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트룰리(Trulli) 지붕이었다. 여행 사진으로 수없이 봤지만 실제 모습은 생각보다 더 기이했다. 하얀 벽의 집마다 회색 원뿔이 하나씩 얹혀있다. 거대한 버섯 마을 같기도 하고, 누군가 장난스럽게 만들어놓은 건축 모형 같기도 하다.
문득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가 떠올랐다. 바위를 파고 들어가 만든 집들과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 집들은 전혀 닮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같은 계열의 기억으로 연결된다. 아마도 현실보다는 동화에 더 가까워 보이는 풍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머프가 골목 어딘가에서 불쑥 걸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을이었다.
그런데 나는 늘 그렇듯 아름다움보다 이유가 궁금했다. 왜 하필 이런 모양의 집을 지었을까. 여행하다 보면 건축은 결국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이 남긴 흔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당은 신에 대한 경외심을 담고 있고, 성벽은 외부 적들에 대한 공포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알베로벨로의 원뿔 지붕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별의별 상상을 다 해봤지만 답은 의외였다. 세금. 너무나 인간적인, 더없이 현실적인 이유다. 14세기 중반부터 이 지역에 자리 잡기 시작한 트룰리는 15세기 나폴리 왕국 시절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당시 이 땅을 지배하던 콘베르사노의 영주들은 새로운 정착촌을 만들 때마다 왕국에 세금을 내야 했다. 세금을 내기 싫었던 사람들은 시대와 국적을 초월해 늘 비슷한 고민을 한다. 어떻게 하면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이 생각해 낸 방법은 놀라울 정도로 창의적이었다. 농민들에게 모르타르를 쓰지 말고 돌만 쌓아 집을 짓게 한 것이다. 접착제 없이 맞물린 돌집은 필요할 때 언제든 해체할 수 있었다.
"세무원이 온답니다!"
마을은 비상사태에 돌입한다. 사람들은 서둘러 지붕을 걷어내고 일제히 벽을 허물기 시작한다. 조금 전까지 분명히 집이 있었는데, 세무원이 도착하면 빈터만 남아 있다.
"집이 어디 있습니까?"
"집이요? 없는데요."
"방금까지 있었다던데요?"
"착각 아니겠습니까?"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난다. 오늘날 사람들은 복잡한 세법과 회계장부를 연구하지만, 중세 사람들은 아예 집을 분해해 버렸다. 탈세 방식조차 수공예적이고 아날로그적이다. 너무나 원초적인 절세 전략이 아닌가.
지금 알베로벨로에는 1600채가 넘는 트룰리가 남아 있다. 골목을 걷다 보면 원뿔 지붕마다 흰 석회로 그려진 별과 태양, 달과 십자가 문양이 눈에 띈다. 집주인의 신앙과 가문을 나타내는 표시라고 한다. 세무원의 눈은 피하면서도 자신이 누구인지는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그 모습이 왠지 인간적이다.
알베로벨로의 트룰리는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탈세의 산물이 세계문화유산이 된 셈이다. 역사는 종종 이렇게 엉뚱하다.
우리는 위대한 건축물 뒤에 숭고한 철학이나 종교적 신념이 숨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알베로벨로는 인간의 가장 현실적인 감정, '세금 내기 싫은 마음'에서 출발했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은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완벽한 이상을 꿈꾸며 설계된 도시가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궁리 끝에 만들어낸 마을이기 때문이다.
지붕 하나를 올릴 때마다 그들은 비를 피할 방법을 고민했을 것이다. 동시에 언제 세무원이 들이닥쳐도 문제없을 방법도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날 관광객들이 감탄하며 올려다보는 원뿔 지붕 아래에는 그런 소박하고도 절박한 생존의 역사가 숨어 있다.
해 질 무렵 골목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붕들을 올려다보았다. 누군가는 이 풍경에서 동화를 볼 것이다. 누군가는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볼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다른 이야기가 보였다. 비를 피하려던 사람들, 세금을 피하려던 사람들,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던 사람들.
인간은 살기 위해 집을 짓는다. 하지만 시간은 그 생존의 흔적을 문화로 바꾸고 결국 유산으로 남긴다. 알베로벨로가 아름다운 이유는 지붕의 모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저 풍경 속에는 사람들의 영리함과 궁리, 그리고 삶을 지켜낸 끈질긴 시간이 쌓여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성경제신문 박재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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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작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 전공 후 국제경영 MBA를 취득했다. 현대그룹과 DELL, EMC 등 글로벌 IT 기업 마케터로 일하고 미국 벤처 Actifio 아시아태평양 지역 마케팅 총괄대표를 지냈다. 커리어의 정점에서 '인생 리셋'을 선언하고 두 차례 산티아고 순례 후 현재는 여행작가이자 자기계발 리더십 코치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 <산티아고 어게인> , <숲에서 다시 시작하다> , <그 여자, 정치적이다> 등이 있으며 현재 모모인 컴퍼니 대표를 맡고 있다. 그> 숲에서> 산티아고>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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