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4, 덱4가 나올 때까지]
여러분, 혹시 "힘 4, 덱 4"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이게 무슨 암호 같은데, 사실 옛날 메이플스토리를 했던 분들은 바로 이해하셨을 겁니다. 이게 뭐냐면 메이플 캐릭터를 처음 만들 때 정해지는 기본 능력치, 그러니까 '스탯' 조합인데요. 근데 또 이걸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게 아니라서 이 조합이 뜰 때까지 주사위를 수백번은 굴려야 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힘 4, 덱스 4가 뜨면? "됐다!" 하면서 그제야 게임을 시작하곤 그랬죠. 이런 추억이 있으시다면 당신은 아마 분명 30대 혹은 40대의 대한민국 남성일 겁니다. 자 오늘 주제는요. 2000년대 초반, 그시절 대한민국 10대와 20대의 시간을 통째로 가져갔던 게임, 메이플스토리(Maple Story)입니다. 그런데 메이플스토리는 단순한 추억의 게임으로만 남아있지 않아요. 2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게임 시장 안에서 강한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도대체 어떻게 메이플스토리는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이 오래된 게임이 어떻게 추억을 자산으로 바꾸면서 브랜드의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추억의 여담…냄·뚜와 오르비스 배의 추억]
메이플스토리는 2003년 국내에 정식 출시된 넥슨의 대표 온라인 RPG 게임입니다. 메이플스토리는 도대체 왜 그렇게 인기가 많았을까요? 옛날에 메이플 좀 했다는 분들한테 물어보면, 다들 비슷한 대답이 나옵니다. "메이플은 모험과 낭만이 있어" 아니 이게 뭔 소린가 했더니, 요즘 게임들은 퀘스트 따라가면 레벨 쭉쭉 보상 딱 이런 느낌이잖아요? 그런데 메이플은 쫌 불친절하다고 해야하나? 소위 말하는 되게 빡셌어요. 슬라임이랑 주황버섯 겁나 때려잡아야 겨우 경험치 쪼끔 오르고. 물약값은 비싸고, 그런데 이런 불편함이 오히려 레벨업 순간을 더 짜릿하게 만들어주는 재미였다고 다들 말하더라고요.
덕분에 그 시절 유저들 사이에서는 전설 같은 아이템과 일화도 많이 탄생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냄뚜(냄비 뚜껑)인데요. 말 그대로 냄비 뚜껑처럼 생긴 방패입니다. 슬라임과 초록버섯을 대학살하면 낮은 확률로 드롭되던 아이템이었는데요. 이게 고레벨 유저들이 찾고 시세도 좀 높은, 초보자의 일확천금의 상징과도 같은 아이템이었습니다. 냄뚜 하나 주우면 그날 피시방 비용은 다 뽑은 겁니다. 공포의 오르비스 배와 '크림슨 발록' 이야기도 아주 유명합니다. 당시 새로운 대륙인 오르비스로 가기 위해서는 게임 속에서 배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배가 아무 때나 출발하는 게 아니라, 실제 시간 기준으로 15분 간격에 맞춰 운행했어요. 그래서 배 시간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거든요? 근데 진짜 공포는 배가 출발한 뒤였습니다. 항해 중에 갑자기 화면이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크림슨 발록'이라는 몬스터가 나타날 때가 있었거든요, 그러면 고레벨 유저들은 갑판 나가서 막 싸우고 저레벨 유저들은 선실 안에 숨어갖고 "발록 떴나요?" "나가도 되나요?" 이러면서 채팅치면서 살려달라고 빌고 그랬습니다. 정말 낭만과 공포의 게임이죠.
[통계가 증명하는 20년 장기 집권의 비결]
사실 지금도 수많은 RPG 게임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갈수록 유저가 빠지면서 잊혀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메이플스토리는 대체 뭐가 다르길래 무려 2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는 걸까요? 그 첫 번째 장점은 장르 자체가 굉장히 직관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조작방식이 막 복잡하지도 않고, 화면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몬스터를 잡는, 그런 직관적인 2D 게임이죠. 그래픽도 아기자기 귀엽고. 하지만 오래 살아남은 이유가 단순히 이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메이플의 또 다른 강점은, 필요할 때 게임을 과감하게 바꿀 줄 알았다는 거예요. 이 선택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전설적인 기록이 하나 있습니다. 2010년쯤 메이플 유저들 사이에서 "게임이 이제 뻔하다", "레벨 하나 올리기는 뭐 이렇게 힘드냐." 이런 불만이 컸었거든요. 사실 이런 문제는 오래된 온라인 게임이라면 거의 다 겪습니다. 그런데 막상 게임사가 크게 바꾸기는 쉽지 않죠.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기존 유저들까지 떠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보통 게임사들은 뭐 이벤트 하나 하거나 신규 서버 업데이트를 하거나 이런 달래기 위주의 대책만 내놓곤 합니다. 그런데 넥슨의 대처 방식은 달랐습니다. 메이플스토리의 구조를 크게 바꾸는 '빅뱅' 업데이트를 단행하는데요. 당시 빅뱅 이전의 메이플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좀 느린 게임이었습니다. 레벨 하나 올리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고, 사냥터 이동 하는데도 막 밧줄 타고 포탈 지나고 동산도 복잡했고요. 기존 유저들은 "힘들어서 못해먹겠네" 이러고, 새로 들어오는 유저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았던 거죠. 이때 넥슨은 게임의 뼈대를 완전히 갈아엎는 도박, 대규모 개편을 감행합니다.
먼저 넥슨은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를 확 줄였습니다. 옛날엔 레벨업 한번 하려면 진짜 몇날며칠이 걸렸는데, 개편 이후에는 성장 속도가 확 빨라져요. 이러니까 공부하는 학생이든 바쁜 직장인이든 "이 정도면 다시 해볼 만한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시간을 좀 덜 투자해도 금방 크니까. 맵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원래 마을 하나 이동하려면 밧줄 타고, 포탈 타고, 한참을 걸어가야 했는데 사냥터와 이동 동선을 훨씬 직관적으로 정리한 거죠. 몬스터 배치도 촘촘해져요. 예전처럼 몬스터 찾아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게 아니라 한자리에서 스킬만 써도 몬스터가 시원하게 쓸려나가는 맛이 생긴 겁니다. 여기다가 해상도와 스킬 밸런스까지 손봐서요. 화면은 더 넓어졌고, 직업별 스킬도 다시 정리되면서 예전보다 훨씬 쾌적한 게임이 됐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2010년 빅뱅 업데이트 이후 메이플스토리는 최고 동시 접속자 수 41만6000명을 기록합니다. 이듬해인 2011년 '레전드' 업데이트 때는 동시 접속자 수가 62만 명을 넘어서기도 해요. 이건 뭐 게임이 다시 살아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제2의 전성기를 맞은거죠. 이때 유저들 사이에서 "메이플은 접는 게 아니다. 잠시 쉬다 오는 것이다." 이런 명언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메이플스토리는 여름방학, 겨울방학 시즌마다 대규모 업데이트와 이벤트를 열면서 예전 유저들을 다시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모니터 뚫고 나온 캐릭터들과 BTS 효과]
메이플스토리의 또 다른 무기는 바로 지식재산권(IP), 그러니까 캐릭터의 힘입니다. 핑크빈, 예티, 슬라임, 돌의 정령 같은 캐릭터들 있죠? 이게 단순한 게임 속 몬스터가 아닌 굿즈가 되고, 팝업스토어의 주인공이 되는 하나의 브랜드 자산이 됐죠. 대표적인 사례가 GS25와 협업했던 메이플스토리 빵입니다. 이때 사람들이 빵 안에 들어 있던 캐릭터 스티커를 모으려고 편의점을 막 돌아요. 출시 18일 만에 100만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음악도 빼놓을 수 없죠. 메이플스토리는 BGM들 있잖아요? 넥슨은 이걸 풀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전국 투어 콘서트를 개최했는데요. 티켓 오픈 3분 만에 전석이 매진됐다고 해요. '로그인 테마'나 '엘리니아 BGM'이 웅장한 오케스트라로 연주될 때 객석에 앉은 남성분들이 박수를 치면서 감탄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네요. 또 최근에는 메이플스토리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바로 BTS의 멤버 '진'이 "12살 때부터 메이플을 시작했고요. 설날 용돈은 메이플 현질에 썼습니다" 요런 말을 한 거예요. 메이플 아직도 너무 사랑한다면서. 2022년에는 실제로 넥슨에 출근하는 콘셉트의 '출근용사 김석진' 콘텐츠까지 선보였고요. 2026년 올해에도 '출근용사 김석진 리턴즈'로 다시 돌아와서 게임 속 NPC 목소리 녹음까지 맡기도 했습니다. 진이 "메이플은 내 청춘을 바친 게임이다" 이런말을 하는데 이게 수많은 유저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죠.
[당신의 '헤네시스 사냥터'는 어디입니까?]
수많은 최신 그래픽의 대작 게임들이 쏟아지는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2D 도트 그래픽의 메이플스토리를 찾습니다. 대체 그 비결이 뭘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그중 하나가 '감성을 자극하는 특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떡꼬치를 하나씩 물고 PC방으로 달려가던 시절. 레벨 하나 올리려고 몇 시간씩 사냥하고, 헤네시스 사냥터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수다를 떨던 시간. 메이플스토리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장 빛났던 유년 시절의 공간이었습니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의 문제점을 과감하게 고치고, 유저들이 기억하는 추억의 감성은 콘텐츠와 굿즈로 확장했습니다. 그렇게 과거의 유저들을 다시 현재의 메이플스토리로 불러냈죠. 결국 오래가는 브랜드는 사람의 인생 한편에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남깁니다. 여러분의 가슴 속에는 어떤 헤네시스 사냥터가 남아 있나요? 지금까지 르데스크 4인용 책상이었습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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