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의 Artist Life_Story #97] 부채가 건네준 두 번의 이야기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정혜련의 Artist Life_Story #97] 부채가 건네준 두 번의 이야기

문화매거진 2026-06-18 09:42:06 신고

3줄요약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같은 부채를 주제로 한 전시였지만, 내가 만난 두 전시는 시작부터 달랐다.

작년 봄,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선우풍월’ 전시는 관람에 앞서 강당에서 진행된 설명회부터 참여했다. 큐레이터의 해설을 들으며 조선시대 부채 문화와 선면서화의 의미를 이해한 뒤 전시장으로 향했다. 작품을 보기 전부터 이미 마음속에는 여러 질문과 기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반면 얼마 전 문화실험공간 호수에서 열린 ‘송파청풍선전’은 계획에 없던 만남이었다. 나는 평소 이곳에서 3D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실험공간 호수는 1층에는 카페가, 2층에는 전시장이, 3층에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날도 평소처럼 수업을 위해 공간을 찾았고, 계단을 오르기 전 2층 전시장에 들렀다가 부채 위에 펼쳐진 작품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하나는 설명을 듣고 찾아간 준비된 만남이었고, 다른 하나는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한 만남이었다. 하지만 두 전시는 모두 나에게 부채라는 작은 공간 안에 담긴 예술의 깊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우리는 흔히 부채를 여름철 더위를 식혀주는 생활용품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간송미술관에서 만난 부채들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부채 위에는 그림이 있었고, 글이 있었으며, 그 안에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 미적 감각이 담겨 있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부채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고, 시를 적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했다.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화면이지만 그 안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과 삶의 태도, 그리고 시대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설명회를 통해 선면서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작품을 감상하니 더욱 흥미로웠다. 평소 큰 화면에 익숙했던 나에게 부채는 오히려 더 어려운 화면처럼 느껴졌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여백을 활용하고, 몇 개의 선만으로 풍경과 감정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은 화면이지만 결코 작은 작품이 아니었다.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문화실험공간 호수에서 만난 ‘송파청풍선전’은 또 다른 의미를 전해주었다. 간송미술관이 과거의 부채 문화를 보여주었다면, 이 전시는 현재의 작가들이 전통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시를 만난 장소였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찾은 사람, 전시를 관람하러 온 사람, 수업을 듣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마주하고 있었다. 예술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동선 속에서도 충분히 스며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평소 아이들과 창작 수업을 진행하는 공간에서 전시를 만나니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전통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안에 보존되어 있는 과거의 유산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리고, 쓰고, 배우고, 감상하는 순간 전통은 현재가 된다.

예술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늘 느끼는 것이 있다. 문화는 누군가가 이어갈 때 살아남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훌륭한 유산이라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면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작가들이 부채 위에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있게 다가왔다. 두 전시를 떠올리며 나는 부채라는 물건의 특별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부채는 눈에 보인다. 하지만 부채가 만들어 내는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바람의 형태를 볼 수 없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다.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예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림은 눈에 보이지만 그림이 전하는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행복도, 희망도, 위로도 마찬가지다. 형태는 없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누군가를 움직인다. 내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행복 역시 그렇다. 눈에 보이는 대상이라기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가깝다. 작품 속 판다곰 ‘몽다’와 친구들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것도 결국은 그런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다. 어쩌면 옛 선비들이 부채 위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남겼던 이유도 단순히 아름다운 장식을 만들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부채를 펼칠 때마다 바람이 일어나듯, 자신의 생각과 감정도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작년 간송미술관에서 만난 부채는 과거의 풍류를 보여주었고, 올해 문화실험공간 호수에서 만난 부채는 현재의 창작을 보여주었다. 시간은 달랐고 장소도 달랐지만, 두 전시는 하나의 메시지로 이어졌다. 예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한다는 것. 그리고 전통은 오래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형의 문화라는 것이다. 올여름 부채를 펼칠 때마다 나는 그 위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오래전 누군가의 마음도 오늘 우리의 곁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