는 방문간호사가 집으로 와 어머니 혈압을 재줄지도 모른다. 요양보호사가 와서 내가 잠시라도 숨 돌릴 시간을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미끄러운 화장실엔 안전손잡이가 생기고, 누군가는 어머니 손을 잡고 골목을 걸어줄지도 모른다. 동네가 병원이 되고, 골목이 돌봄이 되는 장면을 잠시 상상했다.
그런데 설명 끝에 공무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현장 확인 나오기까지 한 달 정도 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사전조사와 종합판정, 개인별 지원계획 수립과 심의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실제 서비스를 받으려면 두 달은 생각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두 달. 어쩌면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순간 마음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치매 환자 가족에게 두 달은 짧지 않다. 오늘 밤에도 어머니는 밖으로 나가려 할 수 있고, 내일은 가스불을 켜놓을 수도 있고, 다음 달에는 나를 못 알아볼 수도 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두 가지 마음 사이에 서 있었다. 한쪽에는 기대가 있었다. 이제는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는 기대. 다른 한쪽에는 우려가 있었다. 제도가 내 삶보다 늦게 도착할 수도 있다는 불안.
나는 통합돌봄의 가장 큰 문제를 아주 현실적으로 깨달았다. 돌봄은 의지가 부족해서 늦는 게 아니었다.
지난 3월 오랫동안 시범사업에 머물러 있던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마침내 전국에서 시행되었다. 8년이 걸렸다. 법이 만들어졌고, 제도가 출발했다.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 돌봄 현장에서는 기쁜 마음보다 걱정이 앞선다. 제도는 시작되었지만, 그 제도를 실제로 작동시킬 돈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지난해, 통합돌봄이 제대로 출발하려면 최소 2132억 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정부와 국회가 편성한 예산은 914억 원에 그쳤다. 그 가운데 전국 시군구가 실제로 쓸 수 있는 사업비는 620억 원이다. 전국 시군구에 나누면 평균 약 2억 7000만 원이다.
2억 7000만 원. 처음 들으면 큰돈처럼 보인다. 그 돈으로 돌봄이 필요한 노인을 찾아내고, 방문간호를 연결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퇴원환자 돌봄을 지원하고, 사례관리 인력을 운영하고, 응급상황에 대응해야 한다.
누군가는 집에 안전손잡이를 달아야 하고, 누군가는 반찬을 배달해야 하고, 누군가는 새벽에 길 잃은 노인을 찾아야 한다. 그 모든 일을 한 지자체가 1년 동안 감당해야 하는 돈이 2억 7000만 원이다.
이 돈으로 과연 몇 명의 삶을 붙잡을 수 있을까.
돌봄은 마음 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 집으로 오려면 사람이 필요하고, 그 사람이 일하려면 예산이 필요하다. 결국 어떤 지역에서는 돌봄이 조금 더 빨리 도착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돌봄의 속도가 노인의 상태가 아니라 지자체에 배정된 예산 규모에 의해 결정되는 현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 서글펐다.
지난 4월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돌봄재정 획기적 확대 공동행동' 출범식이 열렸다. 노동, 사회복지, 장애인, 보건의료, 농민, 여성, 문화예술 등 198개 단체가 함께 모였다.
이 자리에서 공동행동은 분명히 요구했다. 2027년 예산에 통합돌봄 사업비 2683억 원을 반영하라고. 지역 간 격차 없는 돌봄을 위해 인프라 투자 예산 5년 총 1조 9121억 원, 그 첫해 분 3824억 원을 확보하라고. 지방정부가 지역 실정에 맞게 돌봄 재정을 쓸 수 있도록 포괄보조 방식으로 전환하라고. 돌봄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재원 구조를 마련하라고.
큰 숫자처럼 보인다. 과다한 요구가 아니다. 전국에서 통합돌봄이 실제로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현실적 숫자다. 돌봄에 드는 돈을 '비용'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출범 선언문이 말한 것처럼, 돌봄은 비용이 아니라 삶을 지키는 사회적 투자다. 가족이 버티는 돌봄에서,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돌봄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그 전환은 선언이 아니라 예산으로만 증명된다.
우리는 종종 돌봄을 가족의 책임으로 미룬다. 가족이 버티고 있으니 국가는 조금 늦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가족은 무한하지 않다. 누군가는 회사를 그만두고, 누군가는 돌보다가 함께 무너진다. 많은 가족은 마지막까지 버틴 뒤에야 시설을 선택한다.
나는 이제 묻고 싶다. 우리가 요양원으로 보내는 것은 노인일까. 아니면 끝내 도착하지 못한 돌봄일까.
돌봄은 선언으로 오지 않는다. 사람과 시간과 재원으로 온다. 통합돌봄은 좋은 제도를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이 무너지기 전에 국가가 먼저 도착하는 일이다.
그날 밤 나는 어머니를 골목에서 데리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현관 앞에 서서 한참 문을 바라보았다. 집이 맞는지 확인하듯이.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불을 켰다. 돌봄도 그래야 한다.
어두운 골목에서 누군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 손을 내밀 수 있도록, 국가는 충분한 재정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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